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곡물로 만든 고기는 진짜 고기 맛날까

김진호기자 2020. 1. 2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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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파서블 푸드 제공

동물복지와 환경 보호. 최근 이 두가지를 동시에 실천하려는 '인공고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공 고기는 대체육류로 불리기도 합니다. 2016년 소설가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을 때는 채식 열풍이 불 정도로 대체육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죠. 현재 국내외에 콩고기, 곡물고기, 줄기세포 배양육 등 다양한 대체육류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체육류는 진짜 육류의 맛과 향을 낼 수 있을까요? 영양학적인 측면에서 대체육류는 고기로 불려도 되는 걸까요? 과학동아가 팩트체크에 나섰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체육류 생산업체인 비욘드미트(Beyond Meat)는 2009년 설립 당시 세계 최고 부자였던 빌 게이츠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이 투자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채식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최근 비욘드미트는 2020년까지 아시아 지역에 특화된 대체육류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9년 3월부터 동원F&B가 비욘드미트의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2016년 ‘임파서블버거’를 출시한 미국의 임파서블푸드(Impossible Foods)도 중국을 통해 아시아 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국내 업체들도 대체육류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오랫동안 대체육류의 대명사로 불리던 콩고기를 넘어 콩의 단백질을 없애고 오직 곡류로만 만든 곡물고기가 국내 기술로 출시됐습니다. 줄기세포 배양육은 여전히 연구 단계여서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만큼 당분간은 콩고기와 곡물고기의 이파전이 예상됩니다.  

①  진짜 고기와 맛이 비슷한가?

콩 단백질을 넣은 비건 콩불구이(왼쪽)와 콩이나 대두 단백질 없이 현미가 귀리와 같은 곡물로만 만든 언리미트를 직접 불에 구워 비교했다. 21명을 대상으로 시식을 진행한 결과 비건 콩불구이는 버섯의 식감과 향을 가졌으며, 언리미트는 소고기의 식감과 함께 볶은 곡물향이 난다는 의견이 나왔다. 과학동아DB

일단 대체육류의 맛이 궁금해서 작은 시식회를 열었습니다. 과학동아 기자와 디자이너 등 동아사이언스 직원 21명을 대상으로 12월 6일 콩고기 1종(러빙헛코리아의 ‘비건 콩불구이’)과 곡물고기 1종(지구인컴퍼니의 ‘언리미트’)을 구워서 제공했습니다. 고기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소스 없이 맛보게 했습니다. 

비건 콩불구이와 언리미트를 굽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냉동 포장된 제품을 상온에서 녹인 뒤 프라이팬에 기름이나 물을 두르고 3분 동안 구웠습니다. 비건 콩불구이의 경우 불고기 양념(간장 소스)이 5%가량 들어 있어서인지 구울 때 불고기 향과 표고버섯 향이 났습니다. 눈에 보이는 질감 역시 고기 표면에 촘촘한 주름이 져 있어 시각적으로는 진짜 고기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러하면 입에 넣어도 고기와 비슷한 식감이 날까요. 이진규 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콩 등을 갈아 넣은 반죽을 가래떡처럼 뽑아내는 압출 공정을 이용하면 단백질이 섬유화되기 때문에 퍽퍽하고 푸석해지기 쉽다”며 “이런 공정을 사용했다면 푸석한 식감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으로 대체육류를 먹어본다는 백석우(29) 씨는 “씹을 때 식감이나 맛, 향은 언리미트가 진짜 고기와 더 비슷한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평소 채식을 실천 중인 박현선 씨(28)는 “콩고기가 곡물고기보다 식감이나 맛에서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향과 맛에서는 비건 콩불구이가, 식감에서는 언리미트가 낫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는 “자세히 얘기할 순 없지만 언리미트 생산에는 압출 공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5000명을 대상으로 시식회를 진행한 결과 78%가 고기와 유사한 식감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습니다. 민 대표는 또 “언리미트는 불고기 양념 대신 효모, 환원당 등 식물성 원료를 넣고 열처리를 해 구울 때 고기 향이 나게 만들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언리미트를 굽자 고기 기름과 비슷한 즙이 빠져나오면서 은은한 고기 향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향이 실제 고기 향과 비슷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현미와 귀리 등 곡물로만 만든 고기인 만큼 곡물을 볶은 향이 난다는 의견도 꽤 많았습니다. 

