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 발언에.. 男은 '무감정' 女는 '분노'
“(성차별 언어를 들었을 때) 막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저도 남자다운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대범해지고 그렇게 돼야겠다고 생각했지 딱히 반감은 없었어요.” (29세 남성 B씨)
지난해 12월31일 발표된 학술지 ‘여성연구’ 4호에 실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논문 ‘성차별 언어 접촉 경험의 성별 효과: 감정, 인지 그리고 행동’에 따르면 성차별 표현을 접할 때 남녀 모두 불쾌감을 가장 많이 느꼈지만, 여성의 경우 그 다음으로 ‘분노’를 느낀 것과 달리 남성은 ‘무감정’을 꼽아 상대적으로 성차별 표현에 무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분석 결과는 여성가족부와 연구원이 2018년 16세 이상 59세 미만의 남녀 1805명(남자 902명, 여성 903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도출됐다. 연구팀은 “불쾌감의 경우에도 그 수준은 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며 “남성은 성차별 언어를 들었을 때 불쾌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그다지 받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별에 따라 지켜야 할 역할·성격 등을 강제하는 성차별 언어는 우리 사회가 성별에 따라 당연하다고 여기는 성별 고정관념을 일상생활에 투영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와 같이 남녀에게 관성적으로 요구하는 할 자질을 사회적 이치인 것처럼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일종의 ‘통로’인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남녀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 또 다른 감정은 ‘죄책감’이다. 죄책감이란 성차별에 대한 반발심이 아닌 자신의 성별을 향한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불편함을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보다 남성이 성차별 언어를 마주할 때 느끼는 죄책감이 더 컸고 이는 다른 감정에 비해 그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위원은 “남성들도 차별에 불쾌감을 느끼고 분노하지만, 일정 부분 우월한 위치를 확인하거나 이를 주지하는 데 사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적 차이는 2015년부터 우리 사회에서 부상한 페미니즘 이슈에 여성은 공감하고 분노하는 반면, 남성은 여성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반페미니즘을 지향하는 하나의 근거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위원은 “성차별 의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성별 고정관념은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다”며 “성차별 자체를 막기 위한 사회적·제도적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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