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과 31년 동고동락.. 국내 최고 '인공포유' 전문가
#농장주를 꿈꾸던 소년, 동물의 아버지가 되다
이 사육사는 처음부터 꿈이 사육사는 아니었다. 농장을 아주 크게 하고 싶었다. 칠갑산 산마루 자락인 충청남도 첩첩산골 청양의 농가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레 동물을 접했다. 어린 시절에는 시골 집집마다 소, 돼지, 닭을 키웠기 때문에 동물들은 그에게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청양농공고에서 축산을 전공하며 농장 경영의 꿈을 키우던 그가 사육사의 길로 접어든 것은 고3 때. 당시 에버랜드의 전신 용인자연농원을 운영하던 중앙개발에 지원하고 시험을 봤는데 덜컥 합격됐다. “지원한 뒤 어머니가 꿈을 꿨는데 병아리를 품에 가득 안고 있었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평소 꿈에 거의 찾아오지 않던 아버지가 나타나 ‘병아리를 잘 키워라’라고 얘기를 했다는군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마도 내가 사육사의 길을 걸을 운명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이처럼 쉽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동물들과 지내다 보니 지금은 울음소리나 표정을 보면 감정을 쉽게 알 수 있단다. 동물들 눈을 쳐다보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막 빨려 들어가는데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사육사는 어떻게 동물들과 교감할까.
“강아지 등 동물들은 행동과 몸짓에서 그들의 언어가 나오죠. 그것을 보면 지금 어떤 상태인가 알 수 있어요. 호랑이는 귀를 뒤로 젖히면 뭔가 불편하다는 뜻이에요. 꼬리를 살살 흔들면 장난치고 싶다는 신호이죠. 맹수들과 신뢰를 쌓으려면 두 달 정도 걸려요. 좋아하는 것을 자주 해주고 일정하게 계속 사인을 줘야 하죠. 맹수만의 표현방법도 있는데 호랑이는 입으로 고양이처럼 ‘푸르르 푸르르’하고 소리를 내요. 그런 소리를 따라 하면서 먹이를 주고 너에게 우호적이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거죠. 그러면 펜스를 사이에 두고 손을 대거나 얼굴을 비비고 눈을 맞추기도 한답니다.”
이 사육사는 동물들만 보면 마음이 편해진단다. 그들의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려고 망원렌즈까지 구입해 30년 동안 동물들의 사진을 찍을 정도로 동물 사랑이 지극하다.
맹수류인 호랑이, 사자를 비롯해 열대동물, 유인원, 조류, 물범, 바다사자, 펭귄. 파충류, 앵무새 등 30년 넘게 동물과 함께했으니 그를 거쳐 가지 않은 동물은 거의 없다. 지금도 90여종 수백마리를 관리한다.
그는 사실 한국의 최고의 인공포유 전문가이기도 하다. 어미가 키우지 않고 방치해 생명이 위태롭거나 어미가 잡아먹을 우려가 큰 새끼들을 격리시켜 생명을 구하는 일이 인공포유다. 어미가 자식을 죽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꽤 많다. 사자, 호랑이, 곰, 사슴, 라마, 원숭이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새끼를 버리는 이유가 여러 가지예요. 초산인 경우 경험이 없으니 잘 못 키워 방치되는 경우가 많죠. 노산인 경우는 키우기 귀찮아서 방치되죠. 일주일 정도 키우다 젖이 안 나오면 그냥 양육을 포기합니다. 맹수는 새끼가 약해 보여 잘 못 자랄 것 같으면 가차 없이 잡아먹어 버려요. 따라서 사육사들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주로 울음소리를 듣고 판단해요. 울음소리가 약하면 태어난 지 2∼3일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요. 예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치타 번식에 성공했는데 어미가 초산이다 보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한 마리를 잡아먹은 경우가 있었죠. 새끼를 난 어미들은 굉장히 예민해져요. 사육사 한 명이 전담하면서 발소리도 안 낼 정도로 조심조심하며 관찰해서 이런 경우를 막게 됩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1994년 국내 최초로 인공포유에 성공한 백호 피스(Peace)로 미국에서 들여온 백호 한 쌍에서 태어났다. 흰색은 우리 민족에게 굉장히 좋은 이미지여서 백호의 평화로운 기운이 한반도에 널리 퍼지도록 기원하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직접 지었다. 그런데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폐에 공기가 차는 병에 걸리고 말아 인공포유에 돌입했다.
“산소호흡기를 끼고도 숨을 제대로 못 쉬어 헐떡거렸어요. 이 때문에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도 포기했죠. 모든 사람이 피스는 곧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한 달 동안 매일 밤을 새우며 간호했답니다. 우유를 조금씩 먹이고 주사기로 먹이도 주면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는데 한 달 만에 깨어나더군요.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나더군요.”
모두가 죽을 것이라던 피스는 이렇게 회복된 뒤 늙어서 걷지 못할 때까지 아주 건강하게 살다가 제 수명을 다하고 2010년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 사육사는 “동물들은 죽으면 부검하고 소각해요. 피스도 화장을 했는데 지금도 가끔 보고 싶어요.” 피스의 모습을 떠올리는 그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타이거밸리에는 5살짜리 시베리아 호랑이 태백과 건곤이 산다. 그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최근 공간을 더 넓게 확대하고 환경도 다양하게 바꿨다. 특히 태백과 건곤이 눈을 좋아해 인공 눈을 계속 뿌리면 신나게 뛰어논다.
“동물들도 사람과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아요. 더구나 같은 공간에서 24시간 지내는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죠. 따라서 한정된 공간에서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예를 들면 먹이를 직접 찾아 먹을 수 있도록 한다든가 다양한 놀이시설을 만들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겁니다. 동물들은 같은 놀이기구라도 위치만 바꿔줘도 좋아해요.”
가끔 시설이 열악한 동물원들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시설이 낡고 비좁아 동물들의 활동공간이 부족하거나 온도, 습도가 맞지 않고 환기까지 제대로 안 되면 당연히 동물들이 제대로 행복하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육사는 AZA의 기준을 뛰어넘어 동물이 더 행복해지도록 애니멀 원더월드의 대대적인 개편도 진행 중이다. 실내에 갇힌 느낌이 커 동물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오는 4월 리뉴얼 오픈할 예정이다.
“동물들 놀이터에 가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구경하는 콘셉트예요. 이곳에는 카피바라 등 남미 대형 설치류, 캥거루과의 왈라비 등 30여종 동물들이 사는데 동물들의 신체능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있어요. 나무와 구름다리를 잘 타는 나무늘보, 라쿤을 위한 시설을 새로 만들고 코아티를 위한 높은 공중사다리도 갖추면 그들은 더욱 행복해질 겁니다.”
용인=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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