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힘겹게 성공했지만.. 살아남기 '또다른 전쟁' [심층기획 - '서울공화국'의 젊은 이민자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미경(31·여·가명)씨에게 ‘탈서울’은 언젠가 이루고 싶은 희망인 동시에 불안감이기도 하다. 높은 주거비와 치열한 경쟁을 감당해야 하는 ‘서울살이’는 마치 외다리로 버티는 삶처럼 위태롭고 공허하지만, 그래도 놓치기는 싫은 ‘열매’와도 같다는 뜻이다.
경남의 한 소도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김씨는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토록 원했던 ‘인(in)서울’ 코스를 무난히 통과하고, 졸업 후에는 무사히 ‘대기업 정직원’이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지만 김씨의 서울살이는 여전히 힘겹기만 하다. “학창시절에는 자취방이 내 집같이 느껴지지 않아 외로웠어요. 지금도 월세와 공과금 모두 내가 벌어서 내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로 ‘임시거처’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요.”
올해로 11년째 서울을 ‘살아내고’ 있는 김씨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전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게 아니고 ‘서울’에 사는 거예요. 말만 같은 나라일 뿐, 지방을 떠나 서울이란 전혀 다른 나라에 살아보려고 온 ‘이민자’ 같다는 생각을 해요.”
세계적인 여행 안내 책자인 ‘론리플래닛’은 서울을 ‘24시간 멈추지 않는 도시’라고 표현한다. 원하는 게 있다면 서울은 낮이든 밤이든 모든 걸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여서다. 산업과 인프라가 집약된 서울은 그만큼 다른 국내 다른 도시와 견줘 바쁠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인의 평균 근로시간(2017년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연평균 노동시간(1746시간)을 훨씬 웃도는 2024시간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일하고 급격한 성장을 이룬 덕분에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역동적이지만, 그만큼 구성원의 에너지 소진도 상당하다. 이런 서울을 두고 청년들은 ‘경쟁에 최적화한 도시’라고 입을 모은다. 묘하게 비트는 듯한 어감의 표현이다.
고단한 삶에 지친 청년들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국내에 발표된 한 연구는 우리나라 청년을 지배하는 중심 정서를 ‘우울’로 규정했다.
지난해 ‘한국사회학’에 실린 구혜란 서울대 연구교수와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구서정씨가 공동으로 분석한 논문 ‘우울한 청년, 불안한 장년의 나라’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세대(19∼36세)에 대해 “물질적 풍요와 교육적 혜택을 받았지만, 역량에 비해 취업문이 좁고 성취를 누리기 어려운 세대”라고 진단했다. 이어 “청년의 마음 가장 중심에 있는 정서는 우울”이라고 강조했다.
구 교수 연구팀이 베이지안 네트워크 분석을 이용해 정신건강 구성 요소를 살펴본 결과 청년들의 이런 우울감은 불안과 함께 찾아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힘듦’이란 키워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 교수는 “내적 만족보다 외적 성공을 좇는 생활을 지속할수록 청년의 삶이 힘들어지고, 우울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태훈·김민순·이창수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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