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文 정권의 노골화된 逆美

김대중 칼럼니스트 2020. 1. 28.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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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떠나면 한국은 중·일·러의 각축장 될 것
문 대통령 안보 그림엔 북한과 김정은뿐..
민간 차원의 반미 허용하고 거기 편승하려는 것은 비겁
김대중 고문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권력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을 해체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횡포에 쏠려 있다. 그것도 나라가 온전히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망조의 현상이지만 그것에 가려 이 나라를 서서히 침몰시키고 있는 절박한 문제가 있다. 바로 문 정권의 한·미 안보 체제 해체 문제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주한 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 해체 같은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드물었다. 현실성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했을 성싶다. 하지만 문 정권이 들어선 이후 그런 말은 일상화하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아주 현실성 있게 다가오고 있다.

미국 대사관저를 월담하는 친북 대학생 단체가 있는가 하면 북한 김정은의 백마 탄 모습을 '학습'하는 모임도 생겨났다. 사드 배치 때 우리는 반미 성향이 거침없이 표출되는 것을 목격했다. 근자에는 발언을 문제 삼아 주한 미국 대사 축출을 요구하는 집단도 생겼다.

그래도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의 움직임이었다. 문 정권의 속마음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역미(逆美)를 드러내지 않았다. 일부러 그렇게 노력하는 척했다. 그런데 근자에 대북 제재를 우회하려는 문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범정부적인 반미 움직임이 조장되고 있다. 이번 북한 관광 허용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는 미국의 의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길을 공개적으로 선택했다. 미국의 대북 제재 목적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줄을 당기는 수단으로 가하는 압박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문 정권은 미국과 어긋나는 길을 가기 시작했다. 미국이 '문 정권의 북한 가는 길'을 막는다면 반미의 길이라도 가겠다는 의사 표시다. '세계 경찰 미국'을 탈피하려는 트럼프 철학(?)과 미국 조야의 피로감이 쌓이면서 이제 주한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와해는 한국 쪽만이 아니라 미국 쪽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오는 4월 15일 한국의 총선거에서 문재인 정권이 재신임받고 11월 미국 선거에서 트럼프가 재선되면 좀 더 근거리로 다가올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 정치 상황의 연장 선상에서 주한 미군 숫자는 점차 줄어들다가 끝내는 철수로 이어질 것이고 한·미 동맹은 재조정될 것이다. 미군이 떠나고 미국이 나간 자리에서 한국 경제는 크게 흔들릴 것이고, 한국은 100년 전으로 돌아가 또다시 중·일·러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한국을 거저먹으려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가세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면 국가 안보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행히도 한국은 문 대통령이 어떤 안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그림이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문 대통령의 그림이 있다면 거기에는 북한과 김정은이 있을 뿐이다. 미국은 계속 혀를 차고 있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도와주려는 북한마저 온갖 욕설과 모욕적 언사로 자기를 걷어차고 있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이 좋은 나라이거나 나쁜 나라이거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혼자 설 자신이 없고 그럴 여건도 아니라면 미국이 차선이다. 미국은 다른 강대국과 마찬가지로 어느 측면 제국주의적 요소가 있다. 중국은 더하다. 아예 우리를 속국 취급한다. 일본도 그렇다. 북한은 제국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침략적 속성이 문제다. 이런 나라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선택은 ‘덜한(less) 제국주의’다. 한국에 영토적 주권(主權)적 욕심이 없는 나라는 미국뿐이고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미워도 아니꼬워도 미국뿐이라는 사고(思考)에 도달한다. 우리가 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냉엄한 사고다.

문 대통령이 진정 북한과 더불어 살기 위해 미국을 정리해야 한다고 믿는 친북 반미주의자라면 그것은 별개 문제다. 그러지 않는 척하면서 미국을 슬쩍 옆구리 찔러 ‘우리 입장 좀 봐달라’며 사정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국민이 창피할 정도로 저자세로 두 손을 비벼대는 모양새로는 양쪽 모두에게서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민간 차원의 반미를 허용하고 거기에 편승하려는 것은 비겁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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