'애니멀 호딩'을 어찌할꼬

노도현 기자 2020. 1. 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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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능력 이상의 많은 동물 키우는 행위… 적절히 보살피지 못하고 방치

현관문을 열자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25마리쯤 될까. 70대인 할머니는 4평 남짓인 큰 방과 작은 방, 좁은 부엌이 있는 다세대주택에서 고양이들과 살고 있었다. 낡은 벽지가 다 뜯어진 채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다. 집 안에선 꼭 신발을 신어야 했다. 바닥 군데군데 고양이 배설물이 흩어져 있었다. 고양이 화장실로 보이는 통이 있긴 했다. 고양이의 배변 습성상 꼭 필요한 모래는 담겨 있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낯선 이들의 방문에 가구와 이불 뒤로 숨었다. 정확한 마릿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가스가 끊긴 지 수개월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10년 전 ‘은영’이라는 고양이를 입양했다. 이후 자체번식을 거듭하며 개체수가 늘어났다. 할머니는 은영이를 딸처럼 아꼈다. 하지만 중성화나 예방접종의 개념을 잘 알지 못했다. 그보다 사료 걱정이 더 컸다. 고양이들의 귀는 내려가 있었다. 두렵거나 불만이 있다는 의미다. 새끼들의 움직임은 활발하지 않았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가 지난해 8월 서울시 중성화 지원 사업 수행 과정에서 겪은 사례다. 할머니는 ‘애니멀 호더’였다.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이란 자신의 능력 이상의 과도한 마릿수의 동물을 키우면서 적절한 보살핌을 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동물권행동 카라

책임 없는 사랑의 비극

할머니의 사연은 알 수 없었다. 남편과 자식이 있지만 혼자 살았다. 이웃들은 이 집 고양이들이 동네에 똥을 싼다며 싫어했다. 집주인은 두 달 남은 계약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카라와 동주민센터, 구청이 머리를 맞댔다. 가능한 선에서 고양이들의 복지를 높이면서 개체수를 줄이기로 했다. “동물단체에서 잘 입양 보내줄 거야? 그러면 내가 보낼 수 있어.” 할머니는 한시적으로 포기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할머니가 고양이 11마리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이후 딸이 인부를 써 할머니 집의 모든 문을 뜯어냈다. 할머니는 바람이 숭숭 통하는 집에서 남은 고양이들과 며칠을 더 살았다. 아들이 할머니를 데려가면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이웃들은 구청으로 ‘고양이를 빨리 치우라’는 민원을 넣었다. 동물구조관리협회가 집 안에 있던 새끼 고양이 9마리를 데려갔다. 이중 5마리는 안락사시켰다. 카라는 9월 말 남은 4마리를 인계해왔다. 10월 초 4마리가 잇따라 죽었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 ‘범백(범 백혈구 감소증)’ 때문이었다. 김현지 카라 정책팀장은 “애니멀 호더를 사회도 어쩌지 못하고, 이렇게밖에는 다룰 수 없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던 케이스”라고 했다.

ㄱ씨(60)는 자신이 ‘구조자’라고 했다. 14평 정도 되는 다세대주택에서 고양이 80~90마리와 살았다. 포획틀을 가지고 다니며 거리에서 구조해온 고양이들이었다. 동네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캣맘’들도 ㄱ씨를 의지했다. 집 안 곳곳에는 물건이 쌓여 있었다. 이웃과의 갈등은 심각했다. ㄱ씨 때문에 집값이 떨어졌다. 이웃들은 이사를 하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ㄱ씨를 만난 심리상담사는 과거 가족에 얽힌 아픔이 애니멀 호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분석했다.

구청은 심리상담을 수차례 진행했다. 동물 기르기에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접근했다. 마음의 상처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했다. 누군가 반찬을 챙기고 안부를 물으니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 이웃과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은 많이 줄었다. ㄱ씨는 “30마리 정도는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김 팀장은 “상황이 모두 해결되고 마지막 단계로 동물을 구조해야 의미가 있다. 하지만 ㄱ씨의 경우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30마리가 떠나면 금방 그 자리에 다른 고양이 30마리를 다시 모아올 게 분명했다. 그만큼 애니멀 호딩은 복합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쉬운 길은 없다

‘범죄인가 정신질환인가, 동물문제인가 사람문제인가.’

애니멀 호딩은 이 모두가 얽힌 문제다. 독거 생활과 건강, 경제상황, 이웃·가족 갈등, 정신건강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난다. 누군가는 “사람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다”며 동물문제로 치부한다. 하지만 동물과 ‘사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내에서는 2018년부터 애니멀 호딩을 동물 학대의 한 유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처벌 사례는 없다. 물건을 과도하게 수집하는 ‘저장강박’은 지자체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해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한다. 하지만 애니멀 호딩은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애니멀 호딩을 규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마땅치 않고, 구조한 동물을 안전하게 입양 보낼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애니멀 호더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전문인력도 부족하다.

미국의 애니멀 호딩 연구기관 HARC는 애니멀 호더의 유형을 ‘힘이 부치는 보호자’, ‘구조자’, ‘착취자’로 구분하고, 각 유형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선 애니멀 호딩으로 전락한 사설보호소 문제까지 얽혀 있다.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애니멀 호딩은 질병과 관련돼 있고 점차 확산되는 추세”라며 “예방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동물 따로, 사람 따로 보지 말고 둘의 관계 속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호더는 동물을 다 빼앗길 때 상실감이 크고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선 한두 마리 정도 키우게 하면서 계속 모니터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사람들이 왜 호더가 되는지 잘 따져보며 이를 방지할 수 있게끔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적 접근과 치료적 접근의 균형이 필요하다. 사법·행정·정신건강·사회복지·동물복지 분야가 협력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김현지 팀장은 “애니멀 호더들이 방치되고 있는 한 잠재돼 있는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이 가뜩이나 열악한 동물보호 현실 속에서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없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 수행 중에 만난 애니멀 호딩 위험군 중에는 약간의 교육과 지원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분들이 많았다”며 “호혜성에 입각한 예방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이미 벌어진 상황에는 개입할 수 있는 대처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13일 애니멀 호딩 관련 국회 토론회에 참가한 주민센터 관계자도 애니멀 호더를 지원하고자 할 때 상위기관에 적합한 부서·담당자가 없다는 점, 호더가 사육동물 개체수를 줄이고자 해도 마땅한 동물 구조 방법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자체에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시범 케이스를 다뤄보고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등 인프라를 갖추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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