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제를 무너뜨릴까 자유한국당이 무너질까

2020. 1. 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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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연동형 비판 사례로 등장한 위성정당을 그대로 ‘꼼수’로 가져가는 한국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운데)가 1월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꼼수일까, 묘수일까.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남은 기간은 100일 남짓. 지역구 253석에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만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현실이 됐다. 정당 간 수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과반이 “비례정당 실패할 것”

첫 카드를 내민 것은 자유한국당이다. 새판짜기를 부정하던 한국당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현실이 되자 먼저 나서 ‘비례대표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꼼수를 뒀다. 위성정당은 한국당이 줄곧 지적한 대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형해화하는 수단으로 지목돼왔다.

한국당의 위성정당은 1월 창당을 목표로 일사천리다. 1월2일 위성정당의 이름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창당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당은 설 연휴 전 위성정당 창당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위성정당이 현실화하면서 4+1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를 주도한 정당들은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한국당의 비례 위성정당은 떳떳하지 못한 투표세탁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거나 “국민들의 냉엄한 평가 대신 제도적 꼼수로 거대 양당 체제에서 누려왔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발상”(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이들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는 이유는 명료하다. 한국당 위성정당의 위력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민심의 풍향계부터 따져보면, 여론은 대체로 위성정당에 부정적이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29~30일 전국 만 19살 이상 성인 남녀 1천 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의석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라고 했다(표본오차는 신뢰수준 95%에 ±3.1%포인트). 같은 기간 <뉴시스>의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비례정당 창당을 반대하는 의견이 53.9%로, 지지한다는 의견(27.6%)보다 2배가량 앞섰다(전국 만 19살 이상 성인 남녀 1011명 조사. 표본오차는 신뢰수준 95%에 ±3.1%포인트). 같은 조사에서 비례정당 성공 전망에 “실패할 것”이라고 한 응답자는 53.7%로, 성공할 것(27.8%)이라는 전망보다 월등했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여론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이길 수 있는 ‘딱 한 표’다. 한국당이 차근차근 위성정당을 준비하는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진영의 높은 지지는 무너졌지만, 남은 지지자들의 결속은 여전히 단단하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앞선 <한국일보> 조사를 보면, 한국당 지지자 중 70%가 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불가피한 결정으로 이해할 만하다”고 답했다. 이번 총선에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한국당을 뽑겠다”는 의견에 손을 든 숫자는 85.5%에 이르렀다. 이를 토대로 현재 한국당이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20~30% 지지(정당 지지율 기준)를 얻는 것을 고려하면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배정하는 의석수 가운데 두 자릿수 의석 점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헛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 비례 47석 가운데 준연동형이 적용되는 30석의 상당 부분을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이 민주당 내부 문건이라며 언론에 공개한 시나리오대로라면 한국당의 위성정당은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내지 않을 경우 전체 비례의석수 47석 가운데 30석을 얻게 된다(이 문건에서는 범보수 진영이 과반을 넘는다는 예측치를 내놓았다). <조선일보>도 4월 총선의 변수로 ‘위성정당’을 꼽으며 한국당의 위성정당이 25~30석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1월1일치 8면).

민주당 10석 손해, 정의당 교섭단체 갈림길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한국당의 위성정당이 가져간 만큼 손해를 보는 것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다. 민주당 내에서 공식적으로 위성정당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내 소수 그룹에서 최악의 경우 10석 이상 손해 보는 현실을 우려한다. 정의당이 입는 타격은 더 크다. 원내 교섭단체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설 수 있다.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만 등장해도 정의당 의석은 10석 미만에 그칠 수 있다(<조선일보> 분석).

숫자가 드러내는 장밋빛 전망에도 한국당이 4월 총선에서 그만한 전리품을 손에 쥘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정치적 셈법으로 표심을 온전히 움직일 수는 없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공천 파동으로 총선 참패를 경험했다. 정당이 주요 국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민심은 순식간에 돌아설 수 있다. 한국당이 총선의 새 규칙으로 도입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거부한 명분은 알바니아 사례와 같은 선거제도 왜곡이었고, 그 근거가 위성정당이었다. 유민봉 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12월25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알바니아와 레소토는 거대 양당이 각각의 위성정당을 설립해 비례의석 대부분을 독식하면서 소수정당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 자체를 무너뜨렸다. 베네수엘라도 집권여당이 비례후보를 내면서 지역구에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출마시키는 전략을 썼다. 결국 세 나라에서 연동형비례대표제는 폐지됐다.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위성정당을 만들어)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이것이 얼마나 개악인지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달리 말해 한국당은 제도의 결점을 이용해 선거제도를 망가뜨려 알바니아와 같은 상황을 연출한 다음 ‘4+1’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나쁜 선택이란 걸 입증하기 위해 나쁜 행동을 하겠다는 한국당의 논리에 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가진 능력에 맞는 정치체제를 가진다”

한국당이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국민당과 노동당이라는 두 거대 정당이 있지만 위성정당 없이 선거를 치렀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뉴질랜드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형철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뉴질랜드 선거제도 개혁 과정과 성공 요인-한국에 주는 시사점’(<시민과 세계>, 2016년 상반기호) 논문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국민의 강한 요구’에 주목했다. 뉴질랜드에는 유권자에게 선거제도 개혁의 목적과 방향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알리고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제기한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도 주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책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초>에서 “(국민이) 가진 능력만큼 그에 맞는 정치체제를 가진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향할까. 알바니아일까, 뉴질랜드일까.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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