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침에 나오라 해 12시간 대기" 아역 배우들 묻지마 야간 촬영

이효상 기자 입력 2020.01.14. 16:33 수정 2020.01.1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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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아동·청소년 연기자 103명
ㆍ12시간 이상 촬영 경험 61%
ㆍ임금 체불에 인격 모독까지

“아침 10시였나, 11시까지 오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 설명도 없이 ‘대기’라고 하더라. 조금 후에 점심 먹고 (촬영)한다고 했다. 시간 다 빼서 학교 결석하고 왔는데, 그런 게 황당한 거다.”

초등학생 아역 배우 ㄱ양의 부모는 촬영현장의 고무줄 대기시간과 장시간 노동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날 ㄱ양은 12시간 가까운 대기 끝에 밤늦게서야 야간촬영에 들어갔다. 주연 배우의 촬영이 늦어지면서 일정이 모두 밀린 것이다. 아역 배우에게는 야간촬영 공지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성인에게도 가혹한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에 이렇다 할 권리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노출돼 있는 아동·청소년이 있다. 촬영현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만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이다. 이들에게 장시간 노동과 야간촬영은 다반사였다. 드물게는 임금 체불과 인격 모독까지 자행됐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주축이 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은 14일 국회에서 아동·청소년 연기자 1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드라마 제작 현장 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눈에 띄는 것은 장시간 노동이다. 하루 최장 촬영 시간을 물은 결과 ‘12시간 이상’이 61.2%로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세부적으로는 ‘12시간 이상~18시간 미만’이라 답한 사람이 36.89%로 가장 많았다. 24시간 이상이라 응답한 사람도 3명 있었는데, 이들은 최장 29시간, 32시간, 36시간 촬영했다고 각각 답했다.

야간촬영을 경험해 봤다는 응답도 68.9%로 높게 나타났다. 야간촬영 경험자 70명에게 제작진이 야간촬영 동의를 구했는지 물은 결과 38명은 ‘특별히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장시간 촬영으로 인한 수면 부족이나 학습권 침해도 심각했다. 전체 응답자의 69.9%는 ‘촬영 기간 동안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고, 현재 학교를 다니는 이들 중 76.9%는 ‘주중 하루 이상은 촬영을 위해 결석 또는 조퇴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8.2%는 장시간 노동을 했음에도 약속된 출연료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고등학생인 연기자 ㄴ양은 심층면접에서 “하루 20시간 일하고 제가 받은 돈은 최저임금도 안되는 3만원대였다”며 “학생이고 어차피 따지지도 못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들은 촬영 현장에서 인격 모독도 겪어야 했다. 18.1%는 욕설을 들었고, ‘외모 지적이나 다이어트 또는 성형을 강요받았다’는 답변도 3건 있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배우 허정도씨는 “아이들은 더 여려서 더 많이 아픈데, 더 어려서 더 말을 못한다”며 “안전, 신체적·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자유선택권 등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매우 구체적인 조항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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