사실 돼지나 소 등 가축에서 얻은 육류에는 단백질과 지방이 고루 포함돼 있습니다. 단백질과 지방의 양은 고기를 구울 때 나는 향과 먹을 때 씹히는 식감을 결정합니다. 제 입에는 지방이 확연히 적은 콩고기와 곡물고기 모두 향이나 식감이 실제 가축의 고기와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비욘드미트의 햄버거용 패티인 ‘비욘드 버거’도 먹었습니다. 다만 시식회 당일 냉동 상태로 꽝꽝 얼어 있어 부득이하게 제가 집에서 혼자 시식하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전자레인지로 해동하면 고기 일부가 익어 버릴 수 있는 만큼 다른 시식 제품과 마찬가지로 자연 해동시켰습니다. 제 입에는 비욘드 버거의 향만 일반 소고기 패티보다 덜할 뿐 맛과 식감은 진짜 고기 패티와 비슷했습니다.  

② 진짜 고기와 영양성분은 비슷한가?

채식에는 유형이 존재합니다. 대개 어느 수준의 음식까지 허용하는지에 따라 7단계로 구분합니다. 유제품과 동물의 알, 해산물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안 먹는 가장 높은 수준인 비건(vegan) 채식이 있습니다. 유제품은 먹는 락토(lacto) 채식, 동물의 알은 먹는 오보(ovo) 채식, 또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하는 유연성을 갖춘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같은 유연한 채식도 있습니다. ‘비건’ ‘락토’ 등의 이름이 붙은 식품의 경우 이런 기준에 맞춰 성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영양학적인 관점에서 비건 콩불구이와 언리미트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두 제품 모두 가장 높은 단계인 비건 채식 제품입니다. 100g당 영양성분을 기준으로 비교해 볼까요? 

비건 콩불구이에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각각 14.6g, 12g, 18.5g씩 포함된 반면 언리미트는 각각 6.4g, 3.5g, 41g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았습니다. 지방과 단백질 성분을 기준으로 비건 콩불구이는 돼지고기 목살(지방 10~15g, 단백질 17g) 부위와, 언리미트는 닭가슴살(지방 1g, 단백질 28~35g)과 가장 비슷합니다. 

참고로 비욘드 버거의 100g당 영양성분은 탄수화물 3.8g, 지방 19.1g, 단백질 15.3g으로 돼지고기와 비슷합니다. 민 대표는 “언리미트의 경우 탄수화물 함량은 기존 콩고기 제품 평균값의 3분의 1로 낮췄고, 단백질 함량은 1.5~2배 높였다”며 “국내외에서 유통되는 식물성 고기 제품 중 단백질 성분은 가장 높다”고 말했습니다.

비욘드 버거나 비건 콩불구이는 콩과 대두 단백질을 주성분으로 합니다. 비욘드 버거는 완두콩과 녹두, 쌀 등에서 단백질 성분을, 코코넛 오일과 코코아 버터, 카놀라유 등에서 지방 성분을 추출해 배합했다고 합니다. 비건 콩불구이 역시 대두 단백질을 주성분으로 밀 등의 식물성 성분을 넣어 만들었습니다. 

민 대표는 “국내 곡물 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콩을 제외한 곡물에서 단백질을 추출해 식물 고기를 만들었다”며 “앞으로 소고기의 맛과 식감에 더욱 비슷해지도록 대체육류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③  맛 없어도 대체육류 먹을까?

미국의 비영리기관인 좋은음식연구소(Good Food Institute)와 시장조사기관인 이노바마켓인사이트(Innova Market Insights)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 세계 육류 생산량은 돼지고기 1억1100만t(톤), 가금류 9050만t, 소고기 6130만t 등 총 2억6280만t에 달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2018년의 육류산업 규모는 약 1001조1293억 원이며, 대체육류 시장 규모는 약 5조64억 원 수준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진짜 고기’를 구현할 수 있다고 알려진 줄기세포 배양육 개발 경쟁도 뜨겁습니다. 줄기세포 배양육은 가축의 힘줄에 있는 근육 줄기세포를 배양해 육류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실제 가축의 줄기세포를 사용한 만큼 진짜 고기라고 할 수 있죠.

줄기세포 배양육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연구팀은 가축을 키워 고기 1t을 생산하는 데는 각각 에너지가 26~33GJ(기가줄), 물이 367~521㎥ , 토지가 190~230㎡ 필요하다고 2011년 국제학술지 ‘환경 과학 및 기술’에 발표했습니다. 또 이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1.9t에서 최대 2.24t으로 계산됐습니다. 그런데 이를 줄기세포 배양육으로 대체하면 에너지 소비량은 최대 45%, 온실가스 배출량은 78~96%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doi: 10.1021/es200130u 

줄기세포 배양육은 아직 연구 단계라 이번 시식회에서 맛을 확인해볼 수 없었습니다. 동물 복지와 환경 보호를 고려한 ‘착한 소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개인의 기호와 취향뿐만 아니라 가치와 신념이 반영된 인공 고기가 더 다양하게 개발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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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2020년 1월호, [아무나 못하는 팩트체크] 곡물로 만든 고기는 진짜 고기 맛 날까? 

[김진호기자 tw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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