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후계자가 무슨 짓인들 못하랴

김형민 입력 2020. 1. 18. 12:53 수정 2020. 1. 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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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민의원 선거 판세는 '여촌야도(與村野都)'였다. 여당인 자유당의 이기붕 의장은 서울 서대문을에서 당선이 불확실하자 온갖 술수를 써서 야당 후보를 하차시키려다 실패했다. 그는 "선산이 있는" 경기도 이천 지역구를 '강탈'해 출마했다.
ⓒ연합뉴스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 이기붕 후보(시계 앞 앉은 이)는 정치 깡패 이정재의 지역구를 차지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 중임을 위해 개헌안을 통과시킨 사사오입 사태의 비화 하나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원래 국회의원 한 명만 더 찬성했더라면 개헌안은 사사오입 따위 지저분한 과정 없이 깔끔하게 통과될 수 있었다. 당연히 개헌에 찬성하리라 여긴 한 명이 무효표를 내버렸어. 그는 한자를 못 읽는 일자무식이었다는구나. 그래서 자유당 지도부는 그에게 “네모가 있는 글자(可) 밑에 기표하시오” 하고 가르쳐줬는데 안타깝게도 네모는 부(否)자 밑에도 있더란 말이야. 이 여당 의원은 고심 끝에 가부 양란에 모두 기표를 했고 그 탓에 무효표로 처리되면서 사사오입이라는 기상천외의 수단을 소환하고 말았단다. 학교에서 많이 배웠다고 국회의원 노릇을 잘하고 무학(無學)이라고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만큼 국회의원 수준도 각양각색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

1958년 1월, 4대 민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협상이 마무리됐다. 이때 입후보 기탁금제가 처음으로 실시돼 후보 난립을 막았고, 선거비용을 제한하는 선거공영제가 도입됐으며 선거 참관인 제도가 실시됐어. 또 언론의 편파 보도를 규제한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선거공영제와 후보자 공탁금 제도, 언론의 편파적 개입 규제 등의 골격이 갖춰진 것이지. 즉 일자무식의 국회의원이 가부(可否)를 못 읽어 역사에 ‘기여’하는 일은 벌어지기 힘들게 됐지. 항상 그렇지만 문제는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로부터 발생하는 법이다.

선거법은 정비됐으나 이 선거법 아래 치러질 선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치러지리라고 믿은 사람은 별로 없었어. 제1공화국 당시 야당지로 유명했고, 선거법 정비 이듬해인 1959년 급기야 정부로부터 폐간 명령을 받은 〈경향신문〉은 이렇게 자조(自嘲)하고 있다. “투표함 바꿔치기, 무더기 표 투입, 표수 속임수 발표 등으로 재미를 본 이쪽(자유당) 친구들은 그처럼 좋은 이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가 하면 다른 편 (야당) 친구들은 ‘언론 조항’을 전담 잡히고 ‘참관인’을 얻어다 놓고서 심히 만족히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산전수전 겪은 이편 친구들은 협박·공갈·매수 등 온갖 방법으로 있으나 마나 한 참관인을 만들기로 전력을 다할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경향신문〉 1958년 1월26일).” 이렇듯 경찰을 비롯한 정부 조직은 노골적으로 야당 탄압에 나섰단다. 경찰서 형사가 시민을 불러 “민주당 민의원 추천장에 왜 도장을 찍었나. 앞으로 또 민주당을 지지하는 행동이 있을 때에는 내 말 한마디로 모가지가 왔다 갔다 한다”라고 협박한 사건(〈경향신문〉 1958년 4월20일)이 짤막한 단신으로 보도될 정도였어. 장차 2년 뒤에 다가올 3·15 부정선거의 예행연습이었다고나 할까.

우여곡절 끝에 나선 선거 후보자는 총 841명으로 평균 3.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유권자 수는 1018만명이었어. 투표함을 열기 전, 아니 선거운동 이전부터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위기가 있었다. 바로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이었지. 농촌에서는 여전히 공권력의 압박과 여당 프리미엄이 위세를 발휘했지만 도회지 사람들은 이미 자유당 정권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었거든. 선거 결과 민주당이 서울의 16개 선거구 가운데 14개 지역을 휩쓸고, 제2의 도시라 할 부산에서 10개 지역구 중 민주당이 7군데를 석권했을 만큼 대도시에서 여당은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가장 발을 동동 구른 사람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목되던 이기붕이었지. 후일 3·15 부정선거의 원흉으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이기붕. “세계적인 위대한 지도자 리승만 대통령”과 “둘도 없는 어질고 청렴한 리기붕 민의원 의장(장건, 〈민족의 해와 달〉)”으로서 ‘민족의 해와 달’로 떠받들어지게 되는 자유당 거물 이기붕조차 지역구였던 서대문을에서의 당선이 불투명했던 거야.

