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태양광 들어오고 배나무 죽었다" 과수원 주인의 눈물

김민중 입력 2020. 1. 13. 05:01 수정 2020. 1. 13.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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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의 배 과수원. 한 배나무가 이파리를 잔뜩 매단 채 죽어 있다. 영암=김민중 기자



300그루 중 100그루 죽어가
배나무들이 태양광발전 시설 바로 옆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최명숙씨 배 과수원(면적 2만㎡가량) 이야기다.

6일 찾은 과수원 한편엔 시커멓게 불에 탄 듯한 배나무들이 서 있었다. 전체 배나무 300여 그루 중 100그루 가량이 이미 죽었거나 거의 죽은 상태였다.

죽은 나무의 가지 하나를 잡고 아래로 살짝 당기니 힘없이 부러졌다. 뿌리 쪽에 곰팡이가 슨 나무도 많았다.

어떤 나무는 말라 비틀어진 이파리를 잔뜩 매단 채 죽어 있었다. 최씨는 눈물을 흘리며 “나무가 살아 있었다면 겨울인 지금 잎을 다 떨궈야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12일 네이버 지도(위성사진)로 본 최씨 배 과수원과 인근의 태양광발전 시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최씨에 따르면 2017년 6월 동쪽 바로 옆(면적 5만㎡가량)에 태양광발전기가 들어서면서 배나무가 죽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꽃받침이 타들어 갔고, 같은 해 12월 나뭇가지들이 말랐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완전히 죽은 나무가 발견되고 있다. 약 40년간 배 과수원을 운영해온 최씨는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며 “누가 봐도 태양광발전 시설 때문 아닌가”라고 말했다.

태양광발전기가 내뿜는 전자파나 반사되는 빛, 열 등이 과수원에 해를 끼쳤다는 게 최씨 주장이다. 공사 초기 태양광발전기 부지에 3.5m 정도 높이로 흙 쌓기를 한 점에 대해서도 최씨는 “비가 올 때 물이 과수원 쪽으로 몰려 물 빠짐 기능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태양광발전기와 연관성”
전문 기관의 조사에서도 “태양광발전기 때문에 배 나무가 죽는 것 같다”는 취지의 진단이 나왔다. 농촌진흥청은 2018년 4월 “꽃받침이 타들어 가는 현상은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 증상들과는 다르다”며 “태양광발전 시설에서 가까운 나무일수록 피해가 심하고 먼 나무일수록 피해가 없는 점으로 봐 태양광발전 시설과의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배나무 뿌리에 곰팡이가 슬어 있다. 영암=김민중 기자


공사 과정도 논란
최씨 과수원 옆 태양광발전 시설은 최대 3.5m 높이로 흙을 쌓고 부지를 높여 만들어졌다. 최씨는 2017년 6월부터 “그렇게 하면 과수원 흙바닥의 물빠짐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해왔다. 하지만 영암군청은 태양광 시설 업체 측의 흙쌓기를 허가해줬다.

이에 대해 영암군청은 “행정에 문제는 없다”며 “전자파에 따른 과수원 피해를 방지할 목적이었을 뿐 최씨가 주장하는 물빠짐 기능 악화는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태양광 업체 에이스테크와 군청의 유착’도 의심하고 있지만, 심정복 영암군청 종합민원과장은 “인허가 과정에서 어떠한 위법 사실도 없었다”고 밝혔다. 전남도청과 감사원도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 에이스테크의 박찬생 부사장은 “공무원들에게 커피 한 잔도 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 과수원과 그 바로 옆에 태양광발전 시설. 영암=김민중 기자


소송전 비화…“태양광 탓 마을 전체 쑥대밭”
오랜 시간 사건이 뒤엉키면서 법적 다툼마저 벌어지고 있다. 최씨와 에이스테크는 민사 소송도 진행 중이다.

에이스테크는 마을발전기금을 낸 적이 있는데 이 돈의 처리를 두고 의견이 갈려 최씨와 마을 이장 등의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최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도 받았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앙금은 가시지 않은 상태다.

에이스테크 박 부사장도 “분쟁 때문에 공사가 지연돼 그 피해액이 10억원을 넘는다”며 “과수원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피해자다”고 하소연했다. 한 주민은 “태양광 하나 때문에 마을 분위기가 쑥대밭이 됐다”고 전했다.

나뭇가지를 살짝 누르니 힘없이 부러졌다. 영암=김민중 기자


‘태양광 피해’ 호소 잇따라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에 따른 분쟁은 영암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선 지난해 9월 태양광발전기 인근의 사과나무가 무더기로 죽는 현상이 일어났다.

남원에서도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속에서 농가와 업체, 관청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충북 옥천군에선 2018년 9월 태양광발전 시설 공사 도중 산사태가 일어나 인근 밭 등이 흙더미에 덮이기도 했다.

2018년 5월 기형 배가 달렸다. 정상이라면 얼룩 무늬가 없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체 배의 70%가 기형과였다고 한다. [사진 최명숙씨]


이렇다 보니 애초에 공사 허가를 내주지 않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청은 2018년 3월 감 과수원 부근의 태양광발전 시설물 설치 허가신청을 거부했다.

시설물이 마을 주민 생활에 피해를 줄 수 있고 자연경관 훼손이나 자연재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설치신청 업자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걸었지만, 법원은 구청 손을 들어줬다.

이 밖에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의 김순환 사무총장은 “태양광발전 시설은 정기적으로 세척제로 관리해야 하는데, 이 세척제의 독성이 지하수나 토양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까지 수백 건 넘게 발생한 원인 불명의 태양광발전 시설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10월 27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의 한 태양광발전 설비 내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현황 전수조사해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태양광발전 육성 정책을 편다면, 그 부작용에 대한 해결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여창 서울대 산림환경학과 교수는 “현재 태양광발전기가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가 거의 안 돼 있다”며 “연구개발을 병행하면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태양광발전 건설 과정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소속)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20%)’ 계획에 맞춰 태양광발전 용량 목표를 채우는 데만 급급하다 벌어지는 일”이라며 “피해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암=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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