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4월 총선은 '문재인 선거'다

김광일 논설위원 2020. 1. 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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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립(鼎立)’이라는 말이 있다. 솥 정, 설 립. 여기서 ‘정(鼎)’은 솥이란 뜻이다. 옛 사람들은 발이 셋 달리고 귀가 둘 달린 솥으로 음식을 익혀 먹었다. 발이 둘 달린 솥은 서지도 못하고 바로 쓰러져버리는데, 발이 넷 달렸다고 좋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기우뚱거릴 수 있다. 그래서 수학적으로 따져서 하나의 평면을 결정하는 세 개의 받침점을 가졌을 때 그 솥은 웬만한 곳에 놓아도 흔들림 없이 균형을 잡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은 삼권분립을 토대로 한 자유민주주의다. 삼권분립이란,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갖춘 ‘입법, 사법, 행정’을 뜻한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이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대통령과 청와대만 남아 있다. 그래서 이제 4월 총선은 좋든 싫든 ‘문재인 선거’가 돼버렸다.

먼저 입법을 보자면, 국회는 이미 오래 전에 ‘식물 국회’가 되다시피 했다. 민생 입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사라져버렸다. 여당은 ‘청와대 2중대’라는 말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대통령과 청와대 앞에 엎드려 있는 수직관계다. 국민들을 분노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조국 사태 때 여당은 아무런 말을 못했다. 여당의 당 대표까지 지냈던 추미애 의원이 일개 장관 자리로 옮아앉았다. 입법부의 수장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국무총리 제안이 있자 청와대로 달려가 대통령이 주는 임명장을 고개 숙여 받았다. 그런가 하면 야당은 목숨을 걸고 반대한다던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 등이 차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데도 아무런 견제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들러리를 서는 느낌마저 주었다.

다음 사법부를 보자.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조차 ‘김명수 대법원’이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지키고 있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최근엔 김명수 대법원의 적폐몰이에 핵심 판사 18명이 무더기 사표를 냈다. 오는 1월 말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법원행정처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판사가 최소 18명이나 떠나는 것이다. 한편 지난 정부의 양승태 대법원을 공격하는데 앞장섰던 ‘진보진영 판사’들은 일찌감치 권력 중심부인 청와대로 갔거나, 최근에 몇몇은 민주당에 영입돼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발을 자르고 있는 이른바 ‘검찰 개혁’은 지난번 간부급 ‘학살 인사’에 이어 실무급 검사 300명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닥쳐 있다.

신임 중앙지검장은 조국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준 최강욱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막고 있다고 하고, 신임 동부지검장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의 기소를 막고 있고, 신임 반부패부장은 조국 민정수석의 기소를 막으려 했다고 한다. 법무부는 검찰 인사에 대한 윤석열 총장의 답변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어떤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도 헌법재판소도 대통령의 코드 인사로 채워지면서 사실상 ‘사법 독재’ 시대가 열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오래 전에 나왔다.

행정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 행정부는 세 가지가 없다. 정책, 자율, 중립, 이 셋이 실종됐다. 국가의 크고 작은 판단과 설계와 결정은 모두 청와대가 한다. 정부 부처는 청와대의 지시사항을 실천하고 확인하고 보고하는 역할, 혹은 청와대가 실수한 것에 대한 뒤치다꺼리를 할 뿐이다. 관료들, 고도로 훈련받은 테크로크라트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드러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교육 문제든, 원자력 문제든 ‘아닥’, 즉 입 닫고 있는 게 최고의 처신이다. 자칫 청와대에 찍히는 날엔 국물도 없다. 수십 년씩 대학 입시와 교육 제도를 연구해본들 무슨 쓸데가 있나. 대통령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입시제도가 바뀌는 정권이다. 장관들은 ‘존재감 제로’다. 국민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장관은 한두 명 밖에 안 될 것이다. 국무회의는 거수기 회의로 전락한지 오래됐고, 모든 것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결정된다. 장관은 허수아비고, 청와대 비서가 실세다. 모든 것은, 그러니까 큰 국가정책은 물론이고 작은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대통령 한 사람 중심으로 돌아간다.

저들은 선거에서 지는 날엔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는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절박함 속에 짓눌려 있고, 오로지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집단이다. 저들은 선거에 지면 ‘재앙’이 닥친다는 말로 지지자들을 협박하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50%를 넘었다. 특히 30대 지지율이 10.6% 포인트나 빠져나갔다.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청와대 정무수석의 부동산 거래 허가제 발언이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친문 집권 세력들은 더 강하게 나올 것이다. 청와대 출신 친문 인사만 60여명이 총선에 나서고 있고, 비문(非文)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득표율에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에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을 중심으로 더욱 가열차게 시계바늘을 돌릴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엔 청와대만 있고 정부도 국회도 사법부도 없다. 그래서 4월 총선은 ‘문재인 선거’가 됐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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