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유적서 튀어나온 '백제'와 '로마제국'

노형석 2020. 1. 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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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변두리에서 '로마제국'의 흔적이 튀어나왔다.

2016년 권오영 서울대 교수(국사학) 등 국내 연구자들이 옥에오에서 채집한 구슬 8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백제 유적 출토품과 동일한 성분의 고알루미나 소다유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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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박물관의 '옥에오 문화'전】
고대 푸난국 유적서 출토된 유물들
구슬·목걸이부터 종교예술품 등
한반도와 뿌리깊은 교류 보여줘
전시장 입구에 서있는 6세기 남신상. 머리에 보관을 쓴 힌두교의 신을 형상화했다. 부처상처럼 길쭉한 귀에 잘록한 허리가 인상적이다.

동남아 변방에서 ‘로마제국’의 흔적이 튀어나왔다. 2~3세기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금화, 메달이 출토된 것이다.

믿기지 않는 발견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1944년 일어났다. 출토지는 당시 프랑스령 베트남의 영역인 인도차이나 반도 남단 메콩강 삼각주 기슭의 옥에오 유적. 이곳 습지 언덕 일대에서 2~3세기 로마 황제의 금화와 메달, 한나라 청동거울, 인도·동남아 장인들이 만든 구슬 따위의 유리 보석 제품, 금속장신구, 인장과 부적 등 고대 동서양 제국의 놀라운 문물들이 함께 쏟아져나왔다. 현지에 진주한 일본군의 감시를 받으며 발굴작업을 벌였던 프랑스 국립극동학원의 고고학자 루이 말레헤는 이 유적을 2세기께 그리스 지리학자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말한 신비의 도시 ‘카티가라’라고 생각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인도를 방문한 선원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인도 저편 황금반도 동쪽에 카티가라란 큰 항구가 있다는 옛 기록을 남겨놓았기 때문이었다.

옥에오 유적이 카티가라인지는 오늘날도 논란거리로 남아있지만, 유적의 실체는 분명해졌다. 인도차이나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이 통일된 뒤인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현지 정부와 외국 조사단의 후속 발굴이 거듭되면서 베일에 가려졌던 유적의 역사적 성격이 밝혀졌다. 기원전부터 7세기까지 로마와 아라비아, 인도, 중국, 한반도를 잇는 바다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옥에오 유적에서 나온 2~5세기께의 마노구슬.

옥에오 문화는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고대 한반도와의 교류설로 주목받는다. 간소하면서 정교한 백제의 구슬 세공과 밀접한 영향 관계가 있다는 점이 성분 분석, 형상 비교 연구를 통해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까닭이다. 일례로, 2016년 권오영 서울대 교수(국사학) 등 국내 연구자들이 옥에오에서 채집한 구슬 8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유물들은 백제 유적 출토품과 동일한 성분의 고알루미나 소다유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0년대 초반 국립공주박물관 등에서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 공주 무령왕릉, 부여 능산리, 풍납토성 등 옛 백제권 유적에서 출토된 유리 제품의 성분이 모두 옥에오를 지배했던 고대 푸난국 영역에서 산출됐던 성분으로 파악됐다. 문헌기록의 경우 선조들의 역사서에는 없지만,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543년에 백제 성명왕(성왕)이 부남(푸난)의 재물과 노예 2구를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백제를 비롯한 고대 한반도 국가들이 옥에오와 교류한 여러 정황적인 근거들이 갈수록 좀더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옥에오 다노이 유적에서 나온 금판들. 힌두교 신상이나 신을 상징하는 삼지창, 황소, 추상무늬 따위를 새겼다. 옥에오 유적 특유의 출토품으로 신전의 기둥 벽돌 사이에 채워넣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연말 시작한 서울 방이동 한성백제박물관의 기획전 ‘베트남 옥에오(Óc Eo) 문화-바닷길로 연결된 부남과 백제’는 이런 역사적 인연을 담고있다. 백제, 중국, 일본을 거쳐 동남아, 인도, 로마제국까지 이어진 해상 실크로드 거점 옥에오 유적, 유물을 국내 처음 소개하는 대형 전시회다.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이 유적의 출토 유물 202건, 1만2715점을 유적 발굴 역사, 대외 교류, 종교와 신앙 등의 여러 영역으로 나눠 선보이고 있다. 주최 기관만 4곳(박물관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옥에오문화유적관리위원회, 대한문화재연구원)에 달하는데, 이들 중 대한문화재연구원은 2018~19년 첫 현지 조사를 벌여 발굴한 매장용 항아리, 유리구슬 등의 자체 출토유물도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옥에오 다노이 유적에서 나온 금판들. 힌두교 신상이나 신을 상징하는 삼지창, 황소, 추상무늬 등을 새겼다. 옥에오 유적 특유의 출토품으로 신전의 기둥 벽돌 사이에 채워 넣었다고 전해진다.

전시의 고갱이는 ‘옥에오의 대외교류’ 영역에 등장하는 구슬류다. 수정, 홍옥, 마노, 연옥 등의 재질로 영롱한 빛을 뿜는 구슬들은 이 지역의 대표적 특산물로 꼽혔다. 현지 장인들은 다양한 종류와 기법의 제품들을 당대 최신기술로 제작하거나 수입해 중국, 백제 등에 국제 교역을 통해 유통시켰다. 진열장을 보면, 여러 색깔층이 얼비치게 했음이 분명한 목걸이편이 눈길을 끈다. 백제 고분 문화의 출토품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색감과 세공 실력을 드러낸다. 로마황제의 얼굴·이름이 새겨진 금화 복제품, 해와 달, 물 등을 표현한 5~6세기 푸난국의 동전, 신성한 새 ‘함사’와 한자풍의 글자가 쓰인 옥에오 동전 등도 지나칠 수 없는 유물이다. 전시장 후반부에는 옥에오의 양대 종교인 힌두교와 불교의 신앙 예술품과 제례 기물 등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힌두신전에서 벽돌로 만든 쉐마 기둥 안에 넣었다는 4~5세기께의 금판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판 위 표면에 새긴 형태와 무늬는 다양하고 개성적이다. 고대 한반도의 옛 와당 모양에 연꽃무늬를 새겨놓은 듯한 도상이 나타나는가하면, 윤회의 수레바퀴를 그리거나, 힌두교에서 신성시되는 소의 상 난디와 삼지창 등을 새긴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가장자리가 깨진 채 엄숙한 표정을 짓고있는 불상의 머리 부분과 더불어 고대 옥에오 사람들의 지순한 신앙심을 일러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3월15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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