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떨어져도 책임 안묻는 각서 썼다" 이국종 수제자 분노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에는 이국종 교수의 분신이 여럿 있다. 이 중에서도 정경원 외과 과장과 김지영 매니저 간호사는 남다르다. 이국종 교수는 지난해 저서『골든아워』의 부제에 '정경원에게'를 넣었을 정도다. 이 교수 옆에는 항상 김 매니저가 있다. 이 교수처럼 항상 잠이 부족한 퍽퍽한 얼굴로 외상센터를 지킨다.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의 욕설 파문으로 그동안 잠재해있던 아주대 외상센터의 문제점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기자는 이 교수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2011년부터 이들을 지켜봐 왔다. 외상센터와 중증외상환자를 위해 자신들의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최근의 사태와 관련, 이들의 허탈함과 분노가 이국종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두 사람에게 사태의 작금의 상황에 관해 물었다.
정경원 교수는 "헬기를 탈 때 '죽어도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탄다"며 "이렇게 뼈를 갈아서 외상센터를 유지해왔는데, 더는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해군 훈련 귀국 후 이국종 교수를 만났나.
A : 병원에 오지 않았다. 통화만 하고 있다. 이번 달까지 (해군 훈련) 파견 간 거로 돼 있다.
Q : 이 교수가 아주대 외상센터를 떠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A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보다 본질이 왜곡될 것을 우려하신다. (유희석) 의료원장과 개인적인 갈등·불화처럼 몰고 가니까.
Q : 이번 사태의 원인은.
A : 사태를 촉발한 것은 외상센터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 때문이다. 닥터헬기, 간호사 인력, 병상 지원 등을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뼈를 갈아 넣고 해 온 건데, 하다 하다 안 돼서 폭발한 거다.
Q : 병원에서 다른 얘기가 나오나.
A : 내부인들도, 동문들도, 의료인들 사이에서 '이국종이 원인을 제공했겠지' '의도가 있어서 끌고 간다'는 얘기가 나와서 (이 교수님이) 실망하고 힘들어한다. 의료원장을 타깃으로 한 게 아니라 외상센터 전반 운영에 대한 재단(대우학원) 등에 불만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그동안 반복해서 해왔다. 그런데도 자꾸 왜곡하려고 하고, 병원이 완전하게 파악해서 대처하지 않고, 자꾸 면피하려고 한다.
Q :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A : 의료원이나 재단 차원에서 (의료원장) 사임 정도로 마무리하려 하는 분위기다. 그러고는 이국종-의료원장 갈등이 봉합되는 것처럼 (포장)될 거다. 그게 아니다. 이 교수는 '제대로 운영하려면 하고, 안 그러면...' 이런 입장이다. 병원에서 오늘이라도 내일이라도 완전히 인정하고 큰 변혁을 제안하지 않으면 (이 교수가) 끝까지 갈 거라고 얘기한다.
Q : 병원이 인력과 병상 지원 약속을 지키라는 것인가.
A : 그런 거죠. 그런데 자꾸 우려스러운 얘기가 나온다. '병원도 (이국종에게) 할 만큼 했다' '괜히 병원이 욕할까, 뭔가 이유가 있겠지' '다른 진료과와 형평성을 따져야 한다' '외상환자만 환자냐' '수가가 낮다' 는 등의 얘기 나온다. 본질이 아니다. (병원 당국이 외상센터를 한다고 했을 때) 처음부터 몰랐던 게 아니다. 그만큼 감안하고 사업을 하겠다고 해서 시작한 거다. 복지부가 도와줘서 적자를 메운 것도 있고. 자꾸 문제를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느냐, 이거다.
Q : 일부 교수가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A : 제가 의과대학 교수회에 가서 설명해줬다. 모 교수가 '설명해줘서 고맙다. 너무 몰랐던 거 같아서 미안하다. 외상센터 의료진 고충이 이 정도인지 몰랐다'고 했다. 다른 교수들도 몰랐던 게다. 그렇다고 우리가 떠벌리고 다닐 수도 없지 않으냐. 일이 터져야 나오는 거지. 그 전에 어느 사람도 물어봐 주지도 않았다.
