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무기 기부할때 최신형도 덤으로" 방산수출 마중물 전략

최현호 2020. 1. 3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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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군사 장비 해외 공여
방산 수출 마중물 역할 기대
선진국과 개도국 협력 효과
강대국 간 지역 경쟁 측면도


Focus 인사이드

중국은 해군 현대화를 통해 퇴역하는 해군 함정을 서남아시아 국가에 공여하고 있다. [출처 sinodefence.com]


2018년 10월 11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13개국 함정이 참가한 국제관함식이 열렸다. 관함식에는 미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을 포함하여 해외 12개국 함정 17척과 우리 해군 함정 24척이 참가했다. 관함식에는 베트남 해군 함정도 한 척 참가했다.

베트남 해군 함정은 우리 해군이 1986년부터 운용하다가 2017년 퇴역한 포항급 초계함인 여수함이었다. 여수함은 같은 포항급 초계함 김천함과 함께 베트남에 공여되었다. 우리 해군에서 역할을 마치고 이제는 멀리 남중국해에서 베트남의 바다를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중고 군사 장비의 새로운 삶, 공여

퇴역 후 필리핀 해군에 공여된 포항급 초계함. [출처 필리핀 해군]


베트남으로 공여된 여수함처럼, 임무를 마치고 퇴역한 군사 장비가 다른 나라에 이전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특히 판매가 아닌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공여는 선진국이 개도국에 할 수 있는 군사 지원의 한 형태다. 우리도 오랫동안 미국에서 공여받은 소총, 전차, 군함, 그리고 전투기 등으로 무장했고, 이제 국산 무기로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군사 장비는 설계 수명이 넘었거나, 새로운 장비의 도입으로 도태되면 일반적으로 폐기된다. 하지만, 설계 수명에 여유가 있거나 정비를 통해 수명이 연장될 경우 해외에 공여 또는 판매된다. 선진국 군대에서는 능력이 부족한 장비지만, 개도국이나 위협이 적은 국가에서는 그런 장비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아니면, 이전에 도입한 동일 장비의 부품 공급을 위해 쓸 수도 있다.

미국이 우리 공군에 공여했다가 돌려받은 후 하와이 박물관에 전시된 F-5A 전투기 [출처 미 공군]


장비의 공여나 판매는 새로운 장비의 도입 말고 다른 요인도 작용한다. 유럽 각국은 냉전이 끝나자 군축을 시작하면서 많은 양의 전차 등을 해외에 판매했다. 미국은 잉여 군사 장비의 해외 공여나 매각에 가장 적극적이다. 미국은 잉여 군수물자 판매(EDA) 프로그램을 통해 해상초계기, 전차, 장갑차 등을 외국에 공급하고 있다. 쿠데타 이후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과 밀착하던 태국이 최근 도입한 스트라이커 차륜형 장갑차도 EDA 프로그램을 통해 도입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유럽과 미국은 공여보다는 판매에 중점을 둔 사례다. 하지만, 말 그대로 무상으로 군사 장비를 제공한 사례도 많다. 공여는 선진국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난으로 여러 군사 장비를 매각하거나 퇴역시키던 요르단은 필리핀에 AH-1 코브라 공격헬기 2대를 무상으로 공여했다.


동남아와 서남아에 부는 공여 경쟁

독일의 군축으로 생긴 잉여분 레오파드 2 전차를 도입한 인도네시아 육군 [출처 인도네시아 육군]


군사 장비 공여는 자세히는 주는 나라와 받는 나라 사이의 일이지만, 크게 보면 강대국의 자기편 만들기 전략인 경우도 있다. 어떤 나라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의 장비를 공여받기도 한다.

남중국해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으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반발하는 지역이다. 미국은 베트남과 필리핀에 해안경비대에서 퇴역한 함정을 지원했다. 필리핀해군 전투함 중 가장 큰 델 피라급 초계함은 미 해안경비대의 해밀턴급 순찰함을 지원받은 것이다. 미국과 전쟁까지 치렀던 베트남도 미국의 해밀턴급 순찰함 1척을 지원받았다.

일본이 필리핀에 공여한 TC-90 훈련기 [출처 필리핀 정부]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일본도 그동안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차관 형식으로 경비함을 지원해 왔지만, 무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법까지 바꾸면서 군사 장비 공여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2017년 1월, 말레이시아에 퇴역한 해상보안청 순시함 1척을 원양순찰함 3척을 판매하면서 끼워넣기식으로 지원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필리핀에 훈련용으로 사용된 TC-90 항공기 5대를 해상 초계용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 질세라 중국은 필리핀에 이슬람 반군과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소총과 탄약 등을 지원했다. 그리고, 베트남을 견제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구형 전차와 장갑차를 지원했다.

태국은 미국의 잉여방산물자 프로그램을 통해 스트라이커 차륜형 장갑차를 도입했다. [출처 미 육군]


이런 경쟁은 서남아로 번지고 있다. 서남아시아는 전통적인 맹주 인도와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해상 운송로를 확보하려는 중국이 격돌하고 있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펼치는 미국이 인도와 함께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 지역 국가로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미얀마가 있다. 이들 3개국은 이미 중국제 무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곳들이다. 이 가운데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는 중국 해군에서 퇴역한 군함들을 지원받아 해군 전력 증강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도 해안경비대의 해밀턴급 경비함을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에 지원했지만 무장 능력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인도는 미얀마에 중고 전차와 야포 등을 공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공여 정책이 필요

우리나라는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모했듯이, 군사 장비도 이젠 지원하는 나라가 되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방글라데시, 필리핀,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페루, 인도네시아, 가나, 캄보디아, 몽골, 방글라데시, 콜롬비아 등에 군함, 전투기, 차량 등 다양한 군사 장비를 양도했다. 현재도 여러 국가가 우리 군에서 퇴역하는 장비 도입을 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 장비 공여후 무기 수출로 이어진 성공 사례인 페루의 KT-1P 훈련기 [출처 페루 정부]


하지만, 우리나라의 군사 장비 공여 정책은 더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중고 장비 공여는 신형 장비 수출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퇴역한 장비만 공여해서는 새로운 방산 수출 개척에 큰 도움을 주기 어렵다.

우리가 공여한 장비의 퇴역에 맞춰 아직 운용 중인 신형 장비를 일부 무상 제공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군사 외 정책이 필요하다. 신형 장비를 써보고 만족하면 후속 주문을 기대할 수 있다. 세계 무기 수출 강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아프리카의 카메룬 등에 군용 차량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수출 시장 확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현재 가동률 부진 등 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수출 확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수출은 여러 경쟁국과 경합을 벌여야 가능한 일이다. 신 남방 정책 등 다양한 외교 정책을 펴는 현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군사 외교를 기대한다.

최현호 밀리돔 대표·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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