사퇴 거부한 야당 후보 김산, 큰 고초 겪어

‘민족의 달’ 이기붕은 “야당 당수들의 지역구에는 자유당 입후보자들이 입후보를 사양해줄 것”을 몇 차례 요청한 바 있어. 즉 민주당의 조병옥, 통일당의 김준연, 무소속의 장택상 등 야당 당수급(級)이 출마하는 선거구에는 자유당이 공천자를 내지 않겠으니 자신의 서대문을에서도 ‘야당이 입후보를 사양해달라’는 속내였지. 민주당은 당연히 거부했고 서대문을의 민주당 후보로 이기붕의 맞수로 나선 김산은 엄청난 형극을 경험하게 돼.

먼저 이기붕 측은 김산에게 후보자 사퇴 유도 작전을 펼쳤어. 서대문을에 출마를 포기한다면 다른 지역구에서 부전승으로 당선되게 해주겠다는 당근이 따라붙었지. 실제로 충청북도 단양에 이기붕이 출마한다는 소문을 내고 다른 후보들이 지레 포기하게 만드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도 펼쳤어. 김산이 서대문을 지역구를 포기하고 단양에 출마해주면 딱 좋겠는데 이 김산 후보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지. 그는 끝끝내 서대문을 지역구를 고수했는데 여당이 제시한 당근을 거부한 대가로 엄청난 채찍질을 감수해야 했어. 지구당 부위원장이 얼토당토않은 혐의로 구속됐고 김산 본인에게도 기억조차 까마득한 옛날의 여자 문제를 빌미로 한 간통 혐의 소환장이 날아왔으니까.

민주당으로서도 혹여 김산이 출마 포기라도 하는 날에는 여당과 타협했다는 비난을 들을 처지였기에 김산 지키기에 적극 나섰지. 서울시당 위원장 정일형과 부위원장 김상돈이 김산을 찾아가 손을 붙들고 “주여 굳센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애타게 기도했던 해프닝은 유명하단다. 선거 전일까지도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던 이기붕은 뜻밖의 선택을 해. 경기도 이천에 후보자 등록을 한 거야. 이유는 “이천 군민들이 원하고 선영(先塋)이 이천에 있어서”였다. 태어난 곳과 자란 곳, 오래 산 곳은 몰라도 “우리 집 선산이 있어서” 지역구를 택한 건 아마 이기붕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구나.

경기도 이천에서 출마할 예정이던 야당 후보자가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이기붕과의 대결에서 승산이 없어서 사퇴”한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었지만 여당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었어. 원래 경기도 이천의 자유당 후보자는 정치 깡패로 유명한 이정재였거든. 이천이 고향인 그는 착실히 기반을 다져 국회의원 배지의 꿈을 야무지게 꾸고 있었는데, 별안간 서울에서 날아든 거물급 철새에게 둥지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거야. 서울시 경찰국장, 경기도 경찰국장 등이 총동원돼 입후보 사퇴를 압박했지만 이정재 지지자들은 그들이 이정재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어. “사퇴 반대!” 이정재도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분노했고 말이지. 마침 이정재의 후배 결혼식이 있었고 그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명목으로 지지자들 틈을 빠져나온 이정재는 선관위로 가서 피눈물을 흘리며 사퇴서를 썼다고 해. 자고로 깡패들은 더 큰 힘 앞에서는 저항을 상상하지 못하는 법이지.

기억해주기 바란다. 국회의원은 300명 하나 하나가 헌법기관이야. 그 개인이 법안을 만들 수 있고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지으며 수백만의 미래를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지. 이기붕 같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지역을 옮기고 자신이 지닌 권력을 휘둘러 다른 사람들 기를 죽이며 별의별 꼼수와 부정을 동원하여 그 자리를 얻으려 했어. 오늘날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을까. 특정 지역 사람들이 지닌 편견과 무지함을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은 없을까. 이기붕처럼 치졸하게 그 자리를 위해 못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과연 우리 앞에 없을까. 아빠가 보기에 올해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된 너도 유심히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할 부분인 듯하구나.

김형민(SBS CNBC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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