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넘긴 보이저 2호 태양권 밖서 '구사일생'

이정호 기자 2020. 2. 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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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지구에서 185억㎞ 떨어진 곳 비행, 지난달 갑자기 장비 전체가 멈춰
ㆍ‘자기장 측정장치’ 전력 많이 쓰자 센서가 ‘전면 작동 중지’ 드러나
ㆍNASA, 원격 조종하며 겨우 회복…장비 노후화 탓 ‘블랙 아웃’ 초읽기

보이저 2호의 상상도. 현재 지구에서 185억㎞, 빛의 속도로 17시간 걸리는 곳을 비행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산악인 고상돈씨(1948~1979)가 한국인으로는 처음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을 오르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물의 대표 격인 <스타워즈> 1편이 개봉했으며, 무성영화의 제왕인 찰리 채플린이 사망한 해. 바로 1977년이다. 당시 이런 상황을 기억할 정도의 연령대였던 이들은 지금 장노년층에 이르렀다. 이렇게 추억의 대상이 된 1977년 지구에서 발사된 우주탐사선이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만든 보이저 2호다. 1977년 8월20일 지구를 떠난 중량 722㎏짜리 이 탐사선은 보름 뒤 발사된 보이저 1호와 함께 인류가 만든 최장수 우주탐사선이다.

보이저 2호는 발사된 지 오래된 만큼 지구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 2018년 ‘태양권’, 즉 태양에서 나오는 전자와 같은 미세한 물질의 폭풍 범위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외부 우주로 나온 보이저 2호는 현재 지구에서 185억㎞ 떨어진 거리를 비행하고 있다. 지구와 태양 거리의 무려 120배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17시간이다. 보이저 2호가 관측 결과를 담은 신호를 쏜 뒤 지구 기술진의 지시를 다시 수신하기까지 왕복 34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보이저 2호는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도 어려운 1970년대 기술로 만들어졌다. 지구에서 1970년대 만들어진 물체는 대개 철골이나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 댐, 다리 같은 것에 국한된다. 자동차, 비행기 같은 전자·기계 장비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없다. 영하 200도 이하로 떨어지는 우주의 극한 환경에서 보이저 2호를 지키기 위해 NASA 기술진이 얼마나 골치를 썩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NASA는 최근 보이저 2호 전력을 아끼기 위해 ‘우주선(cosmic ray) 서브 시스템’이라는 탐사 장비의 보온 기능을 중단시켰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다행히 해당 장비는 우주의 강추위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지난달 25일 NASA에 비상이 걸렸다. 보이저 2호 과학 장비 전체가 죽는 일이 갑자기 발생한 것이다. 과학 장비의 작동 중단은 모든 탐사선들에 가장 우려스러운 상황 가운데 하나다. 특히 보이저 2호처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떨어진 탐사선에서라면 더욱 큰 문제다. 지구 궤도 수백㎞ 상공에 떠 있는 물체라면 최악의 경우 우주인이 접근해 회수나 수리를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미 지구에서 한참 날아간 탐사선을 대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77년 8월20일 ‘타이탄 3E 센타우르’ 로켓에 실려 발사되는 보이저 2호.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이런 사달이 벌어진 이유는 뭘까. 보이저 2호에 실린 자기장 측정장치가 갑자기 전력을 지나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과학 자료 수집을 위해 자세를 바꾸는 과정에서 해당 장비가 너무 느리게 회전한 것인데, 느린 회전으로 전력이 평소보다 갑작스럽게 더 많이 필요해졌다는 사실을 감지한 센서가 과학 장비 작동을 전면 중지시킨 것이다.

일단 NASA는 원격조종으로 지난달 28일 장비를 다시 켜는 데 성공했다. 5개 가운데 전력을 가장 많이 먹는 1개를 제외한 나머지 과학 장비에 전원을 공급했다.

하지만 전처럼 우주에서 수집한 자료를 지구로 전달하고, 지구에서 지시한 명령을 완전히 이행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보이저 2호와의 양방향 통신에 34시간이 걸려 NASA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장비가 워낙 노후화돼 있어 추가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번 문제가 잘 해결된다 해도 보이저 2호에서 완전한 정전, ‘블랙아웃’이 발생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NASA에 따르면 보이저 2호의 전력 공급 능력은 발사 당시보다 40% 떨어져 있다. 전력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근본 원인은 역시 ‘세월’이다. 보이저 2호는 내부에 방사성물질인 플루토늄을 실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열을 전기로 바꿔 동력을 얻는다. 일종의 초소형 발전기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플루토늄의 열 효율이 줄어 자연스럽게 발전기의 능력도 떨어지는 것이다. 문용재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는 “먼 우주를 탐사할 경우 태양광으로 전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플루토늄을 탑재하게 된다”며 “시간이 지나면 전력 저하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NASA는 전력이 줄어드는 속도에 대응해 하나하나 덜 중요한 과학 장비 위주로 전원을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방침은 보이저 2호와 쌍둥이 탐사선인 보이저 1호에도 적용된다. 과학계에선 대략 보이저 탐사선들의 운명이 2024년을 전후해 끝날 것으로 본다. ‘성간 우주’(interstellar space)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지구인의 유일한 눈이 죽음 전까지 어떤 소식을 전할지 과학계의 이목이 쏠린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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