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보이콧' 부른 남녀 갈등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이동준 2020. 2. 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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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캐릭터를 두고 일부 남녀가 수개월째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SNS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세계 여러 나라에 확산하며 논란인 가운데 일본에서 헌혈을 독려하기 위해 진행된 이벤트가 일부 남녀 대립을 부르며 ‘헌혈 보이콧’으로 치닫고 있다.
남성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편향적인 생각이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여성들은 ‘여성을 성(性)상품한다’고 반발한다. 일부 남녀 간 갈등이 수개월째 이어지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논란 부른 일본 적십자 포스터. (사진=SNS캡처)
◆논란 부른 일본 적십자 포스터
논란은 지난해 10월 발생했다. 당시 ‘캐릭터 논란’을 취재한 주간문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적십자사는 헌혈을 독려하기 위해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포스터를 제작·공개했다.

이 포스터 속 캐릭터는 20대 여대생으로 특정 신체 부분을 과장되게 묘사해 ‘지나치게 성적으로 부각됐다’는 지적이 일었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하면서 ‘표현의 자유’라는 의견과 ‘지나친 묘사다’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논란에 기름 부은 일본 적십자 이벤트
일본 적십자사의 헌혈 이벤트는 지난 2019년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됐다.
이 기간 관동지방(도쿄 등) 내 헌혈의 집에서 6번 헌혈하면 ‘특제 클리어 파일을 선물한다’고 광고했다. ‘특제 클리어 파일’은 만화 단행본 표지를 포스터 형태로 제작됐는데 앞서 문제로 지적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포스터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렸고 입소문으로 다시 화제가 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젊은 층에서 인기를 누린 이 만화는 논란에 유명세를 타고 1월까지 약 50만부가 팔려나갔다.

◆논란을 확산한 한 미국인..사회 문제가 된 캐릭터
논란을 확산한 사람은 평범한 미국인이다. 캐릭터를 보고 불편한 감정을 느낀 미국인 남성 A씨는 자신의 SNS에 “일본 적십자사는 성적으로 과하게 묘사된 여성 캐릭터를 사용해 실망했다”며 “이러한 표현은 대중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미국 등으로 확산에 영어로 된 많은 비판이 이어딘 뒤 유사한 사례가 차례로 지적되면서 일본인들을 부끄럽게 했다. 일본 국내서도 문제로 지적된 일들이 해외로 확산해 그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이 쏟아진 이유에서다. 또 일본의 여성 변호사가 해당 포스터에 문제를 제기하자 여성들을 비롯한 남성들의 지지도 이어졌다.

A씨는 주간문춘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글이 온라인상에서 인용되고 확산한 것과 관련 “공공장소에서 성적인 포스터가 붙어있어 위화감이 들었고 이러한 포스터를 일본 적십자사가 만들어 더 놀랐다”며 “아내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표현의 자유도 공공장소에서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예상 밖으로 논란이 커지자 일본 적십자 측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포스터는 만화를 좋아하는 젊은 층을 위해 제작했다”며 “불편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못했다. 적십자는 공공성이 높은 단체로 (논란이 된 포스터를) 모두가 기분 좋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논란 후 바뀐 일본 적십자 포스터. (사진=SNS캡처)
◆남녀 갈등..승기 잡은 여성들
여론이 남성들이 주장한 ‘표현의 자유’보다 ’잘못이다‘라는 쪽으로 기울자 여성들은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돼 받아들여졌다”고 트윗을 날렸다.

실제 이 일이 있은 후 헌혈의 집에서 논란이 된 포스터가 모두 철거됐는데, 포스터에 반대한 이들은 포스터가 사라진 헌혈의 집 사진 등을 SNS 게재하며 ‘성희롱 포스터가 철거됐다’, ‘metoo’, ‘kutoo(쿠투운동·일본어로 구두를 뜻하는 ‘구쓰(靴)’의 ‘구’와 미투(Me Too)운동의 ‘투(Too)’를 합친 신조어)’ 등 그간 진행된 운동의 해시태그를 달아 공유했다.

또 최근 공개된 2차 이벤트 포스터에서 문제로 지적한 여성 캐릭터의 묘사가 수정됐다며 기뻐했다.

◆남녀 갈등..반격나선 남성들
그러나 이는 여성들의 착각이었다. 포스터가 철거된 건 사실이지만 2월부터 시작할 새 이벤트를 위해 철거된 것이었다.

앞서 적십자는 “(논란이 된 포스터를) 모두가 기분 좋게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을 뿐 철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앞서 일은 지적과 비판을 수용해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 캐릭터를 만든 여성 만화가가 “변한 건 없다”고 밝히면서 여성들의 자축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에 반발한 이들은 ‘헌혈 보이콧’을 주장하며 캐릭터 표현을 변경하지 않으면 ‘헌혈하지 않겠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여기에는 일부 여성들이 가세해 캐릭터 도안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주장이 역풍을 부르고 있다. 온라인에서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만 이해하고 동감하는 주장을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또 ‘헌혈을 하지 말자’고 호소하는 건 옳지 못하다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실사화한 영화 광고에서 나체인 남성 주인공이 주변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포스터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등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수용되길 바란다는 지적이다.

남성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권리이자 특히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라고 정의돼 있다. 어떤 형태로든 원하는 경우 개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 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돼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로 정의돼 있다. 또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을 가리킨다고 사전 등에 명시돼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남녀 갈등에 승자는 없다. 판단은 그들과 사회의 몫으로 보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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