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부동자금 1000조 넘었다

김익환 2020. 1. 2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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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예금으로만 돈 몰려
정부의 잇단 反시장 정책 탓
투자·소비로는 돈 안 흘러가
과잉 유동성에 '자산거품'만
사진=한경DB


시중 부동자금이 사상 처음 1000조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저 수준인 저금리의 영향으로 불어난 유동성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지 않은 채 금융회사 단기 투자상품에 고인 결과다. 

21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의미하는 부동자금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1010조7030억원을 기록했다. 2018년 말보다 5.2% 늘어났다. 부동자금은 2016년 902조원에서 2017년 949조원, 2018년 960조원으로 늘어났으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지난해 7월(연 1.75%→1.50%)과 10월(연 1.50%→1.25%) 이후 증가 속도가 더 빨라졌다. 지난해 11월 한 달에만 32조원 불어났다. 부동자금은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을 합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시중에 돈이 대거 풀렸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부각되면서 소비와 투자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택매매허가제를 도입하고 법인세율을 더 올린다는 등의 정부 관계자 발언과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경제정책 등이 실물경제를 위축시키고 부동자금을 키운 배경”이라며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낼 일관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은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의 거품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경고도 커지고 있다.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고금리 위험자산 투자가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MMF 등 단기상품에 한달새 32兆 몰려…"투자할 곳 못 찾겠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지난달 19일 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0%로 0.25%포인트 올렸다. 2015년 2월부터 이어온 마이너스 금리 기조에서 탈피한 배경은 실물경제 진작 효과가 크지 않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만 달아오르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스웨덴 경제성장률은 2015년 4.4%에서 하락세를 지속해 지난해에는 1.1%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제에 활기가 돌지 않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포착된다. 사상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연 1.25%)에도 소비·투자가 얼어붙으면서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후 최악(1.9~2.0%)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저금리로 불어난 시중 자금은 실물경제로 흘러들지 않고 요구불예금 등 금융회사의 단기상품에만 쌓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대거 몰렸다가 정부 대출 규제로 투자가 어려워지자 부동자금이 증시로 방향을 바꿔 가장 믿을 만한 반도체 주식(삼성전자)을 밀어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급증하는 예금·부동자금

21일 한은에 따르면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 부동자금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1010조7030억원으로 전달과 비교해 3.34%(32조6671억원) 늘었다. 전월비 증가율은 2017년 9월(3.35%) 후 최고치다.

갈 곳을 잃은 시중 자금이 늘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예금은행의 총예금(요구불예금, 저축성예금 등) 잔액은 지난해 11월 말 1510조877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 한 해 동안 115조8897억원(증가율 8.3%)이나 불었다. 이 같은 증가율은 연간 기준으로 2010년(16.3%) 후 최고치다.

부동자금이 불어나고 있지만 소비와 투자 지표는 나빠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민간 소비(실질 기준)가 전년 대비 1.9%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봤다. 2013년 이후 가장 낮다. 설비투자는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11월 증가율이 0%를 기록하며 마이너스를 벗어났지만 저점을 벗어나진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설비투자와 관련이 깊은 시설자금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498조555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6.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3분기 말 시설자금 대출 증가율은 통계를 집계한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치다.

< 이 돈은 어디로… > 소비·투자 부진으로 시중 부동자금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20일 서울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현금운송업체 직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할 설 자금을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저금리, 라임자산운용 사태 등 부작용”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떠도는 부동자금이 급증한 배경으로는 정책의 불확실성과 미·중 무역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꼽힌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정책, 부동산정책 등 반시장적인 정부 정책이 경제주체들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자금이 자산시장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시장 조사업체인 글로벌프로퍼티가이드(GPG)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유럽 주요국의 평균 주택가격은 5년 전인 2014년 말 대비 20%가량 뛰었다. 같은 기간 독일의 주택가격 평균 상승률은 45.8%에 달한다. 저금리가 부동산가격을 밀어올린 여파다. 한국의 사정도 비슷하다.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금융 규모가 2000조원을 돌파했다.

저금리 환경이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고금리 상품에 대한 쏠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금융감독원이 집중 점검 대상으로 꼽은 해외부동산 상품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부동산 사모펀드의 경우 지난해 말 설정잔액이 52조1522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37.4%로 급증했다.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지난 15일 한 세미나에서 “세계적 저금리 여건이 고금리 위험자산 투자를 늘렸다”며 “라임자산운용의 해외 고위험 자산 투자 등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위험자산 투자 확대가 부작용과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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