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과 31년 동고동락.. 국내 최고 '인공포유' 전문가

최현태 2020. 1. 1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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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규 용인 에버랜드 사육사 / 동물들 눈빛만 봐도 기분 상태 알아 / 행동·몸짓 등 그들의 언어 이해 필요 / 어린시절부터 키워 가족이나 다름없어 / 농장경영 꿈 키우다 고 3때 첫 입문 / 맹수류 등 90여종 수백여마리 관리 / 어미가 잡아먹을 우려 큰 새끼 격리 / 첫 인공포유 백호 '피스' 기억에 남아 /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 만드는게 중요
이양규 에버랜드 사육사가 16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타이거밸리에서 호랑이 태백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사육사는 평소 동물들과 눈빛을 자주 마주치고 동물들의 소리나 표현방식을 꾸준하게 따라하다 보면 신뢰관계가 쌓인다고 설명한다. 용인=최현태 선임기자
“태백아∼ 태백아∼”. 16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의 타이거밸리. 사육사가 투명유리 펜스에서 설치된 마이크에 입을 대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태백을 부른다. 그러자 저 멀리 있던 몸길이 3m에 체중 180kg으로 소처럼 육중한 호랑이 한 마리가 아주 빠른 동작으로 으르렁거리며 달려온다. 관람객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데 사육사를 만나는 순간 맹수는 온데간데없다. 펜스가 사이에 있지만 호랑이는 사육사의 손 근처 유리에 얼굴을 마구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마치 주인을 만난 반려견이나 고양이의 몸짓이다. 이번에는 사육사가 펜스 좌우를 오가며 달리기를 반복하자 태백은 그를 따라오며 껑충껑충 뛰어올라 공중부양을 한다. “이것 보세요. 맹수이지만 하는 짓은 꼭 강아지 같다니까요. 하하”. 얼굴 가득 흐뭇한 천사표 웃음이 번지는 그는 에버랜드에서 31년 동안 동물들과 동고동락하는 이양규(50) 사육사. 이제 동물들의 눈빛만 봐도 기분 상태를 안다는 이 사육사는 “동물들은 저마다의 표현방법이 있어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죠. 독특한 저만의 소리를 따라 하고 매일 눈빛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가족처럼 친해진답니다”라고 강조한다.

#농장주를 꿈꾸던 소년, 동물의 아버지가 되다

이 사육사는 처음부터 꿈이 사육사는 아니었다. 농장을 아주 크게 하고 싶었다. 칠갑산 산마루 자락인 충청남도 첩첩산골 청양의 농가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레 동물을 접했다. 어린 시절에는 시골 집집마다 소, 돼지, 닭을 키웠기 때문에 동물들은 그에게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청양농공고에서 축산을 전공하며 농장 경영의 꿈을 키우던 그가 사육사의 길로 접어든 것은 고3 때. 당시 에버랜드의 전신 용인자연농원을 운영하던 중앙개발에 지원하고 시험을 봤는데 덜컥 합격됐다. “지원한 뒤 어머니가 꿈을 꿨는데 병아리를 품에 가득 안고 있었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평소 꿈에 거의 찾아오지 않던 아버지가 나타나 ‘병아리를 잘 키워라’라고 얘기를 했다는군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마도 내가 사육사의 길을 걸을 운명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졸업과 동시에 자연농원 동물원에 배치됐는데 선배 사육사들은 아주 혹독했다. 3개월 실습 기간 동물들의 습성을 배우는데, 동물 관련 서적 내용을 토씨 하나까지 달달 외워야 했다.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푸시업을 100번씩 하며 얼차려를 받았고 매일 실습일지도 빽빽하게 써내야 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 관련 자료를 얼마든지 수집할 수 있잖아요. 영상자료도 엄청 많죠. 하지만 예전에는 동물원에 비치된 매뉴얼과 동물 대박과사전이 전부였죠. 선배들이 전해주는 노하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처음에는 이처럼 쉽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동물들과 지내다 보니 지금은 울음소리나 표정을 보면 감정을 쉽게 알 수 있단다. 동물들 눈을 쳐다보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막 빨려 들어가는데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사육사는 어떻게 동물들과 교감할까.

