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갑질! 글로벌 기업답게 행동하시죠

강동철 기자 2020. 1. 2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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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스타트업들, 하원 청문회서 IT공룡들 갑질 낱낱이 폭로]
아마존, 웃으며 가격 인하 압박
애플, '기기위치 찾기' 기술 빼돌려
구글, 7만달러 광고 강요
페북, 데이터 독점해 권력 남용
스타트업 "제발 그만 좀 괴롭혀"

"제일 잘하는 축구팀인 애플은 자기 홈구장에서 공과 규칙을 멋대로 바꿔가며 경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겠습니까."(스타트업 타일(Tile)의 키르스턴 다루 자문역)

"아마존은 기업들을 웃으면서 괴롭히는(bullying with a smile) 기업입니다. 친절한 목소리로 '어제 경쟁사의 제품 가격이 내려갔습니다. 당신들도 가격을 낮춰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스타트업 팝소켓의 데이비드 바넷 최고경영자)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콜로라도주(州) 볼더에서 열린 미 하원 반독점 소위의 청문회에 참석한 4곳의 미국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임원들은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 등 미국 대표 테크 기업들로부터 당한 '갑질'에 대해 폭로했다. 이날 청문회는 미국 테크 기업들의 반독점 위반 혐의를 조사 중인 미 의회가 수개월간 피해 기업 수십 곳을 찾아다니며 "증언해달라"고 요청해 마련된 자리다. 대부분 기업은 "거대 기업들로부터 당할 앙갚음이 두렵다"며 발언을 거절했지만, 그나마 4개 기업이 용기를 내 증언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청문회에서 작은 기업들은 '제발 그만 좀 괴롭혀라'고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기술 빼돌리고 가격 인하 압박하고

구글·아마존·애플·페이스북의 갑질은 기술·인력 빼돌리기부터 가격 인하 압박, 마케팅·광고 비용 지출 강요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블루투스 기능을 장착한 동전 형태의 장치를 개발한 타일은 "애플이 기술과 인력을 빼돌려 카피캣(복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마트폰·리모컨·지갑 등 작은 소지품에 붙여놓은 이 장치는 사용자가 원하면 소리를 내 위치를 알려준다. 애플은 2018년 연례 행사인 WWDC (세계개발자대회)에서 주요 협력사로 타일을 소개했다.

하지만 애플은 작년 타일과 거의 비슷한 기능의 자사 앱인 '내 아이폰 찾기(Find My iPhone)'를 아이폰에서 무조건 실행되도록 했다. 또 아이폰에 부착하는 동전 크기의 '에어태그'라는 기기도 개발 중이다. 타일의 앱·하드웨어를 모두 베낀 의혹이 있는 것이다. 애플은 애플스토어에서 타일의 제품을 철수시켰고, 타일 소속 엔지니어들도 스카우트했다.

팝소켓은 스마트폰 뒤에 붙여 책상에 놓거나 손으로 잡기 쉽도록 하는 액세서리를 개발했다. 하지만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을 장악한 아마존은 복제품이 팔리는 것을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팝소켓 제품의 가격을 억지로 낮추기도 했다. 팝소켓의 바넷 CEO는 "아마존 측에 불법 복제품을 단속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마존의 대답은 200만달러 이상의 마케팅 비용을 쓰라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아마존은 스스로 가격을 낮춰 판매하고, 손실을 팝소켓에 부담시켰다. 팝소켓은 2018년 아마존에서 판매를 중단했다.

무선 스피커 기업인 소노스는 올 초 특허 5개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구글을 고소했다. 구글의 인공지능(AI) 스피커인 '구글 홈', 아마존의 AI스피커 '에코'에 탑재된 무선 스피커 기술이 소노스의 특허를 빼돌려 만들었다는 것이다. 직장용 협업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베이스캠프는 구글이 독점력을 남용해 복제 서비스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먼저 노출시킨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구글에서 베이스캠프를 검색하면 맨 위에 '베이스캠프의 대용품(Basecamp Alternative)'이 나오고, 그다음에 베이스캠프가 나온다.

거대 테크 기업은 원론적 해명만

스타트업들의 눈물 섞인 호소에 비해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 등 테크 기업들의 해명은 원론적이었다. 소비자 편의를 내세워 자사를 두둔하거나, "아직 실현된 서비스가 아니다"라며 회피하는 식이다.

구글은 "우리가 개발한 스피커 기술은 모두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이라며 소노스의 주장을 반박했다. 베끼기 논란에 휩싸인 애플은 "아직 아이폰이나 다른 기기의 위치를 찾아내는 방식의 서비스나 사업 모델은 구현하지 않았다"며 "소비자와 개발자 편의를 모두 총족시키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존도 "팝소켓은 다른 업체들처럼 아마존에 입점할지, 철수할지 선택할 수 있다"면서 "팝소켓과 복제품 논란에 대해서는 계속 협력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테크 대기업 조사 가속화될 듯

업계에서는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현재 미국 연방정부·주정부·의회 차원에서 진행 중인 거대 테크 기업들의 반독점 조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미 연방 검찰과 50개 주 검찰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데이터 독점 문제를 조사 중이다.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과 페이스북이 전자상거래·소셜미디어 시장의 장악력을 바탕으로 기업들에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각 정부 기관·의회가 내부적으로만 조사해왔지만, 공개적인 피해 사례가 드러난 만큼 조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청문회에서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의원들이 거대 기업들의 권력 남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실리콘밸리 기업은 이제 혁신의 상징이기보다는 독점 괴물이 되고 있다"며 "피해가 커지기 전에 이들을 견제할 강력한 수단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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