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중앙일보

"거지같은 아이디어도 대환영..그게 애플·구글이 일하는 법"

김정민 입력 2020.01.28. 10:55 수정 2020.01.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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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통해 창조와 혁신 배우는
스탠퍼드 디스쿨 출신 선·후배
김성준·김다니엘 대표 인터뷰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1997년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다른 생각', 잡스가 남긴 유산이다. 여기서 이어지는 질문 하나. "그런데 어떻게?"

지난해 3월 스탠퍼드 디스쿨에서 열린 'The Future's Happening' 세미나 [사진 디스쿨 홈페이지]


애플·구글 같은 혁신기업들은 그 '어떻게'에 대한 답을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에서 찾는다. 디자인 씽킹은 생각을 디자인하는 방법론이다. 출발은 소비자의 상황과 불편에 대한 '공감'에서부터다. ①공감을 통해 ②문제를 정의하고 ③아이디어를 도출한 뒤 ④간단한 시제품(프로토타입)으로 만들고 ⑤테스트를 통해 소비자가 불편해하는 점을 개선한다는 것이 요지다. 이 과정의 밑바탕에 '다르게 생각하는 법'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탠퍼드대 디스쿨(d.school)은 이런 디자인 씽킹을 가르치는 곳이다.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인재들이 이곳을 거쳤다. 디스쿨 학생들의 팀 프로젝트 발표날에는 투자자들이 몰리곤 한다. 디자인 씽킹을 아는 인재들의 아이디어를 선점하려는 경쟁이다. 국내에서도 디스쿨의 디자인 씽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디스쿨의 디자인 씽킹, 한국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13일 서울 종로 위워크에서 만난 김성준 렌딧 대표와 김다니엘 데이라이트 한국 대표 [사진 렌딧]


지난 13일 서울 종로 위워크에서 김성준(35) 렌딧 대표와 김다니엘(49) 데이라이트 한국 대표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스타트업계에서 '디자인 씽킹'을 강조하기로 유명하다.

서울과학고-KAIST에 이어 스탠퍼드대 디스쿨을 다닌 김성준 대표는 2015년 창업한 렌딧을 국내 P2P 개인신용대출 시장 1위로 키웠다. 그런 김 대표의 멘토가 김다니엘 대표다. 컨설팅업체 데이라이트는 글로벌 디자인 컨설팅사로 유명한 아이디오(IDEO) 출신 디자이너들이 2007년 창업한 곳이다. 서울과 샌프란시스코, 뮌헨에 스튜디오(지사)가 있다.

Q : 디자인 씽킹, 쉽게 설명해준다면.
A : 김다니엘=디자인 씽킹은 제품·서비스를 만들 때 ①사용자는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가 ②사용자가 처한 문제의 근원은 뭔가 ③왜 이 제품이어야만 하는가, 왜 기존 제품은 안 되나를 생각하는 방법론이다. 이 생각법에 따라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빠르고 값싸게 최대한 많은 '실패'를 겪어 옥석을 가려내는 게 핵심이다.

■ 생명을 살리는 알림 팔찌

「 김다니엘 대표는 디자인 씽킹의 사례로 데이라이트가 2013년 게이츠재단이 후원하는 공익단체와 작업했던 '생명을 구하는 알림 팔찌(A Tiny Lifesaving Reminder)'를 소개했다. 실제 사용자의 삶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파키스탄 현지 수혜자들을 인터뷰하고 사진 일기를 받았다.

데이라이트가 국제 구호단체와 함께 개발한 구명 팔찌 'Lifesaving Reminder.' 색소 변화로 예방 접종 시기를 알려준다. 이 장치는 파키스탄 빈곤 지역의 유아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사진 데이라이트 홈페이지]


위의 방법론에 따르면:
① 누가: 탈레반의 위협을 받는 파키스탄 빈곤 가정의 아이들
② 문제: 예방접종 시기에 보건소를 찾아오지 않아 영·유아 사망률이 높다
③ 왜: 전자팔찌는 ▶탈레반에게 적발될 수 있다 ▶USB를 연결할 컴퓨터가 없다 ▶비싸서 대량공급이 힘들다

