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공짜 마스크'.."뿌리는 것보다 바우처 지원이 낫다"

김방현 2020. 1. 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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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984억 마스크 보급 실효성 논란
저소득층 246만명에 50개씩 지급
지난해 보급품도 경로당 등 방치
전문가 "무분별한 복지 문제될 것"

지난 23일 오전 대전 시내 한 경로당. 경로당 안 조그만 창고를 열자 포장지를 뜯지 않은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가 보였다. 어림잡아 100개는 돼 보였다. 경로당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지난해 12월께 보급된 마스크”라며 “필요한 분들이 갖다 쓰도록 했는데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계속 보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저소득층과 노약자 대상 미세먼지 마스크 무료 보급사업이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가 마스크까지 나눠주는 건 ‘복지과잉’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마스크를 원하지 않은 사람도 많아 예산 낭비란 시각도 있다.

27일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생활시설 거주자(복지시설) 등 저소득층 246만명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보급한다. 총 사업비 984억원 가운데 국비가 460억원, 나머지는 지자체 예산이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에도 194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미세먼지 마스크를 보급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추진한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사업을 놓고 ‘복지 과잉’ 등의 논란이 일고 있다. 대전시내 한 경로당에서 보관 중인 마스크 를 주민이 착용해 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한 제품을 사도록 했다. 마스크 구매 단가는 800원이며, 지자체별로 사도록 방침을 내렸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사업은 저소득층 건강 보호와 상대적 박탈감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마스크는 지자체가 읍·면·동 사무소를 통해 주민에게 나눠준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에게는 공무원이 직접 가서 전달하거나 경로당 등을 통해 보급한다. 마스크는 1인당 50개씩 준다. 주요 시·도별 올해 마스크 보급사업 예산을 보면 ▶서울 158억원 ▶부산 79억4700만원 ▶대구 57억5900만원 ▶인천 51억8600만원 ▶광주 41억9600만원 ▶대전 24억1300만원 ▶경기 191억6700만원 등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전의 한 구청 복지담당 직원은 “정부가 국민 건강을 챙기는 것은 이해하지만, 마스크 보급이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지난해 보급한 마스크가 아직도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에 쌓여 있다”고 했다. 대전지역 동사무소 담당 직원은 “마스크를 직접 주는 것보다는 바우처 형식으로 마스크 구매권을 줘서 필요한 사람이 직접 사도록 하는 게 낫다”고 했다. 부산시 동래구 사직1동 주민센터는 지난해 12월 마스크(40개들이 464개)를 받았으나 최근까지 절반 정도만 나눠줬다고 한다. 사직1동 담당자는 “주민센터 오면 주고 아니면 상담 나가서 주고 하는데 대상자들이 안 찾아간다. 필요 없다고 하는 분도 있다”고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지난해 이 사업을 대표적인 ‘재정 누수’ 사례로 꼽았다.

주민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대전시 서구 주민 배모(78)씨는 “노인은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도 힘들 때가 있는데 마스크를 쓰고 다니겠냐”며 “일부에서는 ‘국민 입을 막으려고 마스크를 나눠주는 게 아니냐’는 불만의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김모(81·강원도 춘천시)씨는 “마스크 대신 라면이나 쌀을 주면 생활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세먼지 대응책으로 마스크를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식품의약처(FDA)에 따르면 만성 호흡기 질환과 심장 질환, 기타 숨을 쉬기 어려운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용하기 전에 의사 등 전문가와 상의하라고 권고한다.

배재대 행정학과 최호택 교수는 “각종 현금복지 등 무상복지가 넘쳐나고 있는데 정부가 마스크까지 무료로 지급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며 “무분별한 복지는 나라 살림을 멍들게 하고 결국 후세에게 짐을 지우게 되는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부산·춘천·전주=김방현·황선윤·박진호·김준희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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