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시시각각] 추미애에게 필요한 건 '권력의 절제'

전영기 2020. 1. 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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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강하면 쇠도 부러지는 법
윤석열 수사 방해하지 말기를
민주적 통제가 화 부를 수 있어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검찰의 ‘민주적 통제’를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추 장관에게 필요한 건 ‘권력의 절제’다. 그는 권력이 주어지면 소신이나 철학이 불타오르는 경향이 있다. 2017년 9월 민주당 대표로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할 때 느닷없이 “소작료보다 무서운 임대료… 농지개혁에 버금가는 지대개혁을 해야”라고 토지 공개념을 주장했다. 10월엔 헨리 조지라는 미국식 사회주의자를 인용하며 “그가 살아 있다면 토지 사용권을 인민에게 주고, 소유권은 국가가 보유하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식 토지 소유제도가 바람직하니 우리가 따라가야 한다는 건지, 그렇지 않다는 건지 모호한 발언이었다. 최근 홍콩 주민들의 목숨을 건 반중 투쟁의 저변에 개인 재산의 최종 처분권을 쥐고 있는 공산당 지배에 대한 공포심이 깔려 있는 점은 여태 보아 온 바와 같다.

지난주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추미애는 “토지 국유화 표현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채택한 대한민국 법치의 수호자로서 국민 개인의 사유재산을 어느 정도 지켜줄 수 있는지에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토지 문제에 관한 한 추미애의 생각은 조국과 다를 바가 없다. 추 장관은 조씨가 민정수석 때 원맨쇼하다시피 주도하다 실패한 토지 공개념 개헌안에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추 장관이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조국의 것과 비슷한 개헌안을 느닷없이 내놓지 않기를 바란다.

추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고 무슨 자신감이 붙었는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지지는 역대 최고조에 달해 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속도를 내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국민적 요구와 지지는 검찰개혁보다 정권개혁을 향해 있다. 집권세력이 검찰개혁이라고 부르는 제도적 혁신과 관행 변화는 문 대통령의 시시콜콜한 지침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결단으로 이미 다 이뤄졌다. 예를 들어 요즘 조국이나 유재수, 송병기, 백원우 같은 권력형 범죄의 수사 대상자들은 과거 정권에서 꿈도 꾸지 못한 수준의 프라이버시 보장이나 수사상 편의, 피의사실 공표 금지 등을 누리고 있다.

추 장관이 여기서 민주적 통제에 속도를 더 내겠다면 개별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활용해 살아 있는 권력형 범죄 수사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실제로 임명한 지 6개월도 채 안 된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을 비롯해 ‘청와대 하명수사팀’ ‘유재수 감찰무마 수사팀’의 핵심 검사들을 사방팔방 흐트러뜨려 윤석열의 수사 역량을 무력화시킬 것이란 예측이 파다하다. 이로써 권력의 민주적 통제라는 이름의 검찰 수사 방해 사건이 완성될 터이다.

추 장관은 검찰로부터 구체적인 수사에 대해 보고받고 지휘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보고와 지휘는 문서로 남는다. 자칫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를 범할 수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검찰의 청와대 수사팀이 증거와 진술이 가리키는 대로 문 대통령의 하명 수사인지 여부를 조사하기로 방침을 세웠는데 민주적 통제 과정에서 추 장관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추미애가 이를 대통령에게 사전 고지하거나 수사를 저지한다면 법무장관으로서 직권남용죄를 짓는 것이다. 반대로 알리지 않거나 수사에 힘을 실어준다면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직무유기이거나 인간의 의리를 배신하는 행위가 된다.

그동안 법과 관례에 따라 법무장관이 검찰 수사와 거리를 두었던 까닭은 이런 딜레마 때문이다. 민주적 통제는 덫이 될 수 있다. 쇠도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이 정권은 지금 무엇에 취했는지 매사 강한 것을 능사로 안다. 민주적 통제 대신 권력의 절제를 생각할 때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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