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 안 들리고 학교는 계속 폐교.. "여긴 노인 천지여" [연중기획-인구절벽 뛰어넘자]

이진경 2020. 1. 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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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통해 본 초고령사회/ 2000년 이후부터 사망자수>출생자수/ 40%가 65세 이상 ..소멸위험도시 1위/ 읍내 중심가엔 노인 위한 시설만 즐비/ 옷가게·미용실도 5060여성 손님 많아/ 군, "인구 유입" 통합신공항 유치 사활/ 올 자연인구 감소.. 제 2·3의 의성 속출
한국은 2050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게 된다. 인구 다섯에 둘이 노인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경북 의성을 찾아 미래 한국을 미리 봤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의성의 전체 인구는 5만2606명이다. 이 중 39.8%인 2만947명이 65세 이상 노인인구다. 국내 시·군·구 중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소멸위험도시 1위 지역이기도 하다.

◆“여긴 노인 천지”

지난 12월 18일 방문한 의성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여긴 노인 천지여”였다.

의성군청, 중앙선 의성역, 의성시외버스터미널이 모여 있는 의성군 의성읍 중심가인 역전오거리를 찾았지만 오가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도로도 붐비지 않았다. 거리를 오가는 이들은 주로 어르신들이었다. 역전오거리에는 큰 병원인 공생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데,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공생병원 양옆으로 정형외과, 요양병원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의성엔 분만하는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다고 한다. 정부 지원을 받아 산전 진찰만 하는 외래산부인과만 안계면에 2015년 만들어졌을 뿐이다.
지난달 18일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 의성읍분회노인회관에서 어르신들이 화투를 치며 오후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다.
상점의 종류도 미세하게 달랐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카페 등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미용실, 노인복지센터가 눈에 많이 띄었다. 옷가게도 2030여성보다는 5060여성을 대상으로 한 곳이 더 많았다.

노인들은 고령인구가 많은 만큼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잘 돼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의성읍 상리리 의성읍분회노인회관에는 오후가 되자 인근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오전 노인복지관에 갔다 점심을 먹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끼리끼리 모여 화투를 치거나 담소를 나눴다. 의성읍에만 48개의 경로당이 있다고 한다. 군청은 노인회관에 냉난방비, 운영비 등을 지원한다. 노인회, 보건소 등이 노인회관에 와서 노래교실, 건강관리 교육 등 프로그램을 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박봉출(85) 의성읍 노인회장은 “옛날 의성 인구는 23만명인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5만명밖에 안 된다”며 “게이트볼모임 회장도 오래 했는데 인구가 줄면서 젊은 회원도 줄어드는 등 변화를 지켜봤다”고 했다. 오후 4시가 넘자 PC방에서 몰려나오는 학생들이나 학원에 가려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생은 “의성이 노인인구비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 있다”면서 “여기는 놀 거리가 많지 않다”고 했다.

인구감소, 노인인구 비율 증가는 학교에도 영향을 끼친다. 의성군에서는 학교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수업이 끝난 초등학교 앞에는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분교가 문을 닫아 학교가 사라진 면·리의 학생들을 실어나르는 것이라고 했다.

폐교는 창의인성교육관, 목재문화체험관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그냥 두고 있는 학교도 적지 않았다. 지난 2월에는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금성여자상업고가 폐교했다. 학교 정문에는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쇠사슬이 가로막혀 있었다. 학교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과거 구미에서도 금성여상에 오고 그랬다”며 “학생이 줄어드니 문을 닫을밖에”라고 말했다.

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성군청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통합신공항 유치다. 1월에 있을 주민투표를 앞두고 의성군 전역에 찬성을 독려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대구 민·군 통합공항을 비안면 일원에 유치해 인구 유입,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귀농자 지원,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 조성, 청년 문화의 집 건립, 키움센터 등도 추진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탑리 주민 최홍열(72)씨는 “귀촌, 귀농한 뒤 일정 소득이 보장돼야 하는데 안 그런 경우가 많다”며 “의성에서 유명한 마늘만 해도 올해 생산비도 안 나오게 가격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30대 한 청년은 “노인이 많다 보니 군 행정도 노인을 위한 정책, 지원에 집중돼 있다”며 “청년을 위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뒤로 미뤄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올해 자연인구 감소 시작

의성의 상황은 의성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상당수 도시가, 전체 한국이 머지않은 미래에 겪을 일이다.

대도시인 부산 영도구(25.65%), 중구(25.52%), 동구(25.26%) 등은 이미 초고령사회 기준인 노인인구 비율 20%를 넘었다. 서울 강북구도 노인인구 비중이 19.18%로 20%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의성 인구가 줄어든 것처럼, 한국의 총인구도 감소할 전망이다. 자연인구는 올해 감소가 시작된다. 의성은 2000년 이후로 사망자수가 출생자수보다 계속 많았다. 지난해도 240명이 태어났고, 934명이 사망했다.

2017년 5136만명인 총인구는 2028년 5194만명까지 증가해 정점을 찍은 뒤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2067년엔 3929만명으로, 1982년 인구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다.

총인구는 이민 등 국제 유입을 반영한 계산이다. 순수하게 출생아수에서 사망자수를 뺀 인구 자연증가를 보면 2020년 초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2019년 9월 출생아수는 2만4123명, 사망자수는 2만3563명으로, 출생아수와 사망자수의 차이는 560명으로 줄었다. 2067년 출생아수는 21만명, 사망자수 74만명으로, 사망자가 3.5배 더 많아지게 된다.

의성=글·사진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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