데이라이트는 비싸고 쓸모 없는 전자팔찌 대신 단가를 1/1000로 낮춘 100% 생분해 플라스틱 팔찌를 고안했다. 공기에 노출되면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24시간 후에 빨간 X 표시가 생기는 방문자 배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나 아이에게 팔찌를 채워준 뒤, 빨간 선이 1차·2차·3차 표시에 닿을 때마다 보건소를 찾아오게 했다. 팔찌마다 고유 식별번호가 있어 접종기록도 전산화된다. 이 팔찌로 파키스탄 지역의 영·유아 사망률이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김다니엘 대표는 스탠퍼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제품 디자인 석사를 졸업했다. 아이디오에도 첫 한국계 직원으로 입사했다. 디스쿨 설립(2005년) 초창기엔 강사로 뛰며 후배들을 가르쳤다. 그는 김성준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람이기도 하다. 2004년 KAIST 신입생이던 김성준 대표는 특강을 온 김 다니엘 대표를 만난 후 '디자인 씽킹'에 매료됐다. 7년 후 김성준 대표는 스탠퍼드 기계공학과 학생으로 디스쿨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Q : 기업이 성장하는 데 디자인 씽킹은 얼마나 중요한가.
A : 김성준=서비스 만들 때만 디자인 씽킹이 필요한 게 아니다. 스타트업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 한다. 회사, 상품, 기업문화, 시장 심지어 필요하면 법까지도. 이때 기업을 둘러싼 환경에 '누가' 참여하는지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법을 만드려면, 소비자·법조계·산업계·정부·국회·시민단체 어디도 크게 반대하지 않을 하나의 점(consensus·합의)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해관계자들이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는 금융 신산업인 P2P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오래 매달려왔다. 일명 P2P법으로 불린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은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금융 신산업 육성의 길을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A : 김다니엘=간편송금 앱 '토스'나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가 디자인 씽킹을 적용한 좋은 예다. 공인인증서의 불편함, 불친절한 택시의 불편함 등 오로지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했다. 소비자의 불행을 찾아냈고 남들이 '안 하던 짓', 즉 시스템의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 지점을 찾아 집념으로 서비스를 만들었다.

Q : 타다 운영사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라는 기존 제도가 정한 '원래 의도'를 벗어난 서비스라는 이유로 기소됐는데.
A : 김다니엘=김성준 대표가 말했듯 법에는 이해관계자가 아주 많다. 특히 택시처럼 조직력이 강한 상대가 있으면 더욱 그렇다. 일단 지르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환경에서 사업하려면 어떤 이해관계자를 어떻게 설득할지, 그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찾아냈어야 했다. 안타깝다.

13일 서울 종로 위워크에서 만난 김성준 렌딧 대표와 김다니엘 데이라이트 한국 대표 [사진 렌딧]

Q : 대기업은 디자인 씽킹을 적용하기가 더 힘들지 않나.
A : 김다니엘=상대적으로 불리한 건 맞다. 큰 조직일수록 의사결정 구조가 효율화돼 있고, 이미 큰 투자가 들어간 기존 산업을 지속해야 하니까. 대충 만든 많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검증(실패)하는 데 (대기업은)취약한 구조다. P&G·보잉·구글과 일할 때 그들조차도 이 부분을 힘들어했다. 그래서 사내 스타트업을 만들거나 독립조직을 두는 거다. 파괴적 혁신을 제안하는 팀이 사내에서 살아 남으려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경영진의 지속적인 지원은 물론 시간이 오래 걸려도 지치지 않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김다니엘 대표는 많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단계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가벼운 아이디어 100개를 만들어 90개 실패하더라도 10개를 남기는 게 2개에만 집중했다가 둘 다 망하는 것보다 낫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다음의 기회'가 보장될 때 마음놓고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 씽킹의 이론과 실전에 모두 강한 두 사람도 자신의 조직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했다.

Q : 창업자가 디자인 씽킹 전문가인데, 렌딧도 힘들었나.
A : 김성준=프로젝트 오너(주도자)의 성향과 직군에 따라 A(원래 가려던 방향)가 A'로 바뀌는 일이 잦았다. 불만이 쌓였다. 그래서 프로젝트 하나가 끝날 때마다 '회고'하는 미팅을 도입했다. 회고 미팅은 3팀 막내가 1팀 팀장에게 "의견이 없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 살벌한 자리다. 하지만 이 미팅이 끝나면 4가지가 명확해진다. 이제까지 잘한 것, 아쉬웠던 것, 즉각 개선이 기대되는 것, 개선안이 떠오르진 않지만 논의하고 싶은 것이 정리된단 얘기다. 렌딧 직원이라면 한 달에 최소 두 번의 회고 미팅에 들어간다.

스탠퍼드 디스쿨은 디자인 씽킹의 방법론으로 공감-정의-발상-시제품-테스트 5단계를 제시한다. [사진 디스쿨]

Q : 데이라이트가 겪은 시행착오는.
A : 김다니엘=서열·나이·성별을 구분하는 유교적 문화가 강한 한국에선 서로 직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더라. '거지 같은 아이디어라도 던져보자'고 생각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자인 씽킹의 방법론에 'I like, I wish, I wonder (좋았던 점, 바라는 점, 궁금한 점)' 질문법이 있다. 같은 얘기라도 'I don't like (싫은 점)', 'Why don't you(왜 그거 안 해?)'와는 생각의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인사 다면평가에도 이 질문 양식을 적용했더니 피드백 문화가 수월하게 정착됐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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