“강아지 등 동물들은 행동과 몸짓에서 그들의 언어가 나오죠. 그것을 보면 지금 어떤 상태인가 알 수 있어요. 호랑이는 귀를 뒤로 젖히면 뭔가 불편하다는 뜻이에요. 꼬리를 살살 흔들면 장난치고 싶다는 신호이죠. 맹수들과 신뢰를 쌓으려면 두 달 정도 걸려요. 좋아하는 것을 자주 해주고 일정하게 계속 사인을 줘야 하죠. 맹수만의 표현방법도 있는데 호랑이는 입으로 고양이처럼 ‘푸르르 푸르르’하고 소리를 내요. 그런 소리를 따라 하면서 먹이를 주고 너에게 우호적이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거죠. 그러면 펜스를 사이에 두고 손을 대거나 얼굴을 비비고 눈을 맞추기도 한답니다.”

이 사육사는 동물들만 보면 마음이 편해진단다. 그들의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려고 망원렌즈까지 구입해 30년 동안 동물들의 사진을 찍을 정도로 동물 사랑이 지극하다.

#인공포유를 아십니까

맹수류인 호랑이, 사자를 비롯해 열대동물, 유인원, 조류, 물범, 바다사자, 펭귄. 파충류, 앵무새 등 30년 넘게 동물과 함께했으니 그를 거쳐 가지 않은 동물은 거의 없다. 지금도 90여종 수백마리를 관리한다.

그는 사실 한국의 최고의 인공포유 전문가이기도 하다. 어미가 키우지 않고 방치해 생명이 위태롭거나 어미가 잡아먹을 우려가 큰 새끼들을 격리시켜 생명을 구하는 일이 인공포유다. 어미가 자식을 죽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꽤 많다. 사자, 호랑이, 곰, 사슴, 라마, 원숭이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새끼를 버리는 이유가 여러 가지예요. 초산인 경우 경험이 없으니 잘 못 키워 방치되는 경우가 많죠. 노산인 경우는 키우기 귀찮아서 방치되죠. 일주일 정도 키우다 젖이 안 나오면 그냥 양육을 포기합니다. 맹수는 새끼가 약해 보여 잘 못 자랄 것 같으면 가차 없이 잡아먹어 버려요. 따라서 사육사들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주로 울음소리를 듣고 판단해요. 울음소리가 약하면 태어난 지 2∼3일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요. 예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치타 번식에 성공했는데 어미가 초산이다 보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한 마리를 잡아먹은 경우가 있었죠. 새끼를 난 어미들은 굉장히 예민해져요. 사육사 한 명이 전담하면서 발소리도 안 낼 정도로 조심조심하며 관찰해서 이런 경우를 막게 됩니다.”

인공포유에 성공하면 무리로 돌려보내거나 다른 동물원에 분양하는데 사자도 인공포유에 성공했다고 한다. 요즘은 계획 번식을 하기 때문에 인공포유는 아주 드물게 발생한다. 예전에는 새끼를 많이 낳는 게 축복처럼 여겨졌지만 너무 많이 번식하면 동물원 면적당 허용되는 마릿수 기준을 초과하기에 계획 번식으로 이를 통제한다는 설명이다.
이양규 에버랜드 사육사가 16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타이거밸리에서 호랑이 태백에게 먹이를 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용인=최현태 선임기자
#너무나 보고 싶은 백호 ‘피스’의 추억

30년 넘는 세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1994년 국내 최초로 인공포유에 성공한 백호 피스(Peace)로 미국에서 들여온 백호 한 쌍에서 태어났다. 흰색은 우리 민족에게 굉장히 좋은 이미지여서 백호의 평화로운 기운이 한반도에 널리 퍼지도록 기원하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직접 지었다. 그런데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폐에 공기가 차는 병에 걸리고 말아 인공포유에 돌입했다.

