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원 "유치원 무단폐원, 학부모에 배상"..설립자 손배 인정 첫 판결

장예지 2020. 1. 1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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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유치원 학부모, 손배소 제기
법원 "금전적으로나마 정신적 손해 배상 의무"
`정치하는 엄마들\'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꾸는 유아교육법 24조2항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립유치원 설립자가 유치원을 무단폐업한 경우 원아와 학부모가 입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첫 법원 판단이 나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6단독 송주희 판사는 경기 하남 예원유치원 원생과 학부모 등 31명이 유치원 설립자 박아무개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14일 밝혔다. 송 판사는 “(설립자 박씨는) 유치원을 무단폐원해 재학 중이던 원생과 학부모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으므로 금전적으로나마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유치원 무단폐원 당시 재학 중이던 5∼6세반 유치원생 5명에 대해 1인당 30만원을, 이들의 부모에게는 20만원씩 배상하라”고 했다. 학부모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폐원을 결정한 사립유치원의 행태로 아이와 학부모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설립자가 금전적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립자 박씨는 2018년 9월 유치원 건물 노후화와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학부모들에게 돌연 유치원 폐원을 통지했다. 같은 해 4월 부실급식 및 보조금 부당 수령 등에 관한 고용 원장의 내부 고발이 있은 뒤 취한 일방적 조처였다. 당시는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해 일부 사립유치원이 집단 반발하면서 무단폐원을 통보해 논란이 일었던 시점이기도 하다.

경기도교육청은 박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폐원 인가 신청을 한 것으로 보고 특정감사를 시작했다. 교육청 감사 결과 예원유치원은 유치원 회계 업무 및 교육과정 운영, 급식 운영 등에서 모두 ‘부적정’ 평가를 받아 기관경고 및 시정 처분까지 받았다. 박씨는 업무 관련 권한이 없는 며느리와 아내 등 가족에게 조리, 행정 업무를 맡기거나, 야채죽 대신 ‘물죽’을 주고 통조림 과일을 ‘과일샐러드’로 둔갑시켜 급식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예원유치원 학부모들은 이러한 감사 결과와 내부 고발 내용 등으로 무단폐원 및 부실교육·부실급식 제공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유아교육은 의무교육인 초등교육에 앞서 시행되는 기초교육으로, 평등한 출발선을 보장할 필요가 있어 함부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며 “누리과정이 진행되는 3년 동안에는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보고 학부모와 맺은 유아교육 서비스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박씨에 대해 채무불이행 책임도 함께 물었다.

송 판사는 무단 폐원에 대한 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박씨가 학부모 동의서를 받지 않고 유아 지원 계획도 수립하지 않은 채 교육청에 폐쇄인가를 신청했다 반려됐음에도 유치원 폐쇄를 강행했다. 그로 인해 원아들은 학습권을 침해받고, 학부모들도 자녀를 급히 전원시켜 재산상, 비재산상 손해를 보았을 것이 자명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송 판사는 “예원유치원이 교육청 폐쇄인가를 받지 못했을 지라도 학부모와 ‘위법한 계약해지’를 한 것은 아니고, 모든 원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유치원을 운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며 채무불이행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 판사는 부실급식 및 부실교육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송 판사는 “경기도교육청의 특정감사 결과 및 식단표·급식일지와 식재료 구매접수서 내역이 일부 다른 점 등을 보면 유치원 급식의 질이나 수업 내용이 학부모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유치원생들의 건강과 성장에 위해를 가할 만한 부실한 식재료를 이용했다거나 영유아에 대한 보호 및 배려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실한 급식이나 교육을 제공했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다.

원아와 학부모를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최근에도 유치원 무단폐원 피해를 입은 학부모들이 소송을 알아보는 경우가 많아 법원이 무단폐원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도교육청 특정감사 결과 잘못된 점이 상당수 적발됐음에도 부실 급식과 파행적인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은 불법행위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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