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치과 비용으로 모은 825만원..20대 도둑은 '별풍선' 쐈다

김준희 2020. 1. 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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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서 '무료 임플란트' 제안
피해자 "마음만으로 힐링" 사양
승용차에서 825만원을 훔친 B씨(26)가 찍힌 폐쇄회로TV(CCTV) 화면. [사진 A씨]

전북 전주에 사는 회사원 A씨(30)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70대 아버지의 임플란트 수술비를 대기 위해 5년간 푼푼이 모은 현금 800여만원을 하루아침에 도난당해서다. 경찰에 붙잡힌 20대 절도범은 훔친 돈을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이른바 ‘별풍선’을 쏘는 데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전주 덕진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남의 차량에서 현금을 훔친 혐의(절도)로 B씨(26)를 기소 의견으로 지난달 검찰에 송치했다. B씨는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3시쯤 전주시 금암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A씨 승용차 안에서 현금 825만원을 훔쳐 도주한 혐의다. 당시 차량 문은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B씨가 훔친 돈은 A씨가 아버지 몰래 5년간 모은 돈으로 확인됐다. 이가 부실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불편해하는 아버지의 임플란트 수술비였다. A씨는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모아서 자동차 수납공간 안에 숨겨 놨다”고 했다.

A씨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씨 차량에 대한 지문 감식과 주차장 주변 폐쇄회로TV(CCTV) 분석 등을 토대로 B씨 신원을 특정했다. 하지만 B씨는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구속돼 경기도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돈을 훔친 사실을 시인했다. 또 “훔친 돈은 별풍선을 사는 등 모두 써버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별풍선은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진행자(BJ)에게 선물로 주는 유료 아이템을 말한다.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으며, 1개에 110원 정도다.

A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저는 엄청 힘들게 모은 돈인데 (절도범은) 훔친 돈으로 별풍선을 쐈다고 하니 더 마음이 아프다”며 “차라리 생계 때문에 돈을 훔쳤다고 하면 속이 덜 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00만원을 모아서 아버지께 드리려고 했는데 목표액을 거의 다 채우기 직전에 도둑맞았다”고 했다.

A씨는 “직장 생활을 한 지는 5년이 채 안 됐다”며 “취업 전 과외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모은 돈이어서 없어진 현금은 모두 5만원권 지폐였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문을 잠근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문이 안 잠겼었다. 내 부주의도 있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2남3녀 중 넷째인 A씨는 “가족 분위기는 화목하다”며 “예전에도 아버지 치아가 안 좋아 임플란트 수술비를 보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이번 사건을 잘 모르신다. 효도하려다가 외려 이 일을 아시면 충격받으실 것 같아 자세히 말씀을 안 드렸다”고 했다.

A씨 사연이 알려지자 그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 치과 의사는 A씨에게 연락해 “아버지의 임플란트 수술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돈을 주겠다”고 나선 독지가도 여러 명이다. 이들은 “(아버지를 위해 모은 돈을 도난당한) 그 마음이 안타깝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느껴진다”며 A씨를 위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A씨는 “고맙지만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 일로 인해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돈을 받자고 알린 것도 아니다”고 했다. 다만 A씨는 “요즘 사회 분위기가 너무 팍팍한데 절 도와주신다는 분들이 계셔서 그 마음만으로 저는 많이 힐링(치유)이 됐다”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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