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총리실·복지부, 컨트롤타워 대체 어딥니까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0. 1. 2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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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로 컨트롤타워 바꿨지만, 靑·총리실·질병관리본부 제각각
1339 콜센터는 먹통, 하루 1만통 걸려오는 문의전화 30명이 대응
메르스때 50명 조사에 사흘 걸렸는데, 2주內 3000명 조사 추진
우한교민 천안에 격리하기로 한 정부, 주민들 반발하자 "미정"
4번 확진자 접촉자 놓고 평택시 "96명" 질본 "172명" 다른 발표
철수 전세기 투입하며 中국적 가족은 제외, 일부 교민 귀국 포기

'96명 vs 172명.'

국내 네 번째 우한 폐렴 확진자의 접촉자 수를 놓고 28일 평택시와 질병관리본부가 3시간 시차를 두고 발표한 서로 다른 숫자들이다. 같은 날 오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초·중·고등학교의 개학 연기를 검토하겠다고 하자, 오후엔 교육부와 국무총리실이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확진 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국민들이 우한 폐렴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진풍경이다. 전날 정부가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4단계인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면서 컨트롤타워를 차관급 질병관리본부에서 장관급 보건복지부로 바꿨지만 컨트롤타워가 복지부라고 생각하는 의료인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질병관리본부의 중앙방역대책본부부터 보건복지부의 중앙사고수습본부, 국무총리실 상황관리실, 여기에 청와대의 국가위기관리센터까지 많은 컨트롤타워 때문에 '원 보이스(one voice)'가 실종되고 있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보건 전문가들은 "전문가가 아닌 장관급으로 컨트롤타워 수장의 직급을 높이는 게 아니라 전문가인 기왕의 컨트롤타워에게 전권을 주는 게 위기 관리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윤석준 고려대 교수(예방의학)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질병관리본부장이 1급(차관보급)에서 차관급으로 높아졌지만 실질적으로 질본의 역할은 나아진 게 없다"고 했다. 전문가 집단인 질본은 전권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실무자가 책임을 지는 집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윤 교수는 "메르스 때 엄청난 경험치를 축적한 전문가 상당수가 옷을 벗었다"면서 "38명이 목숨을 잃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고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보건 전문가는 "소위 '컨트롤타워'가 바뀌면 일을 해야 할 시간에 보고서 만드느라 시간이 다 간다"며 "선거 앞두고 지자체나 국회의원이나 청와대가 너도나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그 어디에도 컨트롤타워가 없어지는 진풍경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반면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경찰, 보건의료진 전체를 통제하는 전권을 갖고 있다. 국민들은 "불안하다"고 하고 감염 공포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자체들 너도나도 우한 폐렴 발표

28일 오전 11시 경기 평택시 송탄보건소는 4번 확진자인 한국인 남성(55)의 접촉자 수를 96명이라고 발표했다. 방역의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가 같은 날 오후 4번 확진자의 접촉자 수와 이동 경로를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이를 무시한 것이다. 질본은 이날 오후 2시 접촉자 수가 172명이라고 정정했다. 전라북도와 강원도 등 다른 지자체도 질본의 통제를 벗어나 발표를 했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내과 의사는 "지방자치단체제도의 취지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적어도 감염병 문제에서는 평택도 용인도 컨트롤타워가 될 수 없다"며 "우한에서 온 외국인이 언제 어디로 이동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1339 콜센터 종일 '먹통'

전 세계적으로 우한 폐렴이 확산되면서 국민들 불안감이 높아졌지만, 정부가 우한 폐렴 방역의 제1 원칙으로 내세운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는 28일 먹통이었다. 이날 본지 기자들이 한 시간 단위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대부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쩌다 연결이 돼도 "현재 전화 대기가 많아 연결이 어렵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오고 끊겼다.
질병관리본부는 발열 등 의심 증상이 나오더라도 병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전염 위험이 있으니 콜센터에서 안내를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4번 확진자가 발표된 27일부터 이 전화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하루 평균 500통이었던 문의 전화가 설을 거치면서 20배나 폭증, 하루 1만통으로 늘어나 상담원 30명이 감당할 수 없게 됐다. 1339 먹통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질본은 28일 "상담원을 100명으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충원 시점조차 명시하지 않았다.

확진자가 아직은 불과 4명에 그치는데도 역학 조사 내용 발표 등에서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각각 발표를 하면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우한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전수조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서도 의료계는 "행정력 낭비만 초래하고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하는 상황이다.

◇전수조사 잠복기 2주 내에 가능한가

2018년 9월 국내에서 3년 만에 다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이 환자와 같은 비행기를 탄 외국인 50여 명의 행적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직원 수십 명이 동원됐지만 사흘이 걸렸다.

대통령의 전수조사 지시를 이행하려면, 이번에는 3023명(14~23일 입국자)의 행적을 찾아야 하는데, 잠복기간인 14일 안에 다 찾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2018년 당시 외국에서 온 한국인 입국자는 거주지와 연락처가 명확해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외국인은 연락처도 불명확한 데다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녀 거주지 파악도 어려웠다. 이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3023명의 입국자 가운데 1166명의 한국인을 제외한 1857명은 중국인 등 외국인이라 정확한 소재 파악이 어려운 상태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당시 외국인을 찾느라 모든 행정력이 동원돼 다른 방역 업무가 지연됐었다"고 했다. 메르스 사태를 겪었던 전 질병관리본부 임원은 "대통령이나 총리의 지원은 좋지만 방역 업무 총괄하는 곳에서 대책이 내려가야지 위에서 하달하면 현장에서는 뭐부터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자칫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아내는 우한에 두고 오라

외교부는 23일 우한을 '여행경보 2단계(여행 자제)' 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전세기를 통해 우한 교민이 우한을 안전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28일까지 700여 명이 30일·31일 이틀에 걸쳐 전세기 편으로 우한을 떠나겠다고 신청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한국 교민의 중국 국적 배우자 등 가족이다. 중국 당국이 중국인의 출국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이유인데 외교부에서 협상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신청자 700여 명 가운데 한국인과 부부관계인 중국인이 있다"고 했다. 이광호 주우한 한국총영사관 부총영사는 28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생이별이 되는 상황 때문에 귀국을 포기한 교민이) 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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