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동물원 동물들 '수감 생활'에 정신병까지

김기범 기자 2020. 1.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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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그나마 시설 좋다는 10곳 조사…콘크리트 바닥에 지붕 위 관람도
ㆍ종 보존은 낙제점은커녕 ‘0점 수준’…“비영리·국가 관리 등 절실”

관람객들이 던져준 자동판매기 먹이로 인해 비만 상태가 된 대전동물원의 아시아흑곰.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의 늑대들은 콘크리트 바닥과 쇠창살로 이뤄진 우리에 갇혀 살고 있었다. 평생 관람객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도 없고, 흙바닥 한번 밟아볼 기회조차 없는 환경에서 늑대들은 하릴없이 같은 장소만 왔다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쇠창살과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이 동물원의 침팬지사는 비좁을 뿐 아니라 지능이 매우 높은 침팬지에게 인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없었다. 경남 진주 진양호동물원의 일본원숭이사에서는 사회적 동물인 일본원숭이를 한 마리만 사육하고 있었고, 우리 내의 콘크리트 바닥과 벽은 배설물로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였다. 이 동물원 큰뿔소와 아메리카들소사 바로 옆에는 놀이기구들이 들어서 있어 동물들이 지나치게 큰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었다.

대구 달성공원 침팬지 사육장. 침팬지에게 인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어떤 요소도 없다.

국내 공영동물원 다수가 동물원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동물원은 기본적인 동물복지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발표 및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상돈 의원 등은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사이 어웨어 이형주 대표와 수의사 등이 공영동물원 18곳 중 10곳을 현장 조사한 결과와 공영동물원을 전시·관람 중심의 시설에서 생물다양성 보전을 연구·교육하는 기관으로 전환하기 위한 개선책 등이 담겨 있다. 전국 공영동물원에 대한 실태조사와 사육환경 개선을 위한 종합적인 제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 달성공원의 늑대사 모습. 콘크리트 바닥 등 19세기 동물원 수준의 열악한 사육환경이다.
대구 달성공원 코끼리사. 국내에서 가장 좁은 시설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수코끼리 등 두 마리를 사육 중. 한 마리에게도 부족한 면적에 콘크리트 바닥 등 열악한 환경이다.

보고서를 보면 공영동물원 10곳 중 6곳에서 외관상 상처가 있거나 질병이 의심되는 동물이 관찰됐다. 기본적인 건강관리조차 안되고 있는 동물원이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에서는 수컷 사슴들의 뿔을 잘라놓은 부위에 상처가 나 있는 것이 관찰됐다. 달성공원 동물원은 국내에서 가장 좁은 시설에 국내에서 가장 큰 수컷 코끼리를 키우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이 동물원의 코끼리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면서 발의 각질과 발톱이 웃자라는 등 기본적인 수의학적 관리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조사진은 다수 동물원의 반달가슴곰이나 늑대, 타조 등 동물에서 정형행동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흔히 동물의 자폐증이라고도 부르는 정형행동이란 동물들이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특정한 목적 없이 같은 경로를 걸어다니거나 자해를 하는 등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진주동물원 동물사 바로 옆의 놀이기구 모습. 동물들이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상태다.

공영동물원들은 현대 동물원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이자 선진국에서는 전시·관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종 보전 기능 역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육하고 있는 전체 동물종 가운데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비율은 대체로 30~40%가량으로 나타났다. 외형적으로는 일정 정도 종 보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수치지만 단순히 보유만 하고 있을 뿐 종 보전을 위한 연구사업을 실시하는 곳은 10곳 가운데 2곳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실제 종 보전 연구의 대상이 된 동물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종 보전 기능에서 낙제점은커녕 ‘0점’에 가까운 수준인 것이다.

과거에는 동물원의 기능이 전시·관람에만 국한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관람객 교육과 멸종위기종 보전 등의 기능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추세다. 해외 선진 동물원들은 보다 야생에 가까운 사육환경을 조성해 방문객들의 관람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고, 사육 중인 동물의 복지를 개선할 뿐 아니라 멸종위기종 복원 연구를 통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의 종 보전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관람객이 호랑이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도록 되어있는 구조의 진주 진양호동물원 호랑이사. 사육장 창살 위로 관람객이 던진 과자가 보인다.

조사진은 공영동물원들의 국내 고유 동물 보유 비율 역시 1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동물원이 여전히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해외 동물 위주의 전시 행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형주 대표는 “토착종 중심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것은 해당 동물들에게 기후, 식생, 토양 등에서 원래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조건을 재현해주는 것이 쉽기 때문에 복지 측면의 이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영동물원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물원·수족관 허가제와 검사관제를 도입해 동물원의 수준을 상향평준화하고, 공영동물원을 정부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내용이 제시됐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공영동물원이 전문성,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동물복지, 생물다양성 보전 등을 위한 노력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해외에서 일반화된 것과 같이 동물원 운영에 전문성을 갖춘 비영리법인을 통해 공영동물원을 운영하거나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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