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아베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한국

서승욱 입력 2020. 1. 17. 00:17 수정 2020. 1. 17.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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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도쿄총국장

“문재인 대통령은 태도가 매우 부드러운 신사입니다. 이제부터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말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말이다. 지난 해 12월 29일 방송된 ‘BS테레비도쿄’ 인터뷰였는데, 녹화는 방송 이틀 전에 했다. 녹화 당일 발언록을 구해 읽었더니 한국 관련 부분은 4분 정도였다.

15개월 만에 정식 정상회담이 열린 지 사흘 뒤였지만 그의 태도는 이전과 차이가 없었다. 징용 문제에 대해서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 간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문 대통령은 어떤 분입니까’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못 이겨 짧게 덕담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회담 이후 아베 총리의 태도가 크게 바뀐 것처럼 난리가 났다. “한국에선 이 발언이 왜 뉴스가 되느냐”는 일본인 지인의 지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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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사례는 정상회담이 열리기 열흘 전쯤에도 있었다. 지지통신 주최 강연회에서 나온 아베 총리의 발언이 발단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중국 청두(成都)의 일·중·한 정상회의에 출석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와 회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60분의 강연 중 한국에 대한 언급은 이 한마디였다.

한국에선 “마땅히 한국과 동시에 해야 할 정상회담 일정 발표를 먼저 가로챘다” “‘한국과의 대화’를 외교 성과로 앞세워 각종 스캔들로 하락한 지지율을 만회하겠다는 의도”라고 부글댔다. 하지만 일본은 조용했다. 외교 성과를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의도였다면 적어도 ‘절대적 우군’ 매체 몇 군데는 이를 크게 보도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신문들 중 “크리스마스이브에 문 대통령을 만난다”는 말을 의미 있게 부각한 곳은 거의 없었다.

한·일관계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엔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란 표현이 담겼다. 1993년 처음 당선된 ‘젊은 피 의원’ 아베 신조는 당시에도 “조약으로 끝난 문제를 문서로 또 사죄한다면 앞으로 한국 대통령이 새로 뽑힐 때마다 (사죄를) 반복해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미야기 다이조 『현대일본외교사』) 병아리 의원 때부터 ‘한·일 문제는 1965년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정리됐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확신범’ 수준의 상대와 맞서기 위해 필요한 건 냉정한 상황판단과 치밀한 협상전략이다. 빨리 끓어오르고, 빨리 식는 태도로는 상대방에게 약점만 잡힌다.

서승욱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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