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치솟는 '중국인 입국금지'..정부, 규정있지만 못하는 이유
중국 우한 폐렴의 국내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인들의 한국 입국을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28일 참여인원 50만명을 돌파했다. 자유한국당도 이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외교부, 보건당국은 중국인 입국금지를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입국 금지를 통한 전염병 차단 효과에 실효성이 없고, 중국과 외교 문제도 얽힐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전파력이 없는 무증상자에 대해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발병된 이후 전파력을 갖는다”며 “우리가 발병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가 한국인을 입국 금지시키지 않는다. 입국 금지는 범죄인에 한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국제규범에도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194개국이 가입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보건규칙(IHR 2005) 2조에 따르면 '감염은 통제하되, 불필요하게 국가간 이동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각국 정부가 의심환자나 감염자에 대한 입국을 거부하거나 감염지역으로 비감염자가 입국하는 것을 막는 정도의 조치는 가능하지만 발병국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입국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규칙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강력한 조치를 할 수도 있다'는 문구가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학계가 납득할만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공포심이나 혐오감만으로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도 과거 사스(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발병국 출신의 입국을 제한한 사례가 없다. WHO가 우한 폐렴에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선포하지 않은 만큼 한국 정부가 한 발 앞서나가는 조치를 취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WHO의 권고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자체적으로 입국을 제한할 수 있다. 캐나다는 2014년 에볼라 발병국인 콩고민주공화국 국민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조치를 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인종 차별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우한 폐렴에 대해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대만은 6000여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모두 내보내기로 하고 추가 중국인 관광객을 받지 않기로 했다. 말레이시아는 우한시가 있는 후베이성에서 오는 중국인의 입국을 일시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지난 22일부터 중국 여행객의 입국을 막고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필리핀은 중국인 관광객 600여명의 다른 지역방문을 허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들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WHO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실제로 입국금지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인 입국 금지 문제에 대해 “출입국은 법무부 소관 사항으로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올해 한중관계 최대 외교 이벤트로 꼽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상반기 방한과, 이를 통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의 해소, 남북관계 개선의 레버리지(지렛대) 확보를 노리고 있는 청와대로선 중국인 입국 금지가 매우 부담되는 사안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전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인 입국 금지와 관련해 "WHO에서 그 문제를 논의했으나 이동금지 조치는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 단계에서 WHO의 결정에 벗어나는 상황은 아마 없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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