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같은 검사로 안본다"..이성윤 5일만에 리더십 위기
"중앙지검 부장검사들, 이성윤에 적대감 상당"
이성윤(58·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 5일만에 리더쉽의 위기를 맞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의 실무 지휘자인 송경호(50·연수원 29기) 중앙지검 3차장은 이 지검장 취임 뒤 열린 16일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취임사를 읊으며 "정치, 사회, 경제적 강자의 불법과 반칙을 외면하는 건 헌법과 검사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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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이성윤의 리더십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현 정부 검찰 직제개편을 주도했고 13일 취임사에선 '절제된 검찰권'을 강조한 이 지검장을 직속부하 검사가 들이받은 것이다. 지검장을 보좌하는 차장 검사가 부장검사 전원이 참여한 공개 석상에서 항명성 발언을 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중앙지검에서 근무했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차장 검사는 보통 지검장과 함께 수사 주무를 맡는 부장검사를 다독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도 "이 지검장과 수사팀간의 충돌은 짐작했지만 그 시기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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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물갈이 인사 기다리나
이 지검장은 이날 송 차장의 항명성 발언에 담담하게 "알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검장은 취임 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거나 주요한 결정을 하기보다는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지검의 한 현직 검사는 "지검장이 내주쯤으로 예상된 차장·부장 검사 물갈이 인사를 고려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중앙지검 핵심 보직에 있는 '윤석열 라인'이 갈리고 '이성윤의 사람들'이 오길 기다린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는 이 지검장과 인연이 있는 검사들이 중앙지검 1·2·3차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1차장엔 구자현(47·연수원 29기) 평택지청장이, 2차장엔 진재선(46·연수원 30기) 법무부 검찰과장이, 3차장엔 김형근(51·연수원 29기) 성남지청 차장이 언급된다. 모두 이 지검장의 부원과 참모로 호흡을 맞췄던 검사들이다. 서울 소재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송경호 차장이 내주 인사에서 좌천될 것을 알고 작심발언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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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에 대한 윤석열의 우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인사의 '빅3'인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을 모두 거친 이 지검장에 대한 중앙지검과 대검 소속 검사들의 불만은 상당하다. 지난 8일 인사로 좌천된 한 대검 간부는 "이제 이성윤을 같은 검사로 보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검사들은 이 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을 맡아 정권의 입장에만 서 왔다고 주장한다. 중앙지검의 또다른 검사는 "검찰의 손발이 다 잘려나갈 동안 이성윤은 자리만 지켰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13일 발표한 검찰 직제개편 계획도 이 지검장이 검찰국장 시절 추진했던 일이다. 중앙지검 부장들은 16일 이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이 지검장에게 전했다. 이에 일각에선 이 지검장의 입지가 취임 5일만에 상당히 좁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지검장의 연수원 동기인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성윤이 확실한 자기 사람을 데려오지 않으면 중앙지검을 이끌어가기가 쉽지 않다. 부장검사들이 등을 돌리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지검장의 연수원 동기인 윤석열(60·연수원 23기) 검찰총장도 이 지검장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은 이성윤이 법무부 검찰국장 때 '검찰을 위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며 여러차례 답답함을 드러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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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의 대한 오해
검사 시절 이 지검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복수의 변호사들은 "이성윤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말한다. 한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사 신분이지만 공무원이라 정권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중앙지검장으로 돌아왔으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지검장과 함께 근무했던 또다른 검사출신 변호사도 "신중하고 합리적인 검사였다"고 회고했다. 이 지검장을 부원으로 데리고 있었던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이성윤도 소신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은 외골수처럼 밀어붙이는 사람"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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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기소는 가능할까
검찰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와 여권 인사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상인과 신라젠 수사의 강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곧 이 지검장에게 선택의 시간이 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지검장은 주요 사건마다 핵심 피의자의 기소 범위를 놓고 다수의 안을 만든 뒤 고심하는 스타일이다. 이 지검장이 취임사에서 밝혔듯 권력 수사에서도 기소 범위를 절제한다면, 수사팀은 물론 강경한 수사를 주장하는 윤 총장과도 충돌할 수 있다. 이 지검장이 청와대와 검찰 중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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