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정책이 교조주의적 갑질에 젖은 건 아닌지

김기찬 2020. 1. 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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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터 열어야 좋은 정책 구현돼
이념 집착하면 현실과 멀어지고
독선적 갑질은 결국 자신을 망쳐
쓴소리 잘 조합하면 해법도 보여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정부가 반환점을 돌면서 정부를 지지했던 노동계는 물론 학계와 정부 일각에서도 정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청와대를 비롯한 정책 당국은 이런 목소리에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학계 전문가의 발언 하나하나를 문제삼으며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학계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요지는 간단하다. 정책에 현장은 없고, 생각(이념)만 있다는 거다. 이러니 정책이 먹힐 리 없다. 부작용만 여기저기서 분출된다. 땜질식 보완책이 난무했다. 국가 경제가 바닥을 헤매는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정부 측의 불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군은 쓴소리하면 안 된다는 건지, 우군이 하는 쓴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건지 가늠이 안 된다. 오히려 ‘잘 새겨서 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하겠다’고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고. 어느 경제학자는 “자신들의 정책이 무조건 맞다고 확증편향적으로 우기는 데야 조언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정책 파트너의 고언조차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재단하는 건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서소문 포럼 1/15

정책을 만들 땐 무엇보다 잘 들어야 한다. 현실에 녹아드는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귀를 열지 않고 머릿속의 생각만 뱉어내면 현실에선 겉돌 수밖에 없다. 그저 겉돌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상처를 내고 키우기 일쑤다. 사회적 대화를 하는 이유도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여러 의견을 조합하다 보면 해법이 보이게 마련이다. 도그마(dogma)는 조합된 탄탄한 논리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이 그랬고, 정조가 그런 정치를 했다. 그 옆에 간신이 낄 틈이 없다.

간신이란 게 뭔가. 그들에겐 교조주의적 신봉자라는 독특한 자질이 있다. 모시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그에 맞춰 일을 처리한다. 그게 맞든 안 맞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질주한다. 아니 무조건 맞다고 여길 수도 있다. 혹여 다른 견해라도 나오면 아예 차단한다. 타박하고, 폄하하는 포장술도 귀재급이다. 보기 좋은 사례나 자료만 골라서 보고하고, 윗사람을 그것에 젖어 들게 한다. 갈수록 현실감각은 둔해지게 마련이다. 혼란기를 돌이키면 늘 간신이 득세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갑질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교조주의 유산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에서 비롯되기 일쑤이니 말이다. 배려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반대 의견은 물론이고, 창의적이거나 색다른 의견도 필요 없다. 시킨 건 무조건 믿고 밀어붙여야 하는 절대 선(善)이다. 그런 갑질에 멍드는 건 을이다. 일터에서 다치면 산업재해 신청을 하고 요양이라도 할 텐데, 정치권이나 정부의 정책 때문에 멍들면 치료할 길도 없다.

갑이 을을 위한답시고 펴는 정책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을끼리 싸움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최저임금만 해도 그렇다. 소득을 올려 성장을 꾀한다는 명분으로 확 올리니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회적 약자만 곤욕을 치른다. 급기야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이란 이름으로 수조 원의 돈을 퍼붓는 전대미문의 시장교란책까지 써야 했다. 고려공사삼일(고려의 정책은 사흘을 못 넘긴다)에 비견할 만하다. “세금으로 부작용을 희석할 정책을 왜 밀어붙였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갑질은 을에게만 상처를 주는 게 아니다. 대한항공에서 벌어졌던 갑질은 급기야 가족 내부로 번졌다. 갑질의 폐해가 결국 자신을 겨냥하고, 소리소문없이 내부로 파고들어 곪게 한 셈이다. 귀를 연다면, 배려심만 가져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야 살 수 있다는 생각만 지녀도…. 이게 세상의 모든 교조주의적 갑에게 을이 던지는 바람 아닐까.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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