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정착은 평생 소명".. 냉전체제 해체·남북 화해 앞장 [문선명 총재 탄신 100주년]

강구열 2020. 1. 14.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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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文총재의 평화관 / "종교간 담 헐지 않으면 안 돼" 화합 강조 / 초교파협의회·세계평화종교연합 등 창립 / 한학자 총재, 文총재 의지 계승·발전시켜 / 고르바초프 만나 '종교 자유' 허용 주문 / "한반도 평화통일 땐 세계 통일되는 것" / 北 김일성과 만남선 5개 합의 이끌어내 / "비무장지대, 평화공원으로 조성" 제안도
2009년 발간된 문선명 총재의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는 제목이 그렇듯 ‘평화’를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나는 평생을 한 가지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평화로운 세상, 전쟁과 다툼 없이 온 세계가 사랑을 나누며 사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2009년 6월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문선명 선생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실 속의 온갖 갈등과 분쟁을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문 총재는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는 것이 과연 거창한 일인가요?”라고 물으며 글을 이어간다.
평화는 문 총재가 평생을 매달려 온 화두였다. 평화란 ‘하나님의 참사랑과 진리’에서 시작해 “인류 모두가 형제자매인 것을 깨달아 지구 대가족사회를 이룩할 때 실현될 것”이라고 설파했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종교지도자로서 종교·종파 간의 화합을 역설했고, 국제질서를 양분하고 있던 공산권의 최고지도자들을 만나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데 일조했다.
1991년 11월 만난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화정착은 하나님이 부여한 소명”

문 총재는 평화세계의 정착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이라고 여겼고, 그것은 국제질서에서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권력 지향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혹은 ‘물리적 힘의 논리’로서는 실현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런 판단을 전제로 내세운 것이 ‘하나님주의’이다. “하나님을 중심한 개인의 심신통일과 부부를 중심한 가정에서부터 평화의 교육과 실천이 이루어짐으로써 사회, 국가, 세계의 평화를 구현하자”는 생각이다.

평화 정착에 있어 특히 강조했던 것이 종교 간의 화합이다. “종교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지 않고는 절대로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자기만이 옳다는 종교적 독선은 종종 처참한 분쟁을 일으켰고, 현재진행형의 불행이기도 하다. 더욱이 종교 분쟁은 “하나님의 뜻도 아닌 것에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것이어서 심각함이 더했다.

문 총재는 “세상의 모든 종교는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한다”며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역설했다. 세계 각국의 종교학자 40명을 모아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주요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단어들을 연구한 결과 73%가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세계경전’을 1994년 편찬함으로써 이런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기도 했다. 문 총재는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세상은 더 이상 전쟁과 분란이 없는 평화세계가 된다”며 “궁극적으로 종교가 갈 길은 평화”라고 강조했다.
한학자 총재(가운데)가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지난달 28일 열린 세계성직자협의회 창립식에서 창립 발기위원에게 메달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종교 관련 국제기구의 창설은 이런 인식의 산물이었다. 문 총재는 ‘초교파협의회’, ‘국제종교재단’, ‘세계평화종교연합’ 등을 창립했고 ‘초종교스포츠 페스티벌’, ‘세계종교회의’ 등을 개최했다. 문 총재의 의지는 한학자 총재에게로 이어져 계승,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뉴욕에서의 ‘세계성직자협의회’(World Clergy Leadership Conference·WCLC) 창립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WCLC는 “종교·교파·국가를 초월해 가정을 바로 세우고 하나님 중심의 신통일세계와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기구”로 창립식에는 세계 70여개국 1800여명의 성직자를 포함, 3만여명이 참석했다. 한학자 총재는 “성직자는 하늘이 준비한 의인이기 때문에 자기를 돌보기보다는 위하여 사는 참사랑으로 나라와 세계를 품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며 “인류를 하늘부모님의 자녀로 인도하는 성직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냉전체제 해체부터 평화통일까지

평화를 바라보는 문 총재의 관점에는 종교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지만 갈등의 요인이 되는 현실 정치질서의 문제에도 눈감지 않았다. 국제질서를 지배하며 각종 분쟁의 원인이 되었던 냉전체제의 해체를 위해 공산권 지도자를 만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드러지는 면모다. 공산권의 몰락을 앞서 전망한 반공주의자였으나 여기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유연한 행보를 보여준 것이다.

1990년 4월 문 총재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과의 만남은 지금도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문 총재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주문하면서 “세계평화를 위해 일하는 세계의 대통령이 되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과 소련의 수교를 요청하기도 했다.
1990년 4월11일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한 문선명 총재(왼쪽)가 크렘린궁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문 총재는 이후 고르바초프와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만남을 주선해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 
문선명, 한학자 총재 내외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서울에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문 총재 내외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90년 첫 만남 이후에도 친분을 이어갔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서전에 “세계정세의 축소판인 한반도에서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을 하면 세계가 통일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문 총재는 1991년 11월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이 만남에서 고령자를 우선으로 한 이산가족찾아주기 사업 추진,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 북한의 평화적 경제사업에 대한 통일그룹의 지원,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금강산 개발 실시의 5가지 합의가 나왔다. 지금도 남북관계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이다. 김일성 주석은 문 총재에 대해 “배포도 크고 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문 총재는 세계평화 달성을 위한 유엔 개혁도 강하게 주문했다. “개별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현재의 유엔으로서는 세계평화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유엔을 대체할 기구들을 창설하기도 했는데 ‘세계평화도서국가연합’,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등이 그것이다.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비무장지대를 평화공원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2000년 8월 열린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연차 총회에서 “남북이 대치해 온 한반도의 군사분계선 주변 완충지대 전부를 유엔 관할 하의 평화지구로 만들고, 그것에 인류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전시관과 박물관, 교육장과 평화공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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