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사법부 개혁, 내부에서는 불가능한가

이가영 2020. 1. 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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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사회1팀장

음력설 아래 인사철, 서초동에선 훈훈함이 사라졌다. 새해 벽두 ‘윤석열사단 학살’을 겪은 검찰은 후속 인사를 목전에 두고 여전히 뒤숭숭하다. 2월 정기 인사가 예정된 법원은 판사들의 사표가 이어지며 어수선하다. 특히나 법원은 이른바 ‘양승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세상에 드러낸 판사들이 일제히 정치권으로 향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위 ‘엘리트’ 판사들의 줄사표도 조직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떠나는 자보다 남은 이의 고뇌가 더 커 보이는 상황이다.

정치부 기자 시절, 좋은 인재들이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눈에 띌 때마다 “정치권으로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내에서 용감한 소리를 냈던 판사들의 잇따른 정치권행에 쉬이 박수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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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대한민국 사법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아직 여러 개혁과제들에 대한 눈에 띄는 변화를 찾아 보기 어려워 “결국 법원의 세력교체만 이뤄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법원에 만연했던 몇몇 폐단이 해소되는 길을 열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일이 있기까지 이탄희·이수진·최기상, 이들 전직 판사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이들이 올 총선에서 여당 의원으로의 변신을 준비중이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긴 사법개혁을 위해 개인적인 연에 눈을 질끈 감고 내부고발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은 분명 좋은 인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동시에 정치권으로 향하는 대목은 영 입맛이 개운치 않다. 이들 모두 “사법부 밖에서, 정치권에서 진정한 사법개혁을 이루겠다”고 말하는 부분이 더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사법부 내에서의 자체 개혁은 무리이며 결국은 정치권만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의 내부고발은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그들과 함께 사법개혁을 외쳤던 정욱도 판사는 “본인만 혐의를 감수하는 것이 아니다. 남은 법관들, 특히 같은 대의를 따르던 다른 법관들에게까지 법복 정치인의 혐의를 씌우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왕 정치를 하겠노라 마음을 먹었다면 잘 해 내길 바란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늘 이런 시선이 따르고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많은 사법부 내 선후배들이 부담을 지게 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조직에 남은 이들이 내부에서의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에 젖지 않도록 하는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이가영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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