“산소호흡기를 끼고도 숨을 제대로 못 쉬어 헐떡거렸어요. 이 때문에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도 포기했죠. 모든 사람이 피스는 곧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한 달 동안 매일 밤을 새우며 간호했답니다. 우유를 조금씩 먹이고 주사기로 먹이도 주면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는데 한 달 만에 깨어나더군요.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나더군요.”

모두가 죽을 것이라던 피스는 이렇게 회복된 뒤 늙어서 걷지 못할 때까지 아주 건강하게 살다가 제 수명을 다하고 2010년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 사육사는 “동물들은 죽으면 부검하고 소각해요. 피스도 화장을 했는데 지금도 가끔 보고 싶어요.” 피스의 모습을 떠올리는 그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번식에 실패한 북극곰 ‘통키’도 그에게 큰 슬픔을 안겼다. 이 사육사는 1997년 마산동물원에서 3살 때 이주한 통키를 맡아 키우면서 여러 차례 번식을 시도했으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북극곰은 번식이 가장 어려운 동물로 번식하면 뉴스가 될 정도란다. 여름이 계속 더워지자 통키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판단, 더 좋은 환경에서 노후를 보내도록 영국의 동물원과 이주를 합의했다. 이주 일정을 지난해 11월로 확정했는데 한 달을 앞둔 10월 그만 갑자기 죽었다.
이양규 에버랜드 사육사가 16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타이거밸리에서 호랑이 태백, 건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용인=최현태 선임기자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을 만들어야

타이거밸리에는 5살짜리 시베리아 호랑이 태백과 건곤이 산다. 그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최근 공간을 더 넓게 확대하고 환경도 다양하게 바꿨다. 특히 태백과 건곤이 눈을 좋아해 인공 눈을 계속 뿌리면 신나게 뛰어논다.

“동물들도 사람과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아요. 더구나 같은 공간에서 24시간 지내는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죠. 따라서 한정된 공간에서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예를 들면 먹이를 직접 찾아 먹을 수 있도록 한다든가 다양한 놀이시설을 만들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겁니다. 동물들은 같은 놀이기구라도 위치만 바꿔줘도 좋아해요.”

가끔 시설이 열악한 동물원들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시설이 낡고 비좁아 동물들의 활동공간이 부족하거나 온도, 습도가 맞지 않고 환기까지 제대로 안 되면 당연히 동물들이 제대로 행복하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에버랜드는 지난해 서울대공원과 함께 아시아 동물원 최초로 ‘AZA 인증’을 획득했다. 이는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ssociation of Zoos & Aquariums)에서 평가하는 세계 최고수준의 동물원 분야 인증제도다.
“동물원 복지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뜻으로 의미가 크다고 자부해요. AZA 인증을 받으려면 동물원 복지, 사육사와 경영자의 수준이 AZA가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해요. 더구나 5년마다 재심사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할 정도로 까다롭답니다.”

이 사육사는 AZA의 기준을 뛰어넘어 동물이 더 행복해지도록 애니멀 원더월드의 대대적인 개편도 진행 중이다. 실내에 갇힌 느낌이 커 동물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오는 4월 리뉴얼 오픈할 예정이다.

“동물들 놀이터에 가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구경하는 콘셉트예요. 이곳에는 카피바라 등 남미 대형 설치류, 캥거루과의 왈라비 등 30여종 동물들이 사는데 동물들의 신체능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있어요. 나무와 구름다리를 잘 타는 나무늘보, 라쿤을 위한 시설을 새로 만들고 코아티를 위한 높은 공중사다리도 갖추면 그들은 더욱 행복해질 겁니다.”

용인=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이양규 사육사는 ●1970년 충남 청양 출생 ●청양농공고-신구대 자원동물산업과 졸업 ●1989년 에버랜드 동물원 입사 ●1989년 아기동물 인공포육 담당 ●2011년 맹수사파리 ‘사파리월드’ 담당 ●2015년 초식사파리 ‘로스트밸리’ 담당 ●현재 한국호랑이 ‘타이거밸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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