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욕설에 정부 유체이탈로 좌절..이국종 20년 꿈 접었다

신성식 2020. 1.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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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수원=최승식 기자

"그만할래요. 아무리 해도 안 되네요. 이렇게까지 됐는데 제가 책임져야죠. 보직 이런 데 미련 없습니다. 제가 나쁜 일 한 게 아닌데 괴롭네요."
아주대 이국종 권역외상센터장은 2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외상센터장을 그만두겠다. 보직을 다 내려놓고 평교수로 남거나 다른 일을 찾든지"라고 말했다.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의 욕설 논란 일주일 만에 자리를 던졌다.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센터와 동의어와 다름없다. 그는 아주대 의대 졸업 이후 2002년 지도교수이던 아주대병원 외과과장이 "외상외과를 해봐라"는 권유에 외상외과 의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약 20년 동안 중증외상환자를 살리기 위해 각종 난관에 맞섰지만 자기 몸에 상처를 더 입고 센터장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그의 '선진국형 외상센터'의 꿈이 20년 만에 꺾이는 듯하다.

이 교수는 외과 의사를 염두에 두긴 했지만 반드시 외상외과는 아니었다. 그는 저서 『골든아워』에서 "일자리가 없어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밥벌이 수단'이라고도 했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 대학병원 외상센터 단기연수는 이 교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교수는 『골든아워』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첫날 삐삐에서 'OR Resus pt 15 min by air'가 울렸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가 헬기로 15분 이내에 도착할 예정이고,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곧장 수술방으로 올라가 치료할 예정이라는 뜻이었다. 공사장에서 추락한 환자가 도착했고 외과 전공의가 환자 위에 올라타 심폐소생술을 했다. 환자 가슴을 수평으로 열고 양손으로 심장을 직접 마사지했다. 모든 일에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음은 이 교수가 받은 충격.
"한국과 차원이 달랐다. 환자 치료 규모와 범위에 따라 임무에 맞게 레벨이 정해진 외상센터들이 1~4단계로 분류돼 있었고, 센터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환자를 살렸다. 교과서적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 헬기 운송, 의료진 탑승, 헬기 안 긴급 수술. (완벽한) 외상센터, 민·군 의료 공조체계…."

이 교수는 "만약 한국이었다면 환자를 앰뷸런스로 이송하느라 이미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영국 런던 로열 호스피털 트라우마 센터 연수도 이국종 교수의 선진형 외상센터의 꿈을 북돋웠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 한국에 와서 '여기가 미국인 줄 알아?' 라는 말을 번번이 들었다. 정부, 아주대, 경기도, 의료계뿐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했다. 아주대병원은 2009년 중증외상 특성화후보센터로 선정됐고, 이때 외상센터로 이름을 달았다. 2010년 부산대병원 조석주 교수의 추천으로 정경원 당시 군의관(대위)이 이 교수를 찾았다. 정 대위는 "교수님 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거면 됩니다. 큰 욕심 없습니다." 그렇게 이 교수와 정 교수는 같은 배를 탔다. 그때까지 약 10년간 혼자였던 이 교수 옆에 '동지'가 하나둘씩 늘었다.

아주대학교 외상센터 의료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그 이후에도 좌절의 연속이었다. 2011년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살리면서 외상센터가 전국적 관심 대상이 됐다. 그는 선진형 외상센터가 되려면 5~6개의 대형센터로 하자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2010,2011년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팀에 의뢰해 ‘한국형 권역 외상센터 연구'를 맡겼다. 김 교수는 2011~2015년 전국에 6곳에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와 김윤 교수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개 광역단위로 잘게 쪼개졌다. 김윤 교수는 "지역구 의원 등의 로비가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2012년 아주대병원은 1차 외상센터 심사에서 탈락했다.

외상센터가 소형화되면서 아주대 외상센터는 밀려드는 환자를 주체하지 못했다. 반면 어떤 데는 환자가 적어서 외상전담전문의가 일반 환자를 진료하다 적발됐다. 한 병원장이 "이국종 교수의 외상센터 환자의 중증도가 낮다"고 흔들어댔다. 닥터헬기를 6대 허가해서 한 해 30억~40억원의 예산을 지원했지만 야간에는 날지 않았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외인사망자가 선진국의 두 배가 넘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7년 북한 병사 오청성이 귀순하면서 이국종 교수는 다시 한번 위기에 처했다. 오청성을 어렵게 살렸지만 북한 병사 인권을 무시했다는 정의당 김종대 의원의 비판이 제기됐다. 이 교수는 "피 튀어도 수술했는데, 인권 침해 얘기에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별것도 아닌 환자 갖고 쇼한다"는 비아냥거렸다.

오청성 사건을 계기로 외상센터 예산이 200억원 넘게 늘어났지만 전국 외상센터로 쪼개졌다. 아주대 내부의 압력도 거세졌다. 유희석 의료원장이 욕설한 게 드러났지만, 병원장도 쌍욕에 가세했다. 2018년 5월 7번째 닥터헬기가 아주대 외상센터로 왔지만, 기종 선정을 두고 복지부 등과 마찰이 발생했다. 이 교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아주대의 벽이었다.

이 교수는 20일 "병원에서 병상을 고의로 안 주는 거다. 협조 잘 해줬다고 거짓말만 한다"며 "헬기 소음만 해도 민원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이해해줬다. 그걸 핑계로 (병원이) 내세운다. 상급종합병원 심사에서 떨어지는 문제도 외상센터 때문이라고 하니…"라고 말했다.

복지부의 일관성 없는 행정도 이 교수를 힘들게 했다. 외상센터를 잘게 쪼갰고, 선택과 집중 요구를 피해갔다. 하지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양쪽(아주대와 이국종 교수)이 다 열심히 했는데 양쪽이 다 지쳐 있는 상황으로,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난해 이 교수가 주장한 의료비 부당 사용을 조사했지만, 아주대가 법과 제도에 어긋나게 행동한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김윤 교수는 "복지부가 외상센터를 17개로 쪼개면서 외상센터가 독립할 수 없게 됐다. 모(母)병원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다 보니 아주대 외상센터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김 교수는 "외상센터 운영의 책임은 센터장이 아니라 병원장에게 있다. 문제가 있으면 정부가 병원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관리 책임이 정부에 있는데, 정부가 '병원과 이국종 교수가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말한다. 그러면 정부가 왜 있는 거냐"고 지적했다. 김윤 교수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법과 제도를 잘못 만들어놓고 문제가 없고, 양쪽(아주대와 이국종 교수) 책임인 것처럼 떠민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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