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천안 선정' 단독보도가 만든 사회적 갈등

민주언론시민연합 2020. 1. 3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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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신문 모니터보고서]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중국 우한에서 송환될 교민을 어느 곳에 격리 수용할지를 두고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29일 정부가 진천아산 지역에 교민들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수용 시설 진입로를 트랙터로 막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특히 해당 지역 주민들은 처음엔 천안에 수용하기로 했다가 진천아산으로 바뀐 데에 대한 반발했습니다. "천안은 반대해서 바꿨는데, 충청도는 만만하냐"라는 식의 지역감정이 표출되기도 했고, "우리를 우롱했다"며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애초 정부는 천안에 우한 교민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없었습니다. 29일 공식 브리핑에서 처음으로 진천아산의 공무원 교육 시설에 수용하겠다고 밝혔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천안 주민이 반발해서 바꿨다는 단서와, 이로 인한 지역 주민의 격렬한 갈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 1월30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앞 마을에서 아산시민들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진입로를 막기 위해 누워 있다. ⓒ 연합뉴스

정부 공식 발표 이전 "천안 지역" 최초 언급한 중앙일보

중앙일보 1월28일 오전 <단독-"'전세기 철수' 우한 교민, 2주간 천안 2곳에 격리한다">(1월28일 김기환 기자)에서 "우한 지역 교민과 유학생을 격리 수용할 곳으로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2곳을 검토 중인 것으로 28일 확인됐다"고 단독으로 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정부의 공식 발표 이전에 취재를 통해 특정 지역 명을 거론하며 수용 가능성을 전한 것입니다. 물론 중앙일보는 '검토 중'이라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여기에 중앙일보의 또 다른 기사 <"인구 65만 도심에 우한교민 수용? 무슨 죄냐" 불안한 천안>(1월28일 신진호 기자)에서 천안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는 "(우한 교민을) 천안에 수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며, "왜 하필이면 천안인가, 우리가 죄인도 아니고…"라고 전했습니다.

이 같은 중앙일보 보도 이후, 28일 하루 동안 네이버에 송고된 온라인 기사중에서 "천안 지역 반발"이 포함된 기사는 37건이나 되었습니다. 이런 보도 속에서 진천아산 주민들은 자신들이 반발하지 않아서 검토 과정에서 자신들의 지역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지난 1월28일 우한 귀국 교민이 천안에 격리될 것이라고 보도한 중앙일보.

정부 "귀국 희망자 늘어 최종적으로 진천아산지역 결정"

중앙일보의 보도가 나온 날,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은 브리핑에서 "민감한 사항이라 현재로선 격리 장소를 밝힐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9일 오후 정부는 최종적으로 진천아산지역 공무원 교육 시설에 수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진천아산을 최종 결정한 이유는 1월 29일자 <관계 부처 회의> 보도참고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정부는 "각 시설의 수용능력, 인근지역 의료시설의 위치, 공항에서 시설간의 이동거리, 지역안배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며 "당초 대형시설 한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으나 귀국 희망 국민수가 처음 150여 명 수준에서 700여 명 이상으로 증가하고, 감염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1인 1실(별도 화장실 포함) 방역원칙에 따라 방역통제가 가능한 시설로 선정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귀국 교민은 150명(1월24일) → 500명(1월26일) → 694명(1월27일) → 720명(1월29일현재)로 증가되어왔습니다. 즉, 정부는 귀국 희망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1인 1실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더 큰 수용시설을 찾은 것입니다.

