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엄마도, 대학생도, 명동 알바생도..커지는 '중국인 포비아'(종합)

박순엽 2020. 1. 2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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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보미 등 중국동포 직원에 대한 우려 확산
개강 맞는 대학생들, 中 유학생 휴학 대책 요구
명동·강남 등 서비스업 종사자 "무섭고 불안해"
"집단 보호 의식..무분별한 차별·증오는 안 돼"

[이데일리 함정선 손의연 박순엽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국내 확진자가 잇달아 발생하자 ‘중국인 포비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50만명이 넘게 서명했는가 하면, 중국동포(조선족)·중국인과 접촉할 일이 많은 영유아 부모·대학생·서비스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과도한 우려가 우한 폐렴 공포를 확산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낳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방인권 기자)


◇아이 부모들, “조선족 아이 돌보미, 불안해”

28일 인터넷 지역 ‘맘카페’에서는 중국동포 아이 돌보미의 출근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명절 춘제를 지나고 혹시나 돌보미가 중국에 다녀왔거나 중국에서 온 입국자와 접촉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설에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해도 중국에서 온 친척이나 지인을 만난 경우도 있어 면역력이 약한 아이를 맡겨야 하는 입장에서 과할 정도로 조심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

서울 성동구에서 4살 아이를 키우는 김가람(34)씨는 “(도우미가) 설 명절에 중국은 안 가셨지만 중국에서 친척이 왔다고 해서 걱정”이라며 “오늘까지는 휴가를 내고 아이를 봤는데 내일부터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돌보미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한 폐렴’을 이유로 괜히 돌보미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이 때문에 돌보미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윤지연(35) 씨는 “당분간 출근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더니 ‘이모님’이 기분 나빠하더라”라며 “‘그냥 그만둘까요’라고 묻길래 그건 아니라고 달래느라 혼났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中 유학생 휴학해야”…전문가 “인지상정의 마음 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28일 오전 임시 휴교 중인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건물에 휴교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새 학기 개강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학가에서도 반중(反中)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익명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한 대학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이날 “개강하면 중국인 학우들과 학교를 같이 쓰게 되는데 솔직히 무섭다”며 “많은 학생이 모이게 되는 대학교는 안전하지 않다”는 글이 올라왔다. 각종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에는 정부나 학교가 중국인 유학생을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은 글이 속속 게시됐다. ‘중국인 유학생이 병을 옮길 수 있다며 개강 연기를 해달라’거나 ‘중국인 유학생 학내 출입 금지, 강제 휴학 등의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요구도 등장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 강남과 중국인 거주자가 많은 대림동 일대에서 고객과 대면해야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도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설 연휴가 끝난 이날 명동 일대에 있는 화장품 판매점에선 종업원들이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근무했다. 많은 고객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이들은 감염병에 노출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이들은 마스크가 최소한의 방어장비라고 입을 모았다. 아르바이트생 한모씨는 “잠복기 환자로부터 전염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고 워낙 외국인이 많아 사실 나도 무섭다”면서 “사장님 동의를 받아 며칠 전부터 마스크를 가져와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반중 정서’가 집단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면서도 무분별한 증오나 차별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하나의 개체든, 집단이든 자신들의 존재 자체에 해를 입힐 수 있다고 여겨지는 대상에 대해선 방어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본능적인 반응을 넘어서는 측은지심·인지상정 같은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면서 본인이 안전하다고 여기게 되면 무분별한 차별이나 증오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감염병에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로 한 집단을 매도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무조건 중국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쓴소리가 올라오기도 했다.

박순엽 (s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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