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석이는 늘 마음의 빚이었죠" 익명으로 1억 보낸 친구

부산/박주영 기자 2020. 1. 2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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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 故 이태석 신부의 의대 동기, 오지 봉사에 써달라며 기부
"투병때 다 나으면 같이 남수단 가자고 했는데.. 이틀 뒤 하늘로 떠나"

아프리카 남수단의 빈민촌 톤즈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 2010년 대장암으로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의사 친구가 해외 오지 의료 봉사에 써달라며 1억원을 쾌척했다.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23일 "이 신부의 인제대 의대 81학번 동기인 A씨가 최근 '사업회의 의료 봉사 활동에 써 달라'며 1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A씨는 경남의 한 도시에서 개인 의원을 운영 중이다. 두 사람과 인제대 의대 동기인 양종필 사업회 운영위원장은 "본인의 강력한 뜻에 따라 신원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대학 시절 이태석 신부와 농구를 같이 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지난 2001년 이태석 신부가 늦깎이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남수단으로 가면서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이 신부가 투병 중이던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재회했다. 동문들을 통해 이 신부의 근황을 알게 된 A씨가 상경해 병문안을 온 것이다.

이후 A씨는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개월여간 매 주말 이 신부의 병실을 찾아왔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개구리 왕눈이'처럼 눈이 크고 예쁜 태석이가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A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태석아, 다 나으면 같이 남수단으로 가자. 나도 너처럼 의술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 이 말을 들은 이 신부가 힘겹게 입을 열어 "그래, 함께 가자"고 답했다. 두 친구의 마지막 대화였다.

부산에 문 연 이태석 기념관 - 지난 14일 개관한 부산 서구 남부민동 ‘이태석 신부 기념관’ 내부. 지상 4층 높이로 들어선 기념관에는 전시실, 프로그램실, 다목적 홀 등이 있다. 기념관은 이 신부의 생가 뒤편에 지었다. /부산 서구청

A씨는 지난 12일 대학 동문, 사업회 관계자, 천주교 부산 송도성당 신자 등 70여명과 함께 전남 담양군의 이 신부 묘소에서 열린 추모회에 참석했다. 추모회 후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매년 2~3차례 캄보디아 등 해외 의료 봉사를 갈 때마다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양 위원장의 하소연을 듣고, 다음 날 바로 전화를 해 1억원 기부 의사를 밝혔다.

양 위원장은 "시골에서 작은 의원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큰 돈을 내면 부담 간다. 해외 의료 봉사 갈 때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할 테니 그때 도와주면 된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A씨는 "올해가 태석이 10주기고 그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병상 약속'의 짐을 덜고 싶다"며 기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양 위원장은 "'태석이 정신의 빛'이 널리 퍼지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1년 출범한 사업회는 청소년 교육, 예술인 재능기부 음악회, 해외 의료 봉사, '이태석 봉사상' 시상 등의 활동을 해왔다. 미얀마, 캄보디아, 필리핀 등에서 진행하는 의료 봉사로 2013년부터 지금까지 1만400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뜻깊은 소식도 들려왔다. 고인의 남수단 제자인 존 마옌 루벤(33)씨가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 자격증을 받게 된 것이다. 앞서 2018년에 의사시험에 합격한 토머스 타반 아콧(35)씨에 이어 이 신부의 두 번째 의사 제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태석 신부의 고향에서도 기념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부산 서구는 지난 14일 서구 남부민2동 이 신부 생가 뒤편에 '이태석 신부 기념관'을 짓고 문을 열었다. 이 기념관은 지상 4층에 연면적 893.80㎡ 규모로 전시실, 프로그램실, 다목적홀 등으로 이뤄져 이 신부의 삶을 기리는 사업을 벌인다. 서구는 2014년 10월 이 신부 생가를 복원하고, 2017년 7월 주민들이 만든 공예품과 이 신부 관련 상품을 파는 '톤즈점방'을 조성했다. 서구는 생가, 톤즈점방, 기념관에 더해 주변에 녹지공원을 만들어 그 일대를 '톤즈빌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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