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 달인' 트럼프, 이란핵합의 유럽서명국들 '굴복'
[이승선 기자]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유럽 서명국인 영국·프랑스·독일(E3)이 '이란이 핵합의를 위반했다'면서 지난 14일 '분쟁조절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배경에는 미국의 '협박'이 있었다는 당사국 고위관료의 폭로가 나왔다. 이들 국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5월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후에도 여전히 핵합의가 유효하다며 미국이 복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이란은 "E3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국가나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협상에서 관세 협박을 한 사례는 있었으나 외교정책의 비협조를 이유로 협박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관세 부과" 위협에 유럽 3개국 "이란의 핵합의 위반 조사"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 핵합의 이행과 관련한 이란의 행동에 책임을 물으며 분쟁조정 절차를 시작하지 않으면 유럽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지난 7일 경고했다.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유럽 3개국이 트럼프의 관세를 피하려고 핵합의를 남김없이 망쳤다"면서 "앞으로 도덕적인 척 말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미국의 협박에 대해 핵합의 유럽 서명국들이 굴복한 이 사건은 '대서양동맹의 와해'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연합(EU) 내부에서도 이미 미국에게 유럽은 동맹관계라기보다는 상업적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은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제외되고 있다"면서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해 "미국은 전략적 이슈들에 대해 유럽으로부터 빠르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은 동맹국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시리아에서 철군을 결정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국가 등과 오랜 논의 끝에 타결된 이란핵합의와 파리기후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외교안보 측면에서의 대서양동맹이 심각한 균열을 드러낸 것에 이어 EU와의 무역분쟁도 갈수록 표면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ㆍ중 무역합의와 미국ㆍ멕시코ㆍ캐나다협정(USMCA)을 바탕으로 트럼프식 무역질서를 EU에게도 본격적으로 압박하고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EU 간 무역분쟁은 2017년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트럼프 정부는 유럽과의 무역 불균형,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2018년 6월에는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EU산 철강제품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하메네이, "솔레이마니 암살은 미국 정부의 수치"
한편, 지난 8일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보복 공격 당시 트럼프 대통령 대국민 성명에서 "사상자가 하나도 없다"고 한 발표와 달리, 미군 11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건 은폐 의혹으로 반정부 시위 등 정권의 정통성 위기에 몰린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란 수뇌부의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 역할도 하는 대규모 종교집회인 금요대예배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군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한 미국을 강력히 비판했다.
하메네이는 "솔레이마니 암살은 미국 정부의 수치"라고 비판하는 한편, 이란군이 솔레이마니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공격한 것에 대해선 "미국의 이미지에 대한 타격"이라고 칭찬했다.
하메네이가 금요 대예배를 직접 집전한 것은 8년만으로 이 행사를 통해 민심을 반미감정을 중심으로 결집하려는 의중을 드러냈다.
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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