천안 지역 2곳 시설로 우한 교민 700명 수용 못해

실제로 중앙일보가 처음에 선정되었다고 보도한 천안의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은 우한 교민 700여명을 1인 1실로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천안의 우정공무교육원의 경우 384실(2인실)에 768명이 수용 가능합니다. 또, 천안의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은 289실로 1072명이 수용할 수 있지만, 다인실이 많습니다. 8인 22실, 4인 181실이기 때문에 수용 시설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 천안 지역의 두 곳은 총 673실로 우한 교민 700여명을 1인 1실로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천안 우정공무교육원 관계자는 "수용 인원이 적어 우한 교민을 수용하기 어려웠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의 경우 638실(2인실)에 1,276명 수용 가능합니다.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의 경우 210실에 519명 수용할 수 있습니다. 1인 7실, 2인 96실, 3인 95실, 4인 5실, 기타 7실입니다. 이 두 곳은 총 848실로, 우선 우한 교민 700여 명을 1인 1실로 동시 수용 가능합니다.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은 천안 우정공무교육원보다 수용인원이 2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또, 천안의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은 평소에 외부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개 시설이라 격리에 부적합한 곳입니다.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의 공무원 교육 시설은 외부에 개방되지 않는 곳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검토 끝에 진천아산 지역을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행안부 "수용장소 천안서 아산으로 변경한 것 아냐>(1월28일 이숙종 기자)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이승우 사회재난대응총괄정책관은 "당초 천안으로 결정된 것 자체가 없었다. 장소를 논의하며 검토했던 것"이라며 "천안 청소년수련원은 아이들 이용시설이라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천안 결정을 아산으로 변경한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 각 시설의 수용 가능한 인원 및 방의 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정부 발표 이전에 내놓은 보도가 갈등 촉발

결과적으로 정부가 천안 주민들이 반대해서 진천아산으로 바꿨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애초 정부가 천안을 선정했다고 발표한 적이 없었습니다. 정부는 내부 검토를 거쳐 진천아산을 최종 선정했을 뿐입니다. 이번 행태를 두고, 진천아산 주민을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결국 이 논란의 불씨는 언론이 지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큽니다.

게다가 언론은 진천아산 주민들의 행태를 두고 매우 자극적인 문구로 다루었습니다. 게다가 애초 정부가 천안으로 정했다가 진천아산으로 변경한 것이 사실인 양 보도했습니다. 우선 중앙일보는 <"오기만 해라, 출입로 막겠다" 진천·아산 '우한 격리수용' 반발>(1월29일 진천·아산=최종권·김방현·신진호 기자)에서 "천안에서 반발하니까 우리 동네로 보내는 거냐"고 보도했습니다. 세계일보는 <"충청도가 우습나"… '우한 교민 수용' 놓고 아산·진천 격분>(1월29일 김주영 기자)에서 "(정부가) 천안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계획을 번복하고 다른 지역을 물색했다"며 "그러나 새로 지정된 아산과 진천까지 모두 충청권인 탓에 '정부가 충청도민을 우습게 본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경제도 <"천안 간다더니 우리가 호구냐"…아산·진천 주민, 트랙터로 도로 봉쇄>(1월29일 서민준·임락근 기자·아산=강태우 기자)에서 "우리가 호구냐"는 자극적인 문구를 제목에 사용하고, "천안 반대하자 하루 만에 급선회"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많은 국민은 진천아산 주민의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할 당사자는 언론입니다. 전염병 등 위기 상황에서 언론의 한줄 기사, 한마디 보도는 국민에게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따라서 언론은 정부 공식 발표 이전에 사회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섣불리 보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론은 어느 수용시설에 격리될 것인지 점치기 이전에, 우리 교민들이 왜 수용시설에 격리되어야 하는지, 수용시설에 인근의 지역 주민은 실제로 안전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취재해서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어야 합니다. 이런 정말 필요한 보도는 제쳐두고, 어느 지역이 낙점되었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아서 도리어 국민의 갈등만 키운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건데,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우리 사회에 어떤 공적인 이익도 주지 못하며, 갈등과 불안만 부추길 뿐입니다. 언론의 차분하고 정확한 보도를 촉구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1월28~29일온라인에 게재된 보도들
※ 문의 : 엄재희 활동가 (02) 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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