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울산·유재수 사건이 문재인 정권 발목 잡을 것"

박재현 2020. 1. 28.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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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캐비닛 들어간다고 종결 아냐
수사 기록 통해 재수사 여지 남겨 둬
소환 불응은 정권에 두고 두고 부담
대규모 인사가 민심 이기진 못해


윤석열 수사의 종착지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에 관련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조사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뉴스1]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이번에도 한마디를 했다. 설 연휴 지방의 민심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적극 주문했다는 주장이다. “많은 분들이 ‘문재인·조국을 살려라. 검찰이 나쁘다. 어떻게 그렇게 탈탈 터느냐. 자기들은 그렇게 깨끗한가’라고 말했다”는 것이 그가 전한 시민 생각이다.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의 속내와는 거리가 있는 말이다. 연휴 때 만난 한 검찰 간부는 “박 의원의 촌평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순수함을 잃으면서 많은 검사들이 발언의 배경을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 정부 들어 각종 현안에 대해 약방의 감초처럼 자신의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말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 9단’이라는 이미지는 오히려 퇴색됐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의 수사팀들이 겪었던 2중, 3중 고충의 한 단면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권력들이야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 때문에 목숨 걸고 저항한다지만, 정권에 기생하는 정치인과 지지세력들까지 윤 총장의 수사팀들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검찰 내부의 분란까지 유발시켰다. 이달 8일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들에 이어 설 연휴 직전 중간 간부 인사를 마무리 지으면서 검찰 내부는 확실하게 피아(彼我)의 구분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수사의 주체를 검찰로 규정짓는 표현도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김대중 정부 때 ‘비정상의 정상화’를 모토로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도 이처럼 지독한 내분은 없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 때는 오히려 검찰과 정권이 대립양상을 보이면서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이제 남은 가장 큰 궁금증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이뤄지고, 어떤 식으로 종결될 것인가” 이다. 정확히 말하면 윤 총장은 자신을 임명한 문 대통령과 ‘해피 엔딩’을 할지, 아니면 ‘슬픈 이별’을 택할지 여부가 핵심이다. 수사 지휘 과정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친정부 성향의 검사로 평가받는 검찰의 또 다른 분파들에게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도 관심거리다.

우선 상대적으로 진도가 많이 나아간 유재수 사건부터 살펴보자.

서울동부지검은 이미 유씨에 대한 감찰 무마의 책임을 물어 조국 당시 민정수석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제 남은 건 조 전 수석의 윗선과 ‘지휘 계통에 있지 않은 또 다른 권력’에 대한 수사다. 일각에선 유씨가 이 정권 실세들과 인연을 맺게 된 노무현 정부 때의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또한 ‘보이지 않는 권력’의 부탁을 받고 조 전 수석 등에게 청탁을 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검찰에 대한 권력의 견제가 극대화되고 있고, 수사팀이 바뀐 상황에서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조 전 수석 등에 대한 조사에서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때문에 검찰은 수사를 종결하지 않고 미완의 완성으로 남겨두는 방법을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사기록에도 ‘신원 불상의 사람에게 청탁을 받고…’ 등의 표현을 남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울산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국민의 선거권을 방해했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왜곡을 일으킨 것으로 비판받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선거 부정행위는 권력자들에 대한 탄핵을 불러올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가 중요한 것도 여기에 있다. 임 전 실장은 그동안 수사팀의 소환 요구에 개인적 일정을 이유로 응하지 않고 있다. 얼핏 보면 수사팀이 조바심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윤 총장의 입장에선 그의 소환 불응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검찰 수사에 간여했던 한 검사의 얘기. “지난해 선거 때 송철호 시장은 출마에 소극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의 소원은 송 변호사가 당선되는 것’이라는 말에 따라 당시 청와대 참모와 측근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알았느냐 여부가 수사의 정점이다.”

법조계에선 문 대통령의 개입 의혹이 있더라도 조사를 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란과 외환의 죄를 제외하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놓고 박영수 특검은 ‘한시적 기소중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물론 실현은 되지 않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이 특검 수사에 응하지 않은 것을 놓고 비난 여론이 이어지자 압박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특수한 시기에 특수한 법률적 해석을 내놓은 것으로 작금의 상황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때문에 ‘참고인 중지’라는 다소 기발한 법률적 아이디어가 검찰 내부에선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대선자금 수사 때 참고인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자 검토된 적이 있다. 노 당시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를 밝히기 위한 수사가 ‘10분의 1’ 발언에 부딪히면서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당사자들에게 흘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는 사실상 파국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또 문 대통령이 개입한 흔적을 수사를 통해 확보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윤 총장의 입장에선 임 전 실장 조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큰 소득은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4월에 있을 선거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가 마냥 이어질 경우 “검찰이 정치를 한다”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결국은 관련 수사 기록은 검찰의 캐비닛에 잠시 보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의 결과에 따라 재수사나 특검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기록서엔 수사 상황을 빽빽이 적시해 혹시나 있을지 모를 직무유기 논란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윤 총장 같은 강골 검사들은 정치권력에 굴복해 수사를 못 했다는 평가를 가장 싫어한다”는 전직 검찰총장의 말에 한 법조인은 “울산과 유재수 사건은 이 정부 사람들의 발목을 끝까지 잡을 것”이라고 답했다. 인사 학살이 민심의 파도까지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대통령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 논의해야

안창호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갈등은 “이러려고 촛불 혁명을 했나”는 자조와 비판을 불러온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왕과도 같은 대통령 권력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의 정신을 위협하는 정치적 폐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탄핵 선고 때 안창호 재판관이 낸 보충의견은 검찰 수사와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풀기 위한 또 하나의 해결책이다. 그는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라고 규정한 뒤 “헌법상 평등은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할 경우 법치국가의 이념과 직업 공무원제도의 본질적인 내용이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멀어지는 집권화(集權化) 경향을 띠고, 집권화는 절대주의를 지향하며,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에 견제장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안 전 재판관은 “국회나 지방자치기관에 분산된 권력이 국민소환제, 국민발의제, 국민투표제 등 직접 민주제적 요소를 통해 대통령 권력을 통제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퇴임 뒤엔 잊혀지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바람이 현실화되려면 그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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