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文 한마디에 끝난 '조국 수호'

서유근 사회부 기자 2020. 1. 2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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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근 사회부 기자

지난 18일 토요일 오후에도 여지없이 '조국 수호' 집회는 열렸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찻길을 막아놓고 수천 명이 모였다. 이날은 좀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이달 24일)을 앞두고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축하 노래를 합창했다. 대검찰청 건물에는 레이저로 "문재인 최고"라는 문구를 쐈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선거 유세 복장을 입고 나온 공연단이 당시 선거송에 맞춰 안무를 선보였다. 폭죽까지 쏘려고 계획했다가 경찰이 만류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우리 문파(文派)" "우리 오소리(문 대통령 지지자를 지칭)"라 불렀다. 현장을 지켜본 경찰 관계자는 "대통령 생일잔치라고 해도 믿을 것"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연단에 오른 행사 진행자가 외쳤다. "대통령님이 우리 '문파' 여러분께 호소하셨습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일은) 이제 법원의 시간으로 남겨두자고. 우리가 대통령님 말씀 안 들으면 누가 듣겠습니까!"

놀랍게도 이 외침과 함께, 그동안 토요일마다 모여 "우리가 조국이다" "정경심 교수님 사랑합니다" 등을 목놓아 외쳐온 이들이 더는 모이지 않기로 했다. 작년 9월 시작된 '조국 수호'는 이렇게 끝났다.

정작 조 전 장관은 여전히 '위기' 상태다. 집회 하루 전날에도 검찰은 '유재수 감찰 무마' 혐의로 그를 추가 기소했다. 아내는 구속돼 있고, 일가(一家) 전체가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그들이 그동안 말해온 '억울한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도 집회 종료를 선언한 이유는 단 하나. 대통령이 시켰다는 것이다. 집회를 주최한 '함께 조국수호 검찰개혁'이란 단체는 지난 14일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국민도 조 전 장관을 놓아주자"고 말한 다음 날(15일) 인터넷에 '이번이 마지막 집회'라고 공지했고, 실제로 당일 "집회 종료"를 선언했다. 정권을 수사하던 검찰 주요 간부직이 대거 친여(親與) 검사로 교체된 직후였다. 문 대통령이 원하는 소위 '권력기관 개혁'이 마무리이니, 더는 추운 날씨에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일단 완전히 내쳐진 것 같은 조 전 장관이 다시 군중의 '수호'를 받을 길도 없는 건 아니다. 주최 측은 집회 공지 마지막에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게릴라성 집회를 열 준비가 돼 있다. 다시 나올 마음의 준비 부탁드린다"고 했다. '상황 변화' 즉, 대통령의 한마디면 언제든 다시 돌아와 '조국 수호'를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조국 수호대'의 본질은 '대통령 수호대'였다.

다수 시민의 불편에도 집회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약자(弱者)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가 가장 크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가장 강한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모인 이들의 집회를,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참고 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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