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는 '제로성장'이라는데, 은행들은 왜 보험사를 사들일까

안효성 입력 2020. 2. 2. 06:02 수정 2020. 2. 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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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푸르덴셜생명 본사 건물. [푸르덴셜생명]


제로성장을 넘어 역성장 우려를 스스로 토로하는 업종이 있다. 바로 보험업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금융지주사들은 알짜 보험사가 나오면 군침을 흘린다. 2015년 LIG손해보험(현 KB손보), 2018년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 이 각각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됐다. 올해에도 인수금액만 2조원으로 추산되는 푸르덴셜생명 인수전에 KB금융이 뛰어들었다. 하나금융그룹은 이미 더케이손해보험을 1000억원 대에 인수했다. 금융지주사들이 ‘제로성장’이라는 보험사를 사들이는 이유는 뭘까.

5대 금융지주들의 은행의존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저금리에 비은행부문 확장 경쟁
올해 KB국민·신한·우리 등 금융지주사최고경영자들의 신년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말이 있다. 바로 포트폴리오 강화와 이를 위한 인수·합병(M&A)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은행이 자산과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몫이 크다. 2019년 6월 기준으로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농협)는 자산의 78.7%, 순이익의 75.1%가 은행 기반이다. 그런데 저금리 등으로 은행의 성장성과 이익 전망은 당분간 밝지 않다. 은행 수익의 주요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2019년 1분기 1.62%에서 3분기 1.59%로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올해 상반기 중 금리를 추가 인하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5대 금융지주사 투자 내역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 때문에 각 금융지주사들은 보험·증권 등 비은행부문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12월 ‘저금리, 저성장 기조 속 은행업 구조적인 수익성 하락 및 은행금융지주 실적 차별화 전망’을 통해 “비우호적인 은행 영업환경으로 은행부문 수익성이 저하되어 순이익의존도가 자산의존도 대비 더욱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은행금융지주의 비은행부문 확충 수요를 확대시키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신한과 국민의 리딩뱅크 다툼
신한지주와 KB금융은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수년 째 각축을 벌이고 있다. 양 측 모두 주요 무기는 대형 M&A다. KB금융은 2015년 KB손해보험(구 LIG손해보험), 2016년 KB증권(구 현대증권)을 인수하며 2017년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했다. 신한금융은 2018년 2조3000억원을 들여 자산 규모 31조원의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을 인수해 리딩뱅크 자리를 재탈환했다.

푸르덴셜생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KB금융 입장에선 자산만 20조원, 영업이익 1448억(2018년 기준)인 푸르덴셜생명은 매력적인 매물이란 평가다. 특히 KB지주는 은행·카드·증권·손해보험 등은 업계 상위권이지만, KB생명만은 업계 순위 17위에 머물러 있다.

리딩뱅크 자리는 금융지주 회장의 주요 성과지표가 되기도 한다. 신한지주는 지난해 12월 조용병 회장의 연임을 결정하며 오렌지라이프 인수 등을 통해 리딩 금융그룹으로 이끈 점 등을 주된 사유로 밝혔다.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올해 11월 임기가 만료돼, 3연임에 도전하게 된다.


고성장하는 인슈어테크 분야
보험은 저성장에 돌입했지만, 인슈어테크(보험+기술) 분야는 다르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업체 KPMG 인터내셔널과 핀테크 벤처투자기관 H2벤처스가 선정하는 ‘올해의 핀테크 100대 기업’에서 인슈어테크 관련 기업은 2018년 11개에서 2019년 17개로 늘었다. 헬스케어 등 각종 분야로 확장성을 높게 평가 받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도 최근 하나캐피탈·하나벤처스·하나생명 등을 통해 인슈어테크 업체 보맵에 85억원을 투자했다. 투자이유로는 온라인 보험시장의 향후 성장가능성과 신기술금융 경쟁력 확보 등을 내세웠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더케이손보는 규모도 작은 데다 최근 손해율이 높아지고 있는 자동차 보험을 위주로 돼 있는 곳”이라며 “이번 인수는 종합손해보험사 라이선스를 사들여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험사 인수가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2011년 현대차그룹은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현대라이프생명을 출범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NH투자증권 조보람 애널리스트는 지난 22일 ‘KB와 푸르덴셜생명보험이 만난다면?’ 보고서를 통해 “오렌지 라이프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M&A 특수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경쟁심화로 인한 영업부진으로 시너지 창출에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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