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공영은 떼고 방송하라

김형원 정치부 기자 2020. 1. 2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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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원 정치부 기자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1Q84'에서 공영방송 NHK 수금원의 집요함에 대해 서술했다. 소설 속에서 수금원은 주말도 가리지 않고 가가호호 찾아가 수신료를 독촉한다.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하지 않는 집 앞에선 "안에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라며 고함 지른다. 일본에선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이 원내(院內)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당은 선거 과정에서 국정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NHK를 때려 부수겠다"고만 했는데, 여기에 공감한 유권자가 상당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KBS 수금원'이 따로 없다. 수신료를 전기료에 통합해서 강제로 징수하기 때문에 일일이 걷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는 이런 '강제 징수' 방식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KBS 수신료 강제 징수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1만3300명이 동의한 것이 그 방증(傍證)이다. 그러자 청와대는 "수신료 통합 징수는 적법하다"고 했다.

공영방송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 세력 편을 드는 행태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정권 시절 KBS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이정현 의원에 대한 벌금형이 확정됐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 의원은 "저의 경우를 참고삼아 언론 자유와 독립이 더 견고하게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편파성 시비는 좌우만 바뀐 채 계속되고 있다. KBS는 메인 뉴스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 문구에 한국당 로고를 합성해서 내보내더니, '야당 심판론'이 우세하다는 최근 여론조사 보도는 질문부터 편향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지 집회를 지켜본 MBC 보도국장이 "딱 보니 100만(명)"이라면서 무인기(드론)로 촬영한 일도 논란이 됐다. MBC는 직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조 전 장관 반대 집회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정치적 편향성이 뚜렷한 인사들은 대거 공영방송 시사 부문에 진출했다. 작년 4월 강원도 일대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지만, KBS는 뉴스 특보도 중단하고 친여(親與) 개그맨이 진행하는 '오늘 밤 김제동'을 내보냈다. 이를 두고 "노무현 노제를 진행한 개그맨만 아니었어도 재난방송이 나갔을 텐데…"라는 이야기마저 나왔다. 공영방송이 정권 실세(實勢)들의 눈치를 보느라 재난 주관 방송사의 본분마저 저버렸다는 비판이다.

KBS 수신료는 특정 정파 지지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서 강제 징수한다. 그렇다면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보은(報恩)해야 할 대상은 권력이 아니라 바로 보통의 시청자다. 이 사실을 간과한다면 다가올 총선에서 'KBS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이 돌풍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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