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강제 징용의 현장 '일본 탄광'은 지금..

고현승 2020. 1. 2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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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군함도를 비롯한 일본 각지의 광산들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강제 징용자들의 한이 서린 곳입니다.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인데요.

이런 비극의 현장들을 일본 정부가, 근대화 산업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역사의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도쿄 고현승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후쿠시마현과 이바라키현에 걸쳐있는 조반탄광.

기록에 따르면, 조반탄광에는 1939년부터 45년까지 2만여명의 우리나라 사람이 강제 징용됐습니다.

1942년에는 88%, 1944년에는 86%가 위험한 갱내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다쓰타 고지/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 "가장 위험한 최일선인 석탄을 캐는 사람들은 조선인이지 않았나…"

한국인 합숙소 자료도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야적장과 창고로 쓰이고 있는데, 당시 1개 합숙소에 200~300백명을 집어넣고 사감이 막대기로 가차없이 때려 상처가 끊이지 않았다고 기록돼있습니다.

[다쓰타 고지/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 "아파서 오늘은 쉬고싶다고 하면, 때려서 일을 하라며 내보냈습니다."

또 마치 수용소처럼 10명씩 묶어 첫째 이치로(一郞)부터 열째 주로(十郞)까지 일본식 이름을 붙여 관리했습니다.

달아날 수 없도록 담도 둘러쳤는데 만약 도망가다 붙잡히면 감옥으로 보내졌고, 남은 9명은 연대 책임을 져야했습니다.

사망자 명부엔 이름과 본적지 등이 기록된 사람만 309명에 이릅니다.

제 뒤로 보이는 흰색 굴뚝은 조반탄광 화장터의 굴뚝입니다.

지금은 사찰의 공양탑으로 남아있는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사망할 경우 모두 이렇게 화장처리된 것으로 기록돼있습니다.

화장터 자리에 세워진 사찰에는 '조선인 강제연행 노무자의 정령을 공양한다'는 묘비가 세워져있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007년 군함도 등과 함께 조반탄광을 근대화산업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이바라키현의 히타치 광산도 한국인 4천여명이 강제징용된 곳입니다.

역시 지하 갱도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합숙소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숨진 한국인 광부는 200여명, 히타치광산측이 위령탑을 세워놨지만, 정작 유골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장영조/조선인전쟁희생자 위령탑 관리위원회] "죽으면 누가 고향에서 찾아올 수 있나요? 없잖아요. 그냥 간단하게 (땅을) 파가지고 묻고…"

이곳 역시 일본 정부가 지정한 산업유산입니다.

현재 광산 자리엔 기념관이 들어서있고, 강제징용의 흔적은 의도적으로 가려지고 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이바라키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편집: 이장식, 김진호(도쿄))

고현승 기자 (countach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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