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그래도 되니까

이현상 2020. 1. 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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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잦아진 권력의 오만한 행태
'검찰 평정' 후 되찾은 자신감인가
'선출된 권력' 통제는 누가 할 건가
이현상 논설위원

표출되지 못하는 감정은 안으로 파고들어 신경증이 된다. 불면·불안·두통을 초래하기도 하고, 충동 및 분노 조절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 움츠러들었다가는 위험해진다고 생각했을까. 조국 사태에 가위눌렸던 집권 세력이 ‘검찰 평정’ 후 완연히 자신감을 되찾았다. 여기저기서 솔직한 감정 표출이 목격된다. 때로는 실언을 가장했고, 때로는 진솔함으로 포장했다.

“동네 물 나빠졌네.” 자신을 3선 중진으로 키워준 지역구를 찾은 국토부 장관은 대놓고 주민을 모독했다. 1년 전 장애인 비하 논란을 빚었던 집권 여당 대표는 비슷한 실언을 반복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부동산 매매 허가제’라는 초헌법적 발상을 꺼냈다가 ‘개인 견해’라는 변명 뒤에 숨었다. 무심함인가 경솔함인가, 아니면 오만함인가. 실수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사극에서나 등장할 법한 ‘명(命)’ ‘거역’이라는 단어가 현대 민주정치의 핵심 기구인 국회에서, 그것도 법무부 장관의 입에서 결연한 어조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입법부 수장 출신을 총리로 앉혀 삼권분립 훼손 논란을 빚었던 청와대는 이번엔 대놓고 법원이 발부한 수색영장을 무시했다.

솔직함의 절정은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고초를 겪은 조국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역시 사람이 먼저라서? 진보의 상식과 가치를 뒤흔들었던 배신감은 어디로 갔을까.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다. 공수처 설치, 선거법 개정, 검찰 인사 및 조직 개편으로 권력의 정지작업을 끝낸 마당에 굳이 속내를 숨겨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문제없이 권력이 재창출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 아니면 이런 무람없는 말들이 나올 수 없다. 무력한 야당은 조력자다.

정권이 검찰을 압박한 명분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다. 이 멋있는 수사(修辭)에 숨은 뜻은 “선거를 통해 뽑힌 대통령에게 덤비지 말라”는 것이다. 선거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적 통제’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축인 ‘권력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맞선다. 상반되는 두 개념 사이에서 균형점을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선출된 권력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보장받은 5년의 임기는 온전히 그들만의 시간인가. 책임지는(responsible) 정부는 반응하는(responsive) 정부다. 지난 3년 가까운 집권 동안 권력은 반응했는가. 자신을 찍지 않은 과반의 국민은 그저 배제의 대상 아니었던가. ‘민주적 통제’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향하는 창끝을 부러뜨린 권력을 과연 ‘반응하는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국민이 던지는 표의 가치마저 계산하기 힘든 잡탕 선거법으로 뽑는 국회는 ‘반응하는 대의 기구’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 즉 공감 능력이다.”(대커 켈트너, 『선한 권력의 탄생』) 현 정권은 유달리 공감 능력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권력은 이율배반적이다. “권력은 다른 사람의 생각·지식·감정 등을 상대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 즉 ‘조망 수용(perspective taking)’ 능력을 떨어뜨린다.”(김병수, 『마음의 사생활』) 완성되는 순간 스스로 허물어질 준비를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자 역설이다.

견제장치를 무력화시킨 권력은 벌써 폭주 조짐을 보인다. 열렬 지지층이 강력한 방어막을 형성한다. 그러나 배제와 분열의 대상이 된 반쪽 국민은 무력감과 신경증을 호소하며 복수심을 키우고 있다. 반응하지 않는 권력 구조에서 되풀이되는 비극이다. 권력이 오만해지는 이유는 한 인기 웹툰의 인물이 말했듯 단순하다. “그래도 되니까.” 선출 권력을 통제하는 것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그 주된 수단은 선거다. 4월 총선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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