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 올해 '제2의 전성기' 맞을까

김태훈 기자 입력 2020. 1. 1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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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세 개편으로 수제맥주 더 쉽고 값싸게 만날 수 있는 기회… 어떤 맛이 소비자 잡을까

다양한 종류의 수제맥주를 맛보며 비교할 수 있게 수제맥주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샘플러 맥주 세트. / 경향신문 자료사진

맥주 공장에 가서 맥주를 시음해보면 안다. ‘맛이 없다’며 악평을 듣는 국산 맥주를 포함해 어느 브랜드의 맥주든 이전에 경험했던 맛보다 훨씬 좋은 풍미를 준다는 것을. 갓 만들어 맛이 좋은 점은 맥주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은 호프집의 생맥주가 더 맛있다’는 속설과도 일맥상통한다. 회전율이 높을수록 맛이 떨어지지 않으므로 제맛을 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세 개편으로 올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는 수제맥주는 어떨까. 대형 맥주업체 제품보다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수제맥주를 더 자주 만나게 되면 맛과 품질 모두 향상될 수 있을까.

수제맥주 세금 최대 30%까지 줄어

“같은 수제맥주라도 언제 만든 제품을 마시느냐에 따라 혀가 예민한 사람은 차이를 확 느낄 정도지요.” 이현종씨(43)는 서울 교외에 있는 양조장(브루어리)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맥주와 함께 다양한 상표의 수제맥주를 팔고 있다. 자신이 만든 맥주 못지않게 국내·외의 다양한 수제맥주를 맛본 결과 ‘회전율’이 캔·병맥주의 맛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꼈다. 현재까지 국내 수제맥주 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는 맥주는 대부분 대용량 용기인 케그에 담겨 유통되기 때문에 비교적 맛의 변질이 적지만, 일부 캔·병입 수제맥주는 유통경로가 한정된 탓에 재고가 쌓이면 맛에도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수제맥주일수록 잘 팔려야 더 맛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프랜차이즈에 가맹된 수제맥주 전문점이 아닌 작은 술집 주인들이 으레 그렇듯 집에서 소량만 만드는 홈브루잉부터 시작했다. 점점 더 다양하고 오묘한 맥주 맛에 빠지게 되면서 양조설비도 키우고 손님들의 반응을 함께 살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형태의 차림표가 탄생했다. 프랜차이즈형과 독립형을 막론하고 어느 수제맥주 전문점에서도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몇 종류는 고정적으로 판매한다. 그리고 이씨 자신이 좋아하거나 새롭게 시도해보는 맥주, 또는 계절을 타는 맥주는 다양하게 구비해 때마다 바꿔 내놓으며 손님들에게 색다른 맛을 전하려고 한다. 그는 “일정 규모 이상의 설비를 갖춘 브루어리에서 맥주를 공급받는 프랜차이즈 수제맥주가 아무래도 맛에 변화가 없이 안정적이고, 다양성 면에서도 소형 업체를 능가할 수밖에 없다”며 “주세가 개편된 덕에 앞으로 판로만 잘 확보해 가면 우리도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겼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주세 체계 개편의 주요 내용 중에는 맥주에 부과하는 세금을 가격에 과세하는 종가세 대신 판매량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로 바꾸는 변화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수제맥주에 붙는 세금은 종전에 비해 최대 30%까지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수제맥주 시장점유율은 전체 맥주시장의 1%를 겨우 넘기는 데 불과하지만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서 보다 시장을 넓힐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특히 수제맥주는 들어가는 고급 재료 중 해외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재료의 가격을 비롯해 연구 및 제조 인건비, 그리고 양조장 임대료까지 모두 투입되는 족족 세금에 반영된 탓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형 맥주업체 역시 주세 개편에 따른 혜택은 돌아간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시장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맥주가 비교적 가벼운 맛에 탄산이 강하게 들어간 미국식 라거 스타일에 치우쳤던 탓에 다양한 특색을 갖춘 수제맥주로 눈을 돌릴 여지도 커졌다. 나쁘게 표현하면 ‘밍밍한’ 국내 기성 맥주 맛에 질렸다면 수제맥주 중에서도 홉의 다양한 향을 살린 ‘페일 에일’이나 밀맥주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맛과 질감·알코올 도수 등 천차만별

에일과 라거는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위로 뜨는지, 아니면 가라앉는지 그리고 발효 온도가 높은지 낮은지에 따라 분류된다. 그러므로 에일과 라거 중에도 맛과 질감, 알코올 도수 등이 천차만별일 정도로 맥주 종류는 다양하다. 페일 에일은 대부분의 수제맥주 전문점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종류의 맥주 중 하나다. ‘인디아 페일 에일(IPA)’을 제외하면 쓴맛 대신 재료로 사용된 홉에 따라 과일향 같은 다양한 향을 즐길 수 있다.

‘바이젠’ 또는 ‘바이스비어’라고 불리는 밀맥주도 고유한 향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해외에서 수입된 맥주에 비해 국내 수제맥주 전문점에서는 구색이 단조로운 편이었다. 밀 맥아를 발효시켜 고유한 향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수제맥주 양조장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이전보다 개성이 강한 수제 밀맥주를 즐길 수 있는 기회도 늘고 있다.

탄산의 청량감은 줄이고 보다 깊고 무게 있는 맛을 원한다면 일반적인 라거보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고 발효기간도 좀 더 긴 ‘복(Bock)’이 입맛에 맞을 수 있다. 비교적 도수가 높아 겨울에 어울리는 맥주다. 일반적으로는 어두운 색깔을 띠는 편이지만 개성이 강한 수제맥주 가게에서 고른다면 붉은색이나 짙은 갈색 등 다채로운 색깔을 자랑하는 수제 복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 복이 독일식 라거에 가까운 흑맥주라면 스타우트나 포터는 아일랜드의 ‘기네스’로 대표되는 쌉쌀하고 맥아의 향이 강한 흑맥주다. 흑맥주라는 점은 같지만 각각의 수제맥주 브랜드마다 복과 스타우트에 독특한 개성을 더한 맥주를 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수제맥주 전문점을 돌며 제조법과 노하우에 따라 달라지는 색다른 풍미를 즐길 수도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2012년 7억원 수준에서 2015년 218억원, 2018년 633억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소규모 맥주 제조자도 직접 만든 맥주를 외부로 유통할 수 있게 허용한 2014년 이후로 시장에 참여한 수제맥주 제조업체도 54개에서 2019년 118개까지 늘었다. 제주맥주·더부스 등 연간 매출 50억원 이상 업체에서는 캔맥주 출고가를 인하하거나 제조설비를 확대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시장개척 전략을 내놓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전보다 더 품질은 높이면서도 가격은 낮출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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