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트럼프, 이란의 反정부 세력을 순식간에 親정부로 단결시켰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0. 1. 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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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군부 실세 타깃 사살로 이라크도 反美로 돌아서고 알카에다·IS는 勢규합 나서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트럼프에만 의존한 미국은 외교적 손실 가능성 높아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이란 군부의 핵심 가셈 솔레이마니가 죽었다. 미국이 벌인 일종의 ‘참수 작전’이었다. 파장은 컸다. 묘한 적대적 균형 상태를 유지하던 중동 정세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중동에서 병력을 빼기에 바빴던 미군이 갑자기 증파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란 대통령은 온 국민이 나서는 보복을 선언했다. 도대체 새해 벽두부터 왜 이런 긴박한 상황이 일어난 것일까?

트럼프의 승부수랄까? 불리한 국내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지난 3년 동안의 미국 대외 정책은 최근 신랄하게 비판받고 있었다. 이란과 북한 문제를 변칙적으로 다루면서 말만 앞섰지 실질적 진전이 없었다는 질타였다. 무기력하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동맹국 사우디의 기간 석유 시설이 피격되었을 때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 최근 탄핵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곤란을 겪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 곤경을 순식간에 뒤집은 작전이었다.

반전의 계기는 작년 연말에 시작되었다. 이라크 키르쿠크에서 친이란 민병대의 공격으로 미국인 한 명이 사망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이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에 위협을 가했다. 트럼프는 이를 선을 넘는 행위로 선언했다. 미국은 일련의 적대 행위 뒤에 이란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 여단의 지도자 솔레이마니가 그 중심인물이었다. 가차 없이 사살했다.

트럼프의 승부수, 미국은 불리해져 미국 대중의 눈에 비친 솔레이마니는 위협적인 인물이다.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라덴이나 IS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비국가 테러 집단의 수괴였다면, 솔레이마니는 국가 테러 집단인 이란의 핵심 지도자로 각인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번 작전에 대한 미국 내 적절성 논쟁과는 별개로 솔레이마니의 사망은 미국 국민에게는 내심 반길 일이기도 하다. 다른 도발에 대해서는 인내하되 자국민 안위에 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 측면도 있었다. 동시에 그간 신중하지 못하고 예측 불가능한 언사로 비판받아 왔던 트럼프가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진중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국내 지지 확보 측면에서는 긍정적 모습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트럼프 개인의 이익과 미국의 국가이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다. 미국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외교적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6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앞줄 가운데 검은 모자) 이란 최고 지도자와 하산 로하니(그 왼쪽) 대통령 등 정권 수뇌부가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전 쿠드스 사령관 등의 장례식장이 차려진 테헤란대학교에서 사망자들의 관에 참배하고 있다.

먼저 이란의 반정부 세력을 친정부로 순식간에 단결시켰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란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었다. 정부의 발포로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의 제재 복원 이후 경제난에 봉착한 이란의 대중들이 휘발유값 인상에 항의하며 일어난 시위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이란 국민의 민심이 정부로부터 이반되는 징후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일거에 전(全) 이란 국민을 반미로 묶어 버렸다.

둘째, 사실상 미국의 더 큰 외교적 손실은 이라크다. 미국은 이라크에 공을 들여왔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대사관이 바그다드에 있다. 이란의 영향력 확산을 차단하고 압박하기 위해서는 이라크를 중립지대로 끌어다 놓아야 한다. 실제로 최근 이라크 내 반이란 정서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었다. 시위도 이어졌다. 솔레이마니의 이라크 방문 역시 이러한 반이란 분위기 제압을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 이제 반이란 시위는커녕 이라크 전역에서 반미 시위, 미군 축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 의회는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결의안을 채택, 정부에 통보했다. 당연히 미군 철수를 염두에 둔 모양새다.

셋째, 지금의 이 혼돈 상황을 누가 가장 반길까? 알카에다와 IS다. 작년 중반 쇠락해서 거점을 포기하고 흩어져 있는 폭력적 극단주의 테러 세력들은 순식간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에 스스로 놀랄 법하다. 지난 5년간 사실상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와 미군이 적대적 공존을 해왔던 이유는 바로 IS 때문이었다. 공동의 적이 있었기에 이란과 미국 간 물리적 갈등은 잠정적으로 유보되어 왔다. 그러나 다시 중동에서 미국과 시아파 이란과의 갈등이 시작되면 알카에다와 IS 등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혼돈을 먹고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넷째, 러시아는 속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시리아에서 존재감을 한껏 고양시킨 러시아다. 이제 옆 나라 이라크가 혼돈으로 접어들고 역내 반미 정서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중동의 전략적 이익을 하나하나 챙길 태세다. 피 흘리고 전비를 쏟는 것은 미국인데, 정작 외교적 이익과 영향력 확대라는 과실은 러시아가 추수하는 역설을 볼지도 모른다.

민낯 보여준 美 외교안보 라인

트럼프 정부 등장 이후 초강대국 미국이 보여준 생경한 모습에 국제사회는 아연 긴장도 하고 여러 번 놀라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그 절정이다. 뒷이야기가 더 충격적이다. 미국인 사망에 대한 보복 수위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솔레이마니 제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참모들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는 현 외교안보 정책결정 라인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시 말해 참모들의 '상황 분석, 결과 및 파장 예측, 대안 준비'라는 일반적 정책 결정 과정의 판단을 대통령의 의사가 물리쳤다고 볼 수도 있는 그림이다. 트럼프 정부 초기의 외교안보 라인 인사였던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그리고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같이 과감하게 쓴소리를 할 만한 전략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향후 미국의 중요한 대외 정책 결정을 대통령이 혼자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

미국과 이란은 기로에 섰다. 확전으로 치닫느냐, 아니면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 안정 국면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지점에 와 있다. 우려 일색의 분위기 속에서 이제 결국 트럼프의 결단에 다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푸념도 들린다. 김정은과 핵단추 크기 경쟁을 하다가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고 할 만큼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이도 결국 트럼프였기 때문이다. 스트롱맨의 시대, 한 사람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그만큼 불확실하고, 그만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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