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해피벌룬은 지금도 밤을 지배하고 있다

류인하 기자 2020. 1. 1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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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구매자 리스트 단독 입수… 서울 전역에서 유통 확인

클럽내에서 환각물질 ‘해피벌룬’을 흡입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 / AFP연합뉴스

‘행복한 풍선’. 해피벌룬은 베트남·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의 여행자 거리를 걷다보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신종 환각물질이다. 풍선 안에 든 기체(아산화질소)를 마시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지고, 웃음을 멈출 수 없다. 흡입자들은 그 순간을 ‘기분 좋은 상태’로 느낀다. 그래서 행복한 풍선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2017년 4월 13일 오후 1시. 경기 수원의 한 호텔에 투숙한 ㄱ씨가 잠시 외출했다가 방에 돌아왔을 때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바닥에 쓰러진 남자친구 ㄴ씨를 발견했다. 호텔의 신고로 119 구급대가 출동했지만 ㄴ씨는 이미 숨진 뒤였다. ㄴ씨의 소지품에는 고무관과 아산화질소 캡슐 120개, 풍선 등이 나왔다. 아산화질소 캡슐 중 일부는 이미 사용한 상태였다. 그의 죽음은 국내 해피벌룬 흡입자 첫 사망사고로 기록됐다.

당시 ㄴ씨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해부학적으로 사망 원인은 ‘미상’이지만 아산화질소 과다흡입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내용을 경찰에 회신했다. 아산화질소는 질산암모늄을 열분해할 때 생기는 투명한 기체형태의 물질이다. 커피숍에서 많이 사용하는 휘핑크림 스프레이에 들어가는 기체 캡슐이 바로 아산화질소다. ㄴ씨의 사망 이후 보건당국은 아산화질소를 환각물질로 지정, 법에서 허용한 용도(의료용·제조용) 외에는 유통·흡입을 전면 금지했다.

단독으로 입수한 해피벌룬 구매자 명단 중 일부.

‘버닝썬 사건’에서 또 등장한 환각물질

‘해피벌룬’은 2019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버닝썬 사건’에서 또다시 등장했다. 클럽 버닝썬에서 이사직을 맡았던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29·본명 이승현)가 2017년 2월 무렵 베트남에서 ‘해피벌룬’을 흡입했다는 베트남 현지 매체 <바오모이>의 보도가 국내에 알려지면서다. 당시 승리의 소속사 YG 측은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해피벌룬은 엄밀히 말해 ‘마약’은 아니다. 해피벌룬을 흡입해도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해피벌룬이 마약만큼 중독성이 강하지 않거나 부작용이 없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화학물질은 아니다. 과다흡입 시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중추신경 마비, 척추손상 및 근력손실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팔다리 마비, 뇌기능 손실 등도 대표적 부작용으로 꼽힌다.

그러나 해피벌룬을 흡입해본 사람들은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고 말한다.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 해피벌룬을 흡입하면 환각효과가 몇 배로 상승하는 느낌이라는 설명이다. 마약사범 중에는 마약을 투약한 뒤 해피벌룬을 추가로 흡입, 환각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때문에 해피벌룬은 마약유통업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유통되고 있다.

2019년 5월 서울지방경찰청은 해피벌룬의 판매·유통이 금지된 시점인 2017년 8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아산화질소 수입업체로부터 대량으로 사들인 뒤 고객들에게 비싼 값에 불법 판매를 해온 김모씨(35) 등 일당과 투약자 83명을 입건,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 중 유통에 적극 가담한 9명을 기소했다. 여기에는 ‘버닝썬’과 함께 마약의 온상으로 꼽혔던 클럽 아레나 DJ 장모씨(30)도 포함됐다. 이들은 1월 16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렇다면 강남 일대에서 암암리에 유통되던 해피벌룬은 대규모 유통업자들의 검거 이후 잠잠해졌을까. 적발하지 못하고 있을 뿐 여전히 해피벌룬은 곳곳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마약 역시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한 소형 클럽 대표는 “버닝썬 사건 이후 단속이 심할 것을 예상하고 최대한 마약이 돌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우리는 심지어 화장실 앞에도 (마약흡입을 할 수 없도록) 가드를 세워놨다”고 말했다. 반면 강남 일대 클럽에서 활동 중인 MD들은 “(마약을) 할 사람들은 화장실이 없어도 한다. 빨대랑 주사기가 지금도 심심찮게 바닥에 굴러다니는데…”라고 했다. 실제 버닝썬 이후 이름을 바꿔 영업 중인 한 대형 클럽에서 현재 마약흡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진술도 나왔다. 한 제보자는 “예전에 클럽 아레나에서 일했던 MD 중 몇 명이 또다시 고객들을 상대로 그 짓(마약 제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클럽은 좌석 일부를 뜯어내 마약투여가 가능한 시설로 변경한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중에서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아산화질소(휘핑크림 제조용) 캡슐. / NUVO 캡처

일부 클럽 MD들 구입, 고객에게 제공

수도권 일대에서 해피벌룬을 거래했던 구매자들의 연락처와 접선 장소가 적힌 리스트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약 540명의 휴대전화번호와 해피벌룬 전달장소 및 구매자의 특성이 적힌 해당 리스트를 살펴보면 해피벌룬이 강남뿐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유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남구 논현동·역삼동·삼성동이 주거래지지만 구로구·마포구·용산구·양천구·영등포구 등에도 매수자들이 있었다. 인천과 경기도에서도 거래가 이뤄졌다. 일부 클럽 MD들은 이런 식으로 구입한 해피벌룬을 클럽 내로 반입해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강남 일대에서 대규모로 해피벌룬 유통을 하던 업자들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지만 그들과 거래했던 고객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해피벌룬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해피벌룬 유통은 마약유통업계에서도 ‘꽤 남는 장사’로 취급된다. 휘핑크림제조용 아산화질소 소형캡슐(8g) 100개짜리 1상자를 대략 3만6000원에 사들인 뒤 고객들에게 판매할 때는 상자당 10만원 이상 값을 받기 때문이다. 한번 흡입에 따른 지속시간이 짧아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대량으로 구입한다. 이쪽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100개들이 한 상자를 전부 다 흡입하는 데에 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고 했다. 지난해 해피벌룬 유통업자들과 함께 적발된 유흥업소 여종업원(구매자)은 2018년 1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약 204회에 걸쳐 아산화질소를 상습적으로 구입했다. 캡슐 수로만 따지면 약 5개월 동안 3만2300여 개를 혼자 흡입한 셈이다.

정부는 2021년 1월 1일부터 아산화질소 용기를 현재의 8g짜리 소형캡슐 대신 2.5ℓ 이상의 고압 금속제 용기를 통해서만 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을 고시했다. 소형캡슐 유통은 2021년부터 전면금지된다. 그러나 해피벌룬의 불법유통이 근절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여전히 소형캡슐 제조 및 유통망은 건재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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