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 칼럼] 문재인 정부의 권력장악 솜씨

박보균 2020. 1. 1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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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향한 문 대통령 애틋한 편애
분열과 평정의 통치 방식 그대로
386 집권 세력의 치명적 역설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파탄' 책임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승자의 기색이다. 그것은 난제를 평정한 느긋함이다. 그의 말과 표정에서 묻어난다.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다. “어제부로 공수처를 설치했다.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제도적 개혁작업이 끝났다.” 그 속에서 검찰의 윤석열 사단은 와해됐다. 그 작업은 체제 변혁의 기반 확대다. 자유한국당은 그것을 “좌파독재의 친위대 구축”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소통·협치를 다짐한다. 그런 약속은 반복된다. 실천은 따르지 않는다. 그 말은 정치적 알리바이로 그친다. 그의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시선은 애틋하다. “(조 전 장관이)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 조국의 탐욕과 위선은 다수 국민에게 상처를 줬다. 문 대통령은 민심의 그런 고초엔 다가가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편 가르기에 능숙하다. 반대쪽은 여전히 적폐의 배제 대상이다. 자기편은 관용과 온정으로 감싼다. 문 대통령의 배타적인 편애는 집단 충성을 유도한다. 지지층을 결집시킨다. 분열은 문재인 정권의 대중 관리 방식이다. 증오와 복수심은 끊임없이 생산된다. 그 속에 공세적인 장기집권 의지가 존재한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노골적이다. “4·15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 교체를 넘어 우리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사회적 패권의 교체까지 이룩하겠다.” 패권(覇權·헤게모니)은 좌파 사상가 그람시의 어휘다. 패권 교체는 문 대통령식 주류 교체와 같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진지(陣地)론은 386 운동권의 전략 교리다. 사법부·검찰·문화·교육계 진지에 그들의 추종자들이 포진했다.

이인영의 으스댐은 도발적인 열망이다. “우리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구절은 심상치 않다. 과거에 몰입하면 거친 반목이다. 조선시대 사화(士禍)의 분위기가 고착된다. 역사의 복수심이 난무한다. 공수처 추진에 복수심이 서려 있다. 바탕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다. 그로 인한 검찰에 대한 원한이다. 공수처는 괴물이다. 검찰이 지목한 독소조항 때문이다. 그것은 ‘수사기관이 고위 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는’ 부분이다. 전두환 신군부의 ‘합수부’를 연상시킨다. 10·26 이후 합수부는 모든 수사기관을 조정·통제했다.

지금의 공수처는 노무현 구상과 다르다. 김대환은 노무현 정권 시절 노동장관이다. 그는 이렇게 확신한다. “노무현 정권의 접근 자세는 순수했다. 노 대통령이었다면 권력의 안전장치인 독소조항을 꾸짖고 뺐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공수처는 노무현 정신의 모욕이다.

국회의 절차와 관행은 망가졌다. 제1 야당 황교안의 한국당은 배제됐다. 민주당과 군소정당의 1+4 제휴는 교묘하다. ‘4’는 좌파와 호남정당이다. 1990년 노태우 정권 때 민자당 3당 합당이 있었다. 그것은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보수 우파 통합이다. 그것으로 김대중의 제1 야당 평민당은 소외됐다. 호남 정치는 고립됐다. 1+4 야합적 제휴는 보수우파를 포위한다. 그것은 3당 합당 후 30년 만의 복수극이다. 장기집권 욕망과 복수심은 얽히며 단단해진다.

1+4 체제는 국회의 파탄을 상징한다. 동유럽 헝가리의 상황을 떠올린다. “의회는 반대당이 없어도 작동한다.” 그 말은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의 배짱이다. 오르반은 ‘합법적 독재’의 개척자다. 헝가리는 소련 붕괴 후 민주주의 모범이었다. 오르반은 민주화 투사 출신이다. 그의 집권 후 민주주의는 헝클어졌다. 그것은 치명적인 역설이다. 그의 장기 독재 수단은 정교하다. 그의 선구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다. 계승자는 폴란드의 카친스키다.

그들의 권력기관 장악 수법은 정교하다. 우선적 공통점은 사법부 평정이다. 그것으로 3권분립은 무너진다. 검찰의 권력 친위대화, 선거 게임의 룰 변경이 이어진다. 퍼주기 포퓰리즘은 경제 토양을 개조한다. 자활·자립정신은 밀려난다. 합법의 틀은 끼워 맞춰진다. ‘민주적 독재’의 무대는 광장이다. 의회민주주의는 퇴보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득세한다.

이런 풍광들은 문재인 정권의 권력 장악 기량과 비슷하다. 김명수 사법부의 코드화, 공수처 설치, 연동형 비례대표제, 세금 퍼주기는 연관성을 갖는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위기’를 진단·경고한다. “집권 386 진보세력이 민주화 이전으로 회귀해 역사와 대결하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진보파가 이해하는 직접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동일하다.”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부장검사는 이렇게 분개한다. “검찰 개혁은 민주화 이후 가장 혐오스러운 음모이자 퇴보다.” 문재인 정권의 권력 질주는 거침없다. 한국당의 외침은 민심으로 굳어진다. “한국이 민주적 독재, 좌파 권위주의 대열에 들어섰다.”

문 대통령의 말은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끝나고 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의 퇴임 후 소망은 실현될 것인가. 그의 기자회견 부제는 ‘확실한 변화’다. 국민 전체가 어울리는 변화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관이다. 대통령은 잊혀지지 않는다. 민심이 놓아주지 않는다. 그게 통치자의 운명이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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