Q : 그래도 의대 교수회가 의료원장 사퇴 요구 성명을 냈다.
A : 한편으로 힘이 된 것이 맞다. 하지만 성명서를 보면 의료원장이 욕설한 부분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교수회도 그 정도만 파악하고 있다는 거다. (유희석 원장의) 직장 내 갑질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다 그런 거다. 왜 그런 일이 있었고, 반복되는지 근원적인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교수회도 빨리 봉합하고 싶어한다. 적당히 사과하고 (유희석 원장이) 사임하는 선에서 끝내려 한다. 저는 잘 모르겠다. 이국종 교수는 그게 아니다. 누구 한 명 물러나는 거로 되지 않는다.
Q : 누가 나서야 하느냐.
A : 궁극적으로 재단이다.
Q : 이 교수가 (해군 훈련) 떠난 뒤 의료진이 헬기에 탑승하지 않는다는데.
A : 의료진이 헬기에 탑승해 환자를 이송하는 게 중단된 건 맞다. 탑승할 인력이 없다. 헬기를 운용할 여건이 안 돼 있다.
Q :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
A : 닥터헬기 운항(지난해 9월께)을 시작할 때 의사 5명, 간호사 8명을 채용해달라고 요청했다. 병원 당국이 의사 1명, 간호사 5명으로 잘랐고, 순차적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 측이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겨울에 병원 옥상에 헬기가 이착륙하려면 열선이 깔려야 한다. 미끄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게 안 됐다. 안전과 직결된다. 지상은 위험하다. 옥상 헬기장 아래층에 구조대원·기장·운항관리사 등이 대기할 공간을 주기로 했는데 약속을 안 지켰다. 본관의 병실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12월부터 의료진이 헬기에 탑승하지 않은 거다.
Q : 그동안 탑승해오지 않았나.
A : 그건 혼신을 다해서 한 거다. 병원에서 약속을 지켜줄 줄 알고 해 온 거다. 외상 외과 의사가 하루 당직에 4명, 간호사가 서너명 있어야 한다. 외상센터 전담팀이 있어야 한다. 닥터헬기 전담팀도 있어야 한다. 아니면 환자 후송 나가기 어렵다. 그 전에는 억지로 해 온 거다. 24시간 365일 병원 근처 집을 떠나지 못했다. 밥 먹으러 멀리 못 갔다. 응급 호출받고 신호 무시하고 차 몰고 와서 환자 받았다. 더는 못 한다.
Q : 정부 책임은 없나.
A : 이런 상황이면 복지부가 닥터헬기를 (아주대에) 주면 안 된다. 아주대는 받는다고 하면 안 됐다. 복지부 책임이 있다. 경기도도 책임 있다.
Q : 그래도 그동안 해 왔다.
A : 물론 그동안 해왔는데 이제 와서 왜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간 (우리가) 한 걸 (누가) 치하했느냐. 우리가 상을 받았느냐. 헬기 떨어지지(다른 헬기 사고를 지칭), 병실 안 주지,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지. 헬기에서 떨어져 죽어도 국가에 책임이 없다는 각서를 쓰고 타왔다. 누가 책임지느냐. 6명의 의사가 그리해왔다. 원망하거나 탓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게 관리·감독을 해야 하지 않느냐. '이국종 없다고 의료진이 헬기 안 타더라'라고 비아냥거리니 화가 난다. 병원장님이나 복지부가 타라고 말하고 싶다.
정 교수는 "이런 (아주대에 정부가) 닥터헬기를 주면 안 된다"고 반복했다.
정 교수는 2002년 부산대 의대를 나왔다. 2010년 외상외과 의사를 하겠다고 부산에서 홀로 상경해 이국종 교수의 첫 펠로(임상강사)가 됐다. 당시 이국종 교수는 "가족 두고 혼자 와서 병원에 거의 숙식한다"고 가슴 아파했다. 그때부터 이국종 곁에서 떠나지 않고 중증외상환자 진료에 매달려왔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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