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먹는 한국인의 중국인 혐오

입력 2020. 1. 31. 10:40 수정 2020. 1. 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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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27. 히에로니무스 보슈, 상어와 고래와 인간
뱀이니, 뭐니 하는 온갖 동물을 산 채로 도축해 먹어대는 중국인들은 ‘육식을 지양해야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새로운 ‘만트라’를 받아들인 인류의 일부가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인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금 세계는 우한과 그 주변부로 재편되어 있다. 우한은 봉쇄되었고, 우한 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세계인의 시선을 하나로 묶었다. 그러나 모두가 인도주의자가 되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한 시민들과 중국인들을 염려하는 건 아니다. 사태는 오히려 반대여서, 이곳저곳에서 중국인 혐오, 나아가 아시아계 혐오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

사태를 들춰보면, 한편으로 이것은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온갖 야생동물을 사고파는 시장을 들락날락하는 우한의 사람들, 뱀이니, 뭐니 하는 온갖 동물을 산 채로 도축해 먹어대는 중국인들은 ‘육식을 지양해야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새로운 ‘만트라’를 받아들인 인류의 일부가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인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페루의 어부들은 샥스핀 재료인 상어를 잡는 데 미끼로 쓰기 위해 소형 고래들을 배 안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 고래 고기를 미끼로 잡은 상어는 주로 아시아로 운송되는데, 반절은 홍콩에서 소화된다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 없는 밥상’을 먹자는 황당한 캠페인이 먹힐 정도로 육식을 자주 하는 데다, 일부 법조인들이 개고기 유통 금지 법안까지 마련하는 수고를 기어코 해야 하며, 심지어 고래 고기까지 유통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중국인을 혐오하는 현상은, 필자로서는 이해불가다. 우리 속담에도 있지 않던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을까. 몰지각한 육식이라면, 중국과 한국은 ‘도찐개찐’이다.

최근엔 지구 최고의 탐식이라 할 만한 중국 요리인 ‘만한전석(滿漢全席)’을 소개하는 책도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만한전석’은 말 그대로는 ‘만주족과 한족 모두가 참석하는’ 청나라 황실의 잔치를 뜻하지만, 이 잔치에 나오는 요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며칠씩 먹는 중국 최고의 잔칫상이다 보니, 등장하지 않는 요리가 없었는데 상어 지느러미 요리인 샥스핀(shark’s fin)도 이 자리에 빠지지 않던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샥스핀을 먹는 풍속은 과거의 풍속이 아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돌고래 잔혹극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인 페루의 사정은, 바로 이 샥스핀 요리 재료의 공급과 관련이 있다. 페루의 어부들은 샥스핀 재료인 상어를 잡는 데 미끼로 쓰기 위해 소형 고래들을 배 안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 고래 고기를 미끼로 잡은 상어는 주로 아시아로 운송되는데, 반절은 홍콩에서 소화된다고 한다. 홍콩상어재단(www.hksharkfoundation.org)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포획되는 상어는 약 1억 마리에 이른다.

그러니까 이번 우한 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악몽은, 만일 그 진원지가 야생동물을 거래하는 시장이 맞는다면, 이처럼 탐식에 미쳐 돌아가는 세계 전체의 악몽인 셈이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악마’ 운운했지만, 정말 ‘악마’라면 그것은 중국 안에만 있지 않다.

페루에서는 소형 고래를 토막 내 미끼로 사용할 뿐이지만, 한국에서는 대형 고래를 토막 내 아예 식탁에 올린다. 클립아트코리아

돈에 눈이 뒤집혀 소형 고래와 상어들을 마구 잡는 페루는 미친 나라인가? 페루에서는 소형 고래를 토막 내 미끼로 사용할 뿐이지만, 한국에서는 대형 고래를 토막 내 아예 식탁에 올린다. ‘바다, 우리가 사는 곳’(핫핑크돌핀스 지음, 리리, 2019)에 따르면, 매년 한국에서 죽는 밍크고래는 약 200마리로, 그 고기가 130개 정도로 추정되는 식당에서 판매되고 있다.

물론 사회 일각의 식풍경일 뿐이고, 구성원의 상당수가 고래 고기를 즐기는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한시 일부 시민들의 식풍경이 용인되는 사회와 울산시 일부 시민들의 식문화가 용인되는 사회에 그 어떤 차이가 있을까?

‘쾌락의 정원’,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 1450~1516)

내 눈에는, 우한 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가 몇 개월째 지속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인페르노와 동일한 계열의 사건으로 보인다. 그간 인류는 해먹어도 너무 해먹었다. 지금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 외) 자연의 시간이다.

15세기 네덜란드에서 화가이자 도안사로 활동했던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 1450~1516)가 남긴 ‘쾌락의 정원’(1500년 경)은 모두의 자성을 위해, 오늘날 다시 들여다볼 만한 그림이다. 이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인간을 먹는 곤충이 등장한다.

16세기가 시작될 무렵 완성된 이 상상의 지옥도는 2020년의 벽두에 현실의 지옥도가 되어 있다. 오늘 WHO는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보슈는 이 그림의 중앙부에 너나 할 것 없이 먹어대는 인간을 그려 넣었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쾌락의 정원’,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 1450~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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