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 발언에.. 男은 '무감정' 女는 '분노'

박유빈 2020. 1. 20. 12: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녀 반응 크게 달라
“(성차별 언어를 들으면) 직접적으로 대응하지는 않는 성격이고…그런 류의 말을 하는 사람을 좀 피하기만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죠.” (27세 여성 A씨)
 
“(성차별 언어를 들었을 때) 막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저도 남자다운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대범해지고 그렇게 돼야겠다고 생각했지 딱히 반감은 없었어요.” (29세 남성 B씨)
 
성별 고정관념을 일으키는 ‘성차별 언어’를 접했을 때 여성은 남성보다 분노하는 반면, 남성은 여성에 비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성별 고정관념에 부응하지 못한 불편함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차별 언어 사용은 차별을 공고히 할 뿐 아니라 상대 성별에 대한 신뢰 하락까지 촉발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31일 발표된 학술지 ‘여성연구’ 4호에 실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논문 ‘성차별 언어 접촉 경험의 성별 효과: 감정, 인지 그리고 행동’에 따르면 성차별 표현을 접할 때 남녀 모두 불쾌감을 가장 많이 느꼈지만, 여성의 경우 그 다음으로 ‘분노’를 느낀 것과 달리 남성은 ‘무감정’을 꼽아 상대적으로 성차별 표현에 무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분석 결과는 여성가족부와 연구원이 2018년 16세 이상 59세 미만의 남녀 1805명(남자 902명, 여성 903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도출됐다. 연구팀은 “불쾌감의 경우에도 그 수준은 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며 “남성은 성차별 언어를 들었을 때 불쾌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그다지 받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이 같은 해 14세 이상 59세 미만 남녀 1825명을 대상으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의 역할을 성별로 구분하는 ‘역할 관련 성차별 언어 표현’에 대한 감정을 조사한 결과도 여성 67.3%가 불쾌하다고 응답했고 남성은 52.1%만이 불쾌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어 여성은 분노(13.2%), 당혹감(8.9%) 등을 느꼈다고 응답한 것과 달리 남성은 무감정(21.1%), 당혹감(15.2%)을 골랐다. 연구를 수행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당혹감은 성별 고정관념에 자신을 맞추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감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별에 따라 지켜야 할 역할·성격 등을 강제하는 성차별 언어는 우리 사회가 성별에 따라 당연하다고 여기는 성별 고정관념을 일상생활에 투영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와 같이 남녀에게 관성적으로 요구하는 할 자질을 사회적 이치인 것처럼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일종의 ‘통로’인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남녀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 또 다른 감정은 ‘죄책감’이다. 죄책감이란 성차별에 대한 반발심이 아닌 자신의 성별을 향한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불편함을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보다 남성이 성차별 언어를 마주할 때 느끼는 죄책감이 더 컸고 이는 다른 감정에 비해 그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위원은 “남성들도 차별에 불쾌감을 느끼고 분노하지만, 일정 부분 우월한 위치를 확인하거나 이를 주지하는 데 사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성차별 언어를 보는 남녀의 서로 다른 태도가 페미니즘의 부상과 이에 대한 입장 차이를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 연구소 교수는 “여성에게 성차별 언어는 일상에서 사회적 위치가 어떤지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기존 문화에서 배제당할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이로 인해 차별에 대한 불쾌감과 분노가 구성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성의 경우에는 유쾌하지 않지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무신경한 것”이라며 “이는 남성의 사회적 위치점이 다수자나 권력자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적 차이는 2015년부터 우리 사회에서 부상한 페미니즘 이슈에 여성은 공감하고 분노하는 반면, 남성은 여성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반페미니즘을 지향하는 하나의 근거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위원은 “성차별 의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성별 고정관념은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다”며 “성차별 자체를 막기 위한 사회적·제도적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