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섣부른 전철 1호선 급행화.."열차 놓치면 다음열차 9개역 전"

강갑생 2020. 1.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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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경부선 광역전철 급행확대
정부 "운행간격 평균 50분→30분 단축"

일반전철 추월할 대피선 2개도 만들어
통근시간 단축은 현 정부의 국정 과제
막상 확대하자 예상보다 부작용 심각
급행 안서는 역의 승객은 불편 더 커져
일반전철 운행 지연, 급행전철도 차질
"부작용 감소에 수개월 이상 걸릴 듯"
당정역의 열차 운행 상황을 알려주는 전광판. [중앙포토]

"오전 7시 조금 안 돼서 당정역에 나갔더니 글쎄 전철 사이 간격이 거의 9역이나 벌어져 있더군요. 바쁜 출근 시간에 열차를 한 대 놓치면 거의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최근 한 지인이 상당히 흥분한 목소리로 전해준 내용입니다. 사연인즉슨 지난해 12월 30일부터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이 경부선 광역전철(수도권 1호선)에서 급행열차 운행을 기존 34회로 60회로 늘리면서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역의 배차 간격이 종전보다 3~4배가량 늘어났다는 건데요. 게다가 이렇게 배차 간격이 늘어나면서 급행열차 운행에도 지장이 생기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국토부와 코레일은 지난해 말 출퇴근 소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경부선 광역전철의 급행 운행을 확대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급행전철의 운행 간격이 종전 50분에서 30분으로 크게 단축된다고 홍보했습니다.

또 급행열차의 운행 구간도 기존 용산·서울역~병점·천안·신창역에서 청량리역~용산·서울역~천안·신창역으로 연장하고, 금정역에 새로 급행전철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통근 시간 단축과 급행전철 확대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합니다.

서울과 신창을 오가는 경부선 광역전철. [중앙포토]


이를 위해서 금천구청역과 군포역 등 2개 역에 250억원을 들여 대피선(부본선)도 만들었는데요. 급행전철이 일반전철을 추월해 갈 수 있도록 만든 선로입니다. 일반전철은 이들 역에서 뒤따라 오던 급행전철이 통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운행을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참고로 기존에 일반전철이 다니던 구간에 급행열차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대피선을 추가로 만드는 방식과 특정 역을 번갈아 가면서 서는 '스킵 앤드 스톱'(skip&stop)방식이 주로 거론됩니다. 대체로 대피선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지만 이를 만들 공간 확보가 쉽지 않고 예산이 많이 드는 게 단점입니다.

서울지하철 9호선은 애초 건설단계에서 급행전철 운행을 위한 대피선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운행 과정에서 별다른 지장이 없는 겁니다.

[자료=국토교통부]


국토부와 코레일이 이렇게 준비를 한 뒤에 막상 실행에 들어가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속출했습니다. 물론 국토부와 코레일은 사전에 급행열차 확대를 염두에 두고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급행전철을 늘린 만큼 일반전철이 줄어들면서 특히 급행전철이 서지 않는 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불편이 불가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일반전철이 줄어들었으니 배차 간격이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신창~청량리역 사이 구간에서 급행전철이 서지 않는 역은 독산과 석수, 명학, 군포, 당정, 화서, 오산대 등 14개 역입니다. 하지만 배차 간격이 종전보다 많이 늘어나지는 않을 거로 예측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실제로 시행해보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급행열차가 서지 않은 역의 통근시간대 배차 간격이 종전 7~8분대이었다면 현재는 20~30분까지 길어진 겁니다. 한대를 놓치면 말 그대로 플랫폼에서 20~30분을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인 건데요. 승객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 인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수도권 지하철 1호선의 급행확대 이후 지연사태가 속출해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음. [뉴시스]


게다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요. 급행전철이 먼저 지나가도록 멈췄다가 출발하는 일반전철들의 운행이 신호 대기 등 여러 요인으로 당초 예정보다 조금씩 늦어지면서 예상밖의 심각한 열차 지연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일반전철의 운행이 지연되면 열차 운행 계획상 그 뒤를 따르게 되어 있는 급행열차의 운행도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급행과 일반전철 모두 서는 역에서도 승객 불편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금정역의 경우 낮 시간대에 급행열차가 지나간 뒤 다음 일반열차는 무려 7~8역 전이나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국토부와 코레일에서는 급행열차를 추가 투입하고 운행 시간을 조정하는 등 보완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지만 당분간 이러한 혼란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경부선 광역전철이 운행하는 서울~광명 구간이 악명높은 '병목 구간' 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간에는 광역전철은 물론 KTX와 일반열차까지 몰리기 때문에 지금도 상당히 혼잡합니다.

그래서 서울~광명 구간을 확장하기 전에는 급행전철을 위한 별도의 선로를 확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한데요. 이렇다 보니 시간표 조정 등만으로 부작용을 다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부에서 12월 30일 이전으로 다시 전철 운행을 되돌려 놓고 좀 더 준비를 한 뒤에 시행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급행전철 확대 운행을 통한 통근 시간 단축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목표이자 과제입니다. 하지만 보다 정밀한 분석과 준비 없이 시행한다면 그 좋은 목표와 취지마저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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