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연애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2020. 1. 3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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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연애-결혼-출산-육아의 자연적 연계를 당연하게 여기는 낭만적 사랑이 파탄나고 있다. 젊은 여성이 벌이고 있는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라는 4B 운동이 대표적인 징후다. 이에 대해 국가는 저출산이라는 인구 문제로 접근하고,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 혐오로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젠더 분리주의가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낭만적 사랑이란 두 남녀가 서로 자아를 탐색하고 존중하고 숭배하면서 각자 분리된 자아를 합쳐 공통된 자아로 확충하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나의 자아를 확충시켜줄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의 자아를 엄청나게 탐색하는데, 그게 바로 연애다.

연애하는 동안 두 자아는 자유롭고 평등하다. 경제적 부, 정치적 권력, 사회적 지위, 몸과 나이와 종교, 인종과 국적 등 어떤 사회적 힘도 연인 사이에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연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면서도 서로에게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처럼 밀고 당기는 에로틱한 게임을 한다. 사회학 창건자의 한 명인 게오르크 지멜이 연애를 근대 사회성의 원형으로 본 이유다.

낭만적 사랑은 근대 사회성의 씨앗을 품고 있다. 연애하기 위해 각자 부모의 집으로부터 나와 따로 둘만의 집을 차린다. 이 집이 근대 초기의 가부장적 핵가족제도다. 남성의 경제적 지원능력과 여성의 정서적 지원능력이 결합한다. 노동시장이 남성에게만 열려 있기에 여성은 먹고살기 위해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한다. 남성은 노동시장에서 가족 임금을 벌기 위해 과잉 노동에 시달리다가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된다. 이를 채워줄 여성의 정서적 지원에 기댄다. 상대방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며 낭만적 사랑은 평생 애착 관계로 이상화된다. 실제로는 연애가 지녔던 근대 사회성의 씨앗이 젠더 불평등한 결혼생활로 인해 채 발아되지 못한다.

할머니세대는 연애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부장에 이끌려 결혼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독특하게 존중받고 살아갈 문화 역량을 키울 기회조차 없이 운명처럼 주어진 가부장제에 평생 귀속되어 살았다. 어머니세대는 낭만적 사랑을 통해 근대 사회성을 잠깐 체험하기는 했지만, 가부장적 핵가족으로 귀결되는 젠더 불평등한 결혼생활로 이를 잃어버렸다. 소통하지 못하는 남편 대신 평생 온갖 돌봄노동을 하느라 할머니의 삶과 비슷해졌다. 딸세대는 노동시장에 나가게 됨으로써 젠더 불평등한 낭만적 사랑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마땅한 현실적 대안이 없어 일과 사랑 모두에서 돌봄을 전담하다 좌절을 맛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할머니-어머니-딸로 반근대적인 삶이 이어지고 있다. 전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고 독자적인 존재로 존중받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 사회는 이러한 여성의 삶을 숭고하다고 찬양하고 있다. 그럴수록 여성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이야기처럼 치매에 걸려 집 밖을 떠돌거나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처럼 병원에 유폐되어 말라 죽어간다.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연애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 환경을 만들려는 여러 정책이 고안되고 있다.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문화 역량은 중요하다. 낭만적 사랑에서 싹이 튼 근대 사회성을 급진화하고 전면화해야 한다. 연애는 자신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을 연인끼리 서로 입증하는 친밀성 공연이다. 이 공연을 제대로 해서 친밀성 너머의 다른 세계에 가서도 타자와 함께 공동의 사회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문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 역량을 발휘해서 사회 전체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악한 젠더 습속을